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년 노숙생활 접고 철학·문학 통해 꿈꾸는 인생 2막

영혼의 치유 통해 기약 없던 거리생활 '청산'…인문학의 '힘'

13년간 노숙생활을 했던 박용선(61)씨는 지난해 인문학 교육을 들은 뒤 자활 의지를 갖게 됐다고 설명했다. (사진=구민주 기자)
지난 1998년 IMF 외환위기로 온 국민이 어려움을 겪던 시절. 다니던 회사가 부도나자 박용선(61)씨는 막노동판에 뛰어 들었다.

거칠고 힘든 일에 건강을 잃고 죽을 고비까지 넘겼지만, 믿었던 가족들이 등을 돌리면서 삶을 놓아 버린 박씨는 거리로 나가 노숙생활을 시작했다.

박씨는 안양 학의천 다리 밑 토굴에서 남들이 갖다 버린 이불과 옷가지를 주워다 살았고 무료급식으로 연명하며 안양역, 수원역, 빈집 등 정처 없이 떠돌아다녔다.

괴로움을 달래 줄 소주 한 병, 끼니를 때울 돈 한 푼이 아쉬웠던 박씨는 구제금을 주는 곳이라면 어디든 찾아다니는 등 내일을 기약할 수 없는 거리생활만 13년을 했다.


박씨는 "노숙자라고 낙인찍히고 나서부터 사람들의 시선을 피했지만 따가운 시선에 둔해지니 음식을 훔쳐도 죄책감을 못 느꼈다"며 "꿈도 희망도 목표도 없이 하루하루 그렇게 살았다"고 고백했다.

막장같던 박 씨의 인생을 바꾼 건 인문학을 통한 치유.

경기도에서 진행하는 인문학 교육을 통해 철학과 문학 등을 다시 접하며 지금까지의 나약했던 삶을 되돌아보게 됐다.

또 심리상담과 연극, 합창 수업 등을 통해 남을 이해하는 마음이 생겼고, 사람들에게서 받은 상처와 분노도 마음속에서 지울 수 있었다.

사회로 복귀할 수 있도록 취업과 주거를 지원해 준 것도 큰 힘이 됐다.

박 씨는 "지금껏 남에게 도움을 많이 받았으니 이제는 내가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돼야겠다. 세금도 당당히 내고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역할을 하고 싶었다"며 자활의지를 불태웠다.

6개 월의 인문학 교육을 수료한 박씨는 현재 수원희망지역자활센터에서 볼펜 등 부품조립을 하고 있다.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남들처럼 일하고 번듯하게 번 돈으로 집세도 내고, 저축도 하며 희망을 꿈꾸게 된 것이다.

박 씨는 "자활이 끝날 때쯤 요리와 마술을 배워 희망을 잃어버린 사람들에게 재능기부를 하고 싶다"며 "노숙인의 생활을 살 필요도 없고, 살고 싶은 생각도 없다. 지금은 누구보다 떳떳한 인생 2막을 꿈꾸고 있다"고 말했다.

어깨동무 인문학교육 강사인 김용표 한신대 교수는 "인문학 교육의 목표는 한마디로 '힐링'"이라며 "노숙인들에게 잃어버린 자존감을 회복시키고, 사회생활을 다시 하고 싶은 의욕을 북돋아주는 역할에 방점을 두고 있다"고 설명했다.

김 교수는 그러면서 "그들이 사회에서 소외되지 않았다는 것을 알려주며 현재의 상황을 이겨낼 수 있도록 도우고 있다"고 덧붙였다.

한편, 지난 4년 동안 경기도에서 인문학 교육을 수료하고 자활을 하고 있는 노숙인은 모두 34명이며 다음 달부터 제5기 인문학교육이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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