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 스포츠인 한국 야구도 국제대회에서 이런 궤적을 밟아왔다. 견디기 힘든 참사 뒤에 영예로운 시간이 찾아왔고, 다시 국치에 가까운 고통이 엄습한 이후 생애 다시 오기 어려운 희열이 상처를 치유했다.
2017년은 한국 야구 역사에 치욕으로 남을 것이다. 국가 대항전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서 1라운드 탈락이라는 오명을 다시 썼다. 그것도 한국 최초의 돔 구장에서 당한 안방 치욕이다. 한국 야구 역사에 '고척 참사'로 기록될 것이다.
김인식 감독이 이끄는 대표팀은 지난 6일 개막해 9일 막을 내린 '2017 WBC 서울라운드'를 1승2패로 마무리했다. 12일부터 일본 도쿄에서 열리는 2라운드 진출이 좌절됐다. 야심차게 홈에서 개최한 1라운드에서 이스라엘과 네덜란드가 차기 라운드 진출 티켓을 거머쥐는 모습을 지켜만 봐야 했다.
2013년 3회 WBC에 이어 다시 1라운드 탈락의 고배를 마셨다. 당시는 2승1패를 하고도 규정에 의해 2라운드 진출이 무산됐다. 4년 뒤인 올해도 탈락이라는 결과는 같지만 더 퇴보된 성적이었다.
거짓말처럼 역사는 반복됐다. 찬란한 성과 뒤에는 왜 이토록 처절한 아픔이 따르는지는 모르겠으되 하여튼 되풀이됐다. 어쨌든 방심과 결여된 동기, 거품이 낀 실력 등 이런저런 이유들이 따랐으리라.
시초는 1998년 방콕아시안게임이었다. 당시 한국 대표팀은 프로 선수들이 처음으로 태극마크를 달고 나섰다. 박찬호(LA 다저스 · 이하 당시 소속팀)와 서재응(뉴욕 메츠) 등 해외파와 임창용(해태), 김동주(OB), 박재홍(현대), 이병규(LG) 등 프로와 김병현(성균관대), 홍성흔(경희대), 박한이(동국대) 등 아마추어 선수들이 뭉쳐 금메달을 일궈냈다.
이후 2000년 시드니올림픽에서는 사상 첫 메달을 수확해냈다. 김응용 감독이 지휘봉을 잡은 대표팀은 이승엽(삼성), 구대성(한화), 박경완, 정민태(이상 현대), 손민한(롯데), 정수근(두산) 등이 뭉쳐 동메달을 따냈다. 마쓰자카 다이스케가 나선 일본과 3, 4위 결정전은 구대성의 역투와 이승엽의 결승타가 승리의 원동력이었다. 이 기세는 2002년 부산아시안게임 금메달로 이어졌다.
승승장구하던 한국 야구는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첫 번째 치욕을 당한다. 아테네올림픽 예선이자 아시아선수권대회가 열린 2003년이었다. 당시 현대의 전성기를 이끈 김재박 감독이 이끈 대표팀은 한 수 아래로 여기던 대만에 4-5로 패한 데 이어 일본에도 0-2로 지면서 올림픽 본선 진출 실패의 좌절을 맛봤다. 이른바 '삿포로 참사'였다.
하지만 이를 교훈 삼아 한국 야구는 빛나는 성과를 냈다. 2004년 아테네올림픽을 지켜만 봐야 했던 한국은 2006년 WBC 1회 대회에서 4강 신화를 썼다. 박찬호(샌디에이고), 김병현(콜로라도), 서재응(LA 다저스), 김선우(신시내티), 최희섭(보스턴) 등 메이저리그(MLB) 선수들에 이승엽(지바 롯데)과 이종범(KIA), 구대성(한화), 이병규(LG), 박진만(삼성) 등 초호화 멤버들이 숙적 일본과 야구 종가 미국 등을 연파하는 기염을 토했다.
이런 아픔 속에 한국 야구는 대표팀 사령탑과 관련한 '폭탄 돌리기' 현상까지 벌어졌다. 국제대회 성적에 대한 부담감 때문이었다. 김경문 당시 두산 감독(현 NC)이 '독배'를 든 가운데 2007년 베이징올림픽 예선에서 일본 대표팀 호시노 센이치 감독으로부터 무시에 가까운 질타까지 받게 됐다. 이른바 '위장 오더'에 대해 공개적으로 망신을 당했다.
하지만 이런 시련은 대표팀을 독하게 만들었다. 베이징올림픽 본선에서 대표팀은 일본을 두 번이나 울리며 통쾌하게 설욕했고, 9전 전승 금메달 신화를 일궈냈다. 이승엽(요미우리)이 일본과 4강전에서 극심한 부진 끝에 결승포를 날리며 눈물을 쏟았고, 이용규(KIA), 이대호(롯데), 김광현(SK), 김현수(두산) 등이 힘을 보탰다. 대표팀은 류현진(한화)의 역투와 정대현(SK)의 천금 구원투를 더해 아마 최강 쿠바와 결승에서도 짜릿한 승리를 거뒀다.
이 기세는 2009년 2회 WBC까지 이어졌다. 박찬호(다저스), 이승엽(요미우리)이 빠지고 해외파는 추신수(클리블랜드), 임창용(야쿠르트)뿐이었지만 4강을 넘어 준우승이라는 값진 성과를 냈다. '봉열사' 봉중근(LG)의 역투로 일본을 거푸 격파했고, 야구 강국 베네수엘라를 누르며 결승까지 진출했다. 비록 해괴한 대진 탓에 일본과 결승에서 연장 끝에 졌지만 한국 야구의 위상을 떨친 대회였다. 2010년 광저우아시안게임 금메달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였다.
하지만 WBC에서는 충격적인 1라운드 탈락의 고배를 마셨다. 물론 MLB에 적응해야 했던 류현진(다저스)과 부상이 왔던 김광현(SK), 봉중근(LG) 등 좌완 3인방이 빠지고, 김진우(KIA), 홍상삼, 이용찬(이상 두산) 등도 교체되는 등 정상 전력은 아니었다.
그러나 앞선 국제대회의 찬란한 성과에 취한 한국 야구는 변방으로 치부됐던 네덜란드에 일격을 당하며 2라운드 진출이 좌절됐다. 방심이 큰 원인으로 꼽혔다. '무난히 1라운드는 통과하겠지'라는 안이한 생각에 기반한 전술적 실패였다. 뒤늦게 2연승을 거뒀지만 (득점/공격이닝)-(실점/수비이닝)인 TQB에서 3위로 밀렸다.
이런 좌절 뒤에 다시 한국 야구는 일어섰다. 2014년 인천아시안게임에서 전승으로 금메달을 따냈다. 나지완(KIA), 오재원(두산), 차우찬, 김상수(이상 삼성), 황재균, 손아섭(이상 롯데), 김민성(넥센) 등 무려 13명이 병역 혜택을 받았다. 일부 선수들은 눈물을 쏟기도 했다.
하지만 또 다시 그런 성과가 독이 된 걸까. 한국 야구는 역사의 반복처럼 또 수렁에 빠진다. 그게 바로 2017년 열린 WBC다. 100억 원을 넘어 150억 원 몸값의 선수가 탄생한 KBO 리그는 일본과 어깨를 견주고 어지간한 MLB 출신 외인들을 수입하는 수준으로 발전한 듯 보였지만 WBC를 통해 거품이 심하게 끼었다는 비판에 직면해야 했다.
한국 야구는 미국 마이너리그, 독립리그 소속 선수들이 주를 이룬 이스라엘에 충격패를 당한 데 이어 네덜란드에도 완패를 안았다. 주축들이 빠진 대만과 마지막 경기에서는 졸전 끝에 연장까지 간 접전을 간신히 이겼다. 한미일 최강 마무리 오승환(세인트루이스)이 아니었다면 안방에서 3전 전패 수모를 안을 뻔했다.
MLB급이라던 선수들은 어깨만 빅리거처럼 들썩였지만 실력은 그렇지 못했다는 지적을 뼈아프게 받아야 했다. 특히 이런저런 이유들로 WBC를 허투로 여긴다는 태도와 자세 논란까지 겪어야 했다. 대만전 승리로도 팬들의 곱지 않은 시선은 가시지 않았다. 안방에서 예선 탈락한 '고척돔 참사'였다.
이번 WBC를 통해서 대표팀 선수들은 어느 때보다 혹독한 경험을 했다. 특히 홈에서 열린 대회라 질타는 더욱 뼈아프게 다가왔을 터다. 그러나 이 경험은 더없이 소중한 자양분이 될 것이다. 이번 대회 중계 해설을 맡은 원조 코리안 메이저리거 박찬호는 "이게 한국 야구의 현 주소"라면서 "그러나 이번 대회를 통해 선수들이 더 많은 것을 배우는 시간이 됐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번 대회 극심한 부진으로 1라운드 탈락의 한 원인이 됐던 김태균(한화)도 마찬가지 의견이었다. 9일 대만전 쐐기 3점포를 날리며 승리를 이끈 뒤 중계 인터뷰에서 김태균은 "정말 죄송하다"면서 "다음 대회에서는 우승까지 갈 수 있도록 선수들이 잘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한국 야구는 2017년 WBC 대회로 바닥 깊숙한 데까지 침잠했다. 더 이상 내려갈 곳도 없다. 이제는 올라갈 일만 남았다. 과연 한국 야구가 역사의 교훈을 얻어 다시 일어설 수 있을지 관심을 갖고, 그러나 매의 눈으로 치욕의 역사를 반복하지 않도록 지켜볼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