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임자 처벌없는 '블랙리스트' 대책…반응은 '싸늘'

문화예술인들 "진상규명이 먼저, 핵심에서 벗어난 보상 정책" 비판

문체부가 9일 문화예술 지원배제 재발방지 대책을 발표했다. 왼쪽부터 이영열 예술정책관, 김영산 문화예술정책실장, 이영아 영상콘텐츠산업과 과장. (사진=유연석 기자/노컷뉴스)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집행으로 위상이 곤두박질한 문화체육관광부(문체부)가 9일 재발방지 대책을 내놓았다.

문체부는 현장 문화예술인과 소통한 뒤 재발방지책을 발표했다고 하는데, 정작 현장 문화예술인들은 환영하지 않는 분위기다.

그들이 절대적 1순위로 요구하는 '철저한 진상규명, 책임자 처벌'이 이뤄지기도 전에 재발방지책부터 내놓아 선후가 바뀌었다는 지적이다.

문체부는 9일 기자간담회를 열고, 문화예술계 지원 배제 재발 방지를 위한 후속 대책인 ‘문화예술정책의 공정성 제고방안’을 발표했다.

이 방안에는 특정 문화예술인에 대한 지원 배제와 심사 개입으로 훼손된 문화행정의 공정성을 다시 세우기 위한 ▲예산편성 ▲심의절차 ▲기관 운영 ▲예술가 권익 보장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성 등 5가지 개선안이 담겼다.

◇ 1. 부당하게 폐지된 사업 복원

먼저 '블랙리스트'로 부당하게 폐지되거나 변칙적으로 개편된 사업을 원래대로 복원하겠다고 발표했다.

문학, 연극, 영화, 출판 등은 풍자적이거나 비판적인 표현이 많아 정부의 지원 배제가 빈번했다.

문체부는 "지원 배제 피해를 입은 창작현장을 지원하기 위해 문학, 연극 분야에 폐지된 3개 사업을 복원한다"고 했다.

복원하는 3개 사업은 우수문예지 발간(5억 원), 공연장 대관료 지원(15억 원), 특성화 공연장 육성(10억 원)이다.

더불어 지역문확관 활성화 등 출판계 지원을 위한 5개 신규사업을 추진한다.

이 8개 사업에 긴급자금 총 85억 원을 편성했다. 예산은 체육 기금에서 끌어온다.

또 예술영화 유통·배급 지원, 지역독립영화관 건립 지원 사업 개편에 대한 영화계의 문제 제기를 반영해 전면 개선안을 3~4월 중에 수립할 예정이다.

◇ 2. 심의 과정 투명성 제도화

논란이 컸던 예술지원기관 심의 과정도 투명하게 바꾼다.

문화예술위원회(문예위)와 영화진흥위원회(영진위), 출판문화산업진흥원 등의 심의 전 과정에서 투명성을 제도화해 부당한 외부 개입을 원천 차단한다겠다는 계획이다.

이미 2017년 기금사업 심의부터 심의위원 풀제와 참여 위원 추첨제, 심의정보 공개를 적용하고 있다.

여기에 심의참관인제도와 옴부즈맨 제도를 신설·확대한다.

◇ 3. 예술지원기관 독립성 보장

예술지원기관의 자율성·독립성을 보장해, 합의제 행정기관으로서의 위상도 재정립한다.


‘합의제 위원회’라는 본래 취지에 맞도록 위원 및 위원장 선임절차 개선, 조직구조 개편 및 기금편성 우선순위 등에 대한 대안을 논의해 확정한다.

특히 위원장은 기존의 장관 임명에서 호선으로 법규를 개정하기 위해 관계부처와 협의 중이다.

또한 예술행정의 ‘팔길이 원칙’(정부가 지원은 하지만 간섭은 하지 않는다)에 따라 사후평가에 집중한다는 계획이다.

◇ 4. '예술가 권익 보장을 위한 법률' 제정

헌법 제22조의 ‘예술가의 권리’를 실효적으로 보장하기 위한 법률도 제정하겠다고 했다. 가칭 '예술가 권익 보장을 위한 법률'이다.

문체부는 "이 법은 소극적인 ‘예술의 자유‘ 침해 금지를 넘어, 예술 지원의 차별 금지 및 예술사업자의 불공정행위 금지 원칙과 그에 따른 침해신고 접수·조사 및 시정조치, 형사처벌 요청을 할 수 있는 ‘예술가권익위원회‘ 구성 등을 규정해 예술가 권익을 보장하는 파수꾼 역할을 하게 된다"고 밝혔다.

예술가의 성적 자기결정권 보호와 청소년 예술가의 보호 등 예술가 권익 보장 과제도 다각도로 발굴해 이 법에 담아가겠다고 계획했다.

◇ 5. 문체부 공무원 행동강령 개정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성을 보장하기 위해 ‘문체부 공무원 행동강령’도 개정한다.

직무수행에서의 차별금지 원칙과 상급자의 위법지시 거부에 따른 인사상 보호 규정을 ‘문체부 공무원 행동강령’에 추가하고, 4월 중에 개정을 완료할 예정이다.

자유롭게 의견을 나누고 토론하는 건강한 조직문화를 만들기 위해 직원 간담회와 업무고충 상담, 직장 멘토 활동 등도 확대한다.

◇ 문화예술인들 "규명·처벌이라는 핵심에서 벗어난 정책"

김영산 문화예술정책실장은 "문화예술계 지원 배제를 뼈아픈 자성의 계기로 삼고, 다시는 문화예술정책의 공정성이 훼손되지 않도록 제반제도와 절차를 과감히 개선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이 안은 첫 걸음일뿐 완성된 안이 아니다. 현장 문화예술인과 소통하며 계속 발전된 안을 만들어 나가겠다"고 덧붙였다.

발표를 하면서 문체부는 현장 문화예술인과의 소통을 수차례 강조했다. 하지만, 정작 문화예술인들의 반응은 싸늘하다. 오히려 분통을 터트리는 목소리가 강했다.

그들이 강력히 요구하고 있는 '진상규명, 책임자 처벌' 이전에 재발방지책부터 나온 탓이다.

연극인 임인자 연출은 "예술가들이 이런 정책을 환영한다고 생각한다면 어불성설이다"며 "검열과 블랙리스트는 국가 범죄이자 국가 폭력 문제인데, 문체부 발표는 책임지는 이 없는 핵심에서 벗어난 보상적 정책으로, 예술가를 입막음하려는 권위적이고 통제적인 태도이다. 책임자 사퇴와 진상규명이 먼저이다"고 강조했다.

김미도 연극평론가는 "송수근 문체부 장관대행은 명백하게 블랙리스트 TF를 꾸렸던 사람이고, 그 블랙리스트로 예술인 지원 배제 실행한 사람이 박명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위원장이다. 그런 부역자들이 재발방지책을 내놓고, 실행한다는 건 말이 안 된다. 방지책을 내놓을 자격이 없다"고 밝혔다.

이원재 문화연대 문화정책센터 소장도 "문제에 대한 진실을 규명해야 원인을 알고 대책을 내놓을 수 있다. 블랙리스트 작성과 실행에 관여돼 있을 거라는 송 직무대행과 박 위원장이 내놓는 방지책은 그 자체로 진정성이 없다"며 "조직 지키기이고 문제를 대충 덮으려는 시도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한편,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자 김영산 문화예술정책실장은 "특검 수사로 인해 정무직 위주로 처벌이 이루어졌고, 감사원 감사는 실국장 이하가 조사를 받아, 결과가 조만간 나온다. 감사 결과에 공무원에 대한 처분이 반영된다. 문체부는 그것으로 상황을 파악하고 부족한 것은 기록으로도 남길 계획이다"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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