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경련은 통상 홀수 달, 둘째 주 목요일에 회장단 회의를 열어왔지만, 이달 둘째 주 새해 첫 회의는 10대 그룹 회장 대부분이 불참하면서 무산된 바 있다.
전경련 등에 따르면 허창수(GS그룹 회장) 전경련 회장은 이날 서울시내 모처에서 정기 회장단 회의를 열어 조직 쇄신안과 차기 회장 선출 등 향후 진로에 대해 의견을 수렴할 예정이다.
그러나 10대 그룹 회장을 포함한 주요 그룹 회장들 대부분이 회의에 불참할 예정이어서구체적인 진로가 논의되기는 어려울 전망이다.
전경련 회장단은 삼성, 현대차, SK, GS 등 10대 그룹 회장을 포함한 18개 주요그룹 회장과 전경련 상근 부회장으로 구성된다.
이날 회의에는 전경련 회장을 맡고 있는 허창수 GS회장과 김윤 삼양사 회장, 박영주 이건산업 회장 등 극소수만 참석할 것으로 알려졌다.
◇ "스스로 혁신안 만들어 제시할 상황 아냐"…내달 초 이사회서 사실상 진로 결정
현재 전경련은 내부적으로 '쇄신 TF'를 구성해 쇄신안 마련을 위한 연구를 진행중이다.
TF는 조직 쇄신안과 관련해 한국경제연구원과 통합을 통한 ‘싱크탱크’로의 전환, 미국 대기업 이익단체 벤치마킹 방안 등에 대해 연구중이다.
TF는 전경련 해체를 요구하는 비판적 여론을 감안해 조직의 목적과 구조, 인적 요소 등을 모두 바꾸는 고강도 쇄신안에 대한 연구를 진행중이다.
전경련은 그러나 자체적으로 쇄신안을 마련해 발표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전경련 고위 관계자는 "전경련이 별도의 혁신안을 만들어 제시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라며 "전경련은 쇄신안 추진 주체가 확정되면 바로 쇄신안이 나올 수 있도록 도움을 주기 위해 관련 연구와 의견 수렴을 진행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우리가 혁신안을 만든다는 것은 말이 안된다.혁신안의 주체는 전경련이 아니다"라며 "해외 경제단체 등에 대한 연구와 법률적,세무적으로 어떤 문제가 발생할 수 있는지 등 쇄신안을 추진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들기 위한 스터디와 의견수렴만 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전경련은 허창수 회장이 오는 2월 임기를 끝으로 이승철 상근부회장과 함께 물러나겠다는 뜻을 밝힌 만큼 내달 정기총회 전에 차기 회장을 결정해야 하지만 쉽지 않은 상황이다.
주요 그룹 회장들 대부분이 여론의 따가운 시선을 감수하며 쓰러져가는 조직을 떠맡기를 꺼리고 있기 때문이다.
전경련은 주요기업 회장들을 대상으로 설득작업을 진행중이며, 내달 초 이사회에서 차기 회장을 사실상 결정할 것으로 알려졌다.
◇ 경제개혁연대·경실련 "자체 쇄신안은 정경유착 지속 꼼수"
경제개혁연대(소장 김상조 한성대 교수)는 전경련이 미국의 경제단체인 '비즈니스라운드테이블(Business Roundtable)'을 벤치마킹 모델로 삼는 쇄신안을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진데 대해 "간판만 바꿔 달고 정경유착을 계속하겠다는 꼼수"라고 비난했다.
비즈니스라운드테이블은 정부정책 결정과정에 기업의 이익을 대변하기 위한 목적으로 1972년 설립된 미국의 대기업 이익단체다.미국은 우리나라와 달리 전문 로비스트를 통한 로비활동이 합법화돼 있고, 기업의 정치자금 기부도 허용된다.
경제개혁연대는 성명을 통해 "전경련이 어떤 형식으로든 경제단체로서의 위상을 유지하고자 하는 것은 현 전경련의 이름만 바꾸는 꼼수에 불과하며, 전경련 스스로 환골탈태할 의지도 능력도 없다면 더 이상 쇄신 논의를 진행하지 말고 즉각 해산 절차를 밟아 청산하라"고 요구했다.
경제개혁연대는 그러면서 "이승철 부회장 등은 즉각 사퇴하고 사회적 신망을 받는 외부인사들이 논의를 이끌어야하며 천문학적 액수의 보유재산을 처분하고 처리 방안도 공개하라"고 촉구했다.
경제개혁연대는 특히 전경련 쇄신 논의에는 보유 자산을 처분해 부채를 상환한 뒤 남는 재산에 대한 투명하고도 합리적인 처리 방안이 반드시 포함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은 전경련 회원사인 30대 기업에 대해 탈퇴를 압박하고 나섰다.
경실련은 전날, 이들 기업에 전경련 탈퇴 의사와 탈퇴시점, 탈퇴하지 않는 경우 이유 등의 내용으로 공개질의서를 작성해 전달했다.
경실련은 "전경련은 각종 정경유착, 정치개입 사건의 핵심으로 지목됐고 작년에는 어버이연합 우회지원, 미르·K스포츠재단 사태에 연거푸 연루돼 더 이상 존재가치를 상실했다"며 회원사들의 조속한 탈퇴를 요구했다.
경실련은 또 "재단설립이나 기부를 금지하거나 싱크탱크로 변화하자는 논의가 있지만 근본적인 해체를 배제한 쇄신안은 모두 정경유착 가능성을 열어두기 위한 꼼수"라며 "회원사들은 하루 빨리 탈퇴를 공식화하고 시점도 명확히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경실련 권오인 경제정책팀장은 "비리의 온상이 돼 버린 전경련은 존재해야할 이유가 사라졌다"면서 "쇄신안 등으로 꼼수를 부리지 말고 조건없이 즉각적으로 해체한 뒤 그래도 재벌이 사회에 기여하고 싶다고 하면 그때 가서 대안을 제시하면 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