청년들의 글로벌 경험: 회피책인가, 돌파구인가?

'헬조선 인 앤 아웃'

'헬조선 인 앤 아웃'은 한국 청년세대의 글로벌 이동에 대한 인류학 보고서다. 이 책에서 젊은 연구자들은 미국, 인도, 아일랜드, 동남에서 한국 및 한국계 청년들의 고민을 들었다.

장면 #1: 20대 후반의 직장인 D는 직장에서 월화수목금금금으로 일하며 살면서 불합리한 조직 문화와 죽도록 일해야 하는 노동 관습으로 인해 몸과 마음이 성한 곳이 한 군데도 없을 정도로 아프다는 걸 깨달았다. 망가진 몸을 치유하고 휴식을 취하기 위해 해외 여행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우연찮게 찾아간 인도의 리시케시에서 오랫동안 요가를 배우며 지친 심신을 해독했다. 그러는 동안에 자신의 “라이프스타일” 자체가 바뀌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장면 #2: 20대 초반의 아르바이트생 J는 대학에 입학하자마자 저임금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며 등록금과 생활비를 벌려 노력했지만 갈수록 생활은 어려워지기만 했다. 게다가 청년 실업률이 치솟아 대학을 졸업해도 뚜렷한 진로를 찾을 수 없는데다가, 집안 형편이 어려워 가족은 전혀 지지자원이 될 수 없었다. 그래서 어렵사리 미국 유학을 떠나 어느 커뮤니티 칼리지에 입학했다. 그러나 그곳에서도 그는 자신을 “현금인출기”처럼 취급하고 교육과정에서 차별하는 대학 당국에 실망하고, 아무와도 말을 나누지 않는 “유령”으로 지내게 되었다. J는 스스로를 한국에서 추방당하고 외국에서 표류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배낭여행, 어학연수, 교환학생, 워킹홀리데이, 해외 자원봉사, 인턴십 등을 통해 수많은 한국 청년들이 다채롭고 다양한 글로벌 생활방식을 체험해온 것이 사실이다. 사람들은 낯선 곳에서 낯선 사람들을 만나면서 다양한 삶의 형태를 접하면서 복수의 정답이 존재하는 삶이 가능하다는 것을 공유하기도 한다. 이주를 통하여, 무작정 한국인으로서 한국에서만 살아야 한다는 구속과 의무감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진정한 삶을 대면할 수 있는 곳을 발견하기도 한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이주에서 오는 불안정성과 불확실성을 직면하는 것 또한 현실이다. 쫓겨나다시피 한국을 떠나고 난 후 외국에서 겪는 새로운 삶도 결코 만만한 것은 아니다.

한국과 미국 사회에서 동시에 왕따를 경험하기도 하며(2장), 도피하듯 떠난 해외에서 신자유주의 노동 유연화에 따른 구조적 착취를 새로이 경험하거나(3장), 오랜 해외 거주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법적 강제력이 불현듯 되살아나거나(4장), 불법 이주자 또는 그 자손이 되어 강제추방의 위험 속에서 목숨을 걸고 살아가는(5장) 일이 흔하게 일어난다.

이 책은 청년 세대를 무조건 옹호하지도 비난하지도 않는다. 그리고 한국 청년들의 글로벌 경험에 대해 거창한 미사여구로 포장하지도 않는다. 다만 불확실한 세계를 헤쳐나가는 한국 청년들이 어떻게 자신이 속한 사회를 이해하고 있으며 어떻게 저항하고 어떻게 미래를 기획하려 하는지, 그러한 가운데 자신의 삶 속에서 글로벌 경험을 어떻게 소화해내는지 성실하게 기록하고 추적해나간다. 인류학자들의 장점이라고 할 수 있는 독특한 글쓰기 방법, 즉 당사자의 말과 행동 하나하나가 어떤 의미가 있는지 곰곰 성찰하고 되씹어보기, 당사자를 가르침과 설득의 대상으로 보지 않고 동등한 위치에서 바라보기, 구체적인 사례를 풍부하게 기록하기와 같은 글쓰기를 통해 현재 한국 청년 세대의 모습이 있는 그대로 실감나게 그려진다. 세련된 문구와 현란한 수사로 포장된 청년 세대를 다룬 다른 많은 책들이 결국에 현실에 다가가지 못하고 저자의 주장이나 선언, 때로는 윽박지르기에 그치는 것과는 사뭇 다르다.

이 책을 쓴 젊은 인류학자들은 청년 세대를 “헬조선”에서 마냥 고통을 받는 불쌍한 존재로 그리지 않는다. 그리고 해외 이주를 부추기지도 않는다. 저자들은, 청년들이 자신의 처지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으며, 신자유주의적 착취 구조를 어떤 방식으로 부딪치고 저항하며, 자신과 비슷한 처지에 있는 다른 사람들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지, 그들은 사회적으로 받는 고통을 넘어 어떠한 실천을 모색하고 있는지를 객관적이고 담담한 필치로 그려내고 있다. 이를 통해, 강제 추방의 위험을 무릅쓰고 미등록 이민자(불법 체류자) 운동을 전개하는 청년들(5장), 해외원조와 국제개발 체제를 비판하고 개선하려는 문제의식을 갖고 있으며 한국에서도 주민(빈민)활동의 끈을 놓지 않는 청년 활동가(6장), 유럽 중심적인 전 세계 글로벌 기본소득 네트워크를 맞닥뜨리며 비서구 아시아 청년으로서 활동하는 활동가(7장)를 소개하며 청년들 간의 사회적 연대의 가능성을 탐색한다. 그들은 전 세계 도처에서 일하고, 활동하고, 싸우고, 쉬고, 연대하고 있다.

이 책의 저자들은 연구자의 시선으로 청년들을 내려다보거나 재단하지 않는다. 그리고 섣불리 정답을 찾아내려고 하지도 않는다. 청년들이 개별적인 삶을 살면서도 고통과 고민을 공유하며 신자유주의적 세계 질서 속에서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고 서로가 서로를 연결하고 연대하는 방식을 찾아나가는 과정을 찾는다.

조문영 , 이민영, 김수정, 우승현, 최희정, 정가영, 김주온 지음 | 눌민 | 288쪽 | 16.500원

실시간 랭킹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