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관 전 위원장 "부산영화제, MB 때부터 블랙리스트"

이용관 전 부산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 (사진=부산국제영화제 제공)
이제는 말할 수 있다. 이용관 부산국제영화제(이하 부산영화제) 전 집행위원장이 무겁게 닫아왔던 입을 열었다. 서병수 부산시장과의 갈등 끝에 집행위원장의 자리를 떠난 지 10개월 만이다.

이용관 전 위원장은 앞서 좌담회를 개최하기도 했지만 이렇게 편한 분위기 속에서 영화계 사람들과 일 대 일로 이야기를 주고 받은 적은 거의 없다.

특히 이번 좌담회는 고(故) 김영한 전 청와대 민정수석의 비망록에서 청와대가 '다이빙벨'에 외압을 행사했다는 증거물이 나온 상황이라 그 의미가 깊다. 부산국제영화제 복귀설부터 '다이빙벨' 외압 전모까지, 이용관 전 위원장에게 직접 들어봤다.

다음은 이 전 위원장과의 좌담회를 일문일답으로 재구성한 것이다.

▶ 부산영화제 측에서 이용관 전 위원장님을 명예집행위원장으로 추대했다는 보도가 있었다. 실제로 돌아갈 마음이 얼마나 있는지 궁금하다.

- 제가 돌아가지 않는 것이 저는 영화제를 위한 길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김동호 이사장 체제를 인정하지 못하는 제 입장에서 그런 제안을 한다고 해서 돌아갈 수 있겠느냐. 사실 저도 영화계에서 그런 논의가 2개월 째 오가니까 흔들린 면이 없잖아 있었다. 결국 외압에 의해 물러난 것이니 제 거취가 저 하나만의 문제가 아니라, 영화계 전체 그리고 영화제 전체의 문제라는 의견이 존재한다. 그렇지만 부산영화제 측에서 이를 공식화히기는 힘들다고 봤다. 솔직하게 말씀드리면, 영화계 의견이 무엇인지에 따라 제 생각이 달라질 가능성은 있다.

▶ 부산영화제에 오래 몸 담고 있었던 만큼, 그 곳을 향한 마음을 끊어내기가 쉽지 않을텐데, 그럼 본인은 현재 상태에 만족하나? 명예 회복에 대한 생각은 없나?

- 합당한 방안을 찾으면 된다. 저는 부산영화제와 같이 가고 싶다. 그런데 여기에서 같이 간다는 의미가 꼭 안으로 들어가야 같이 가는 것은 아니다. 충분히 밖에서도 영화인들과 함께 도와줄 수 있다. 뭐가 명예집행위원장이냐. 오히려 불명예, 오명을 뒤집어 쓰는 것과 같다.

▶ 김동호 전 집행위원장이자 현 이사장은 왜 부산국제영화제로 돌아오지 않아야 했다고 계속해서 주장하는 것인가?


- 저는 지난 5월 7일을 마지막으로 김동호 이사장과는 연락을 한 바가 없다. 아마 중간에 아는 영화인들이 있으니 내게 그 영화인들을 통해 의사를 전했는데 답이 없었다고 생각할 수는 있다. 어쨌든 전 직접적으로 답을 드린 적이 없다. 당시 김 이사장에게 제안이 갔을 때, 서병수 부산시장이 전화하더라도 수락하지 말라고 이야기했었다. 당시 이야기는 본인이 할테니 저보고는 가만히 있으라고 하더라. 처음부터 그렇게 이야기하다 다투게 된 거다. 영화제는 김동호 체제가 되면서 철학적인 부분을 잃어버렸다. 부산시와 타협을 하게 되면 영화제 자체가 정체성을 잃게 된다. 그게 영화제를 죽이는 일이다.상영하지 말라는 영화는 그렇다 치고, 지금 부산영화제가 상영해달라는 영화를 거절 가능한지 의문이다.

▶ 세상을 떠난 김영한 전 청와대 민정수석의 비망록이 이 자리를 여는 하나의 계기가 됐을 것 같다. 비망록에 적힌 내용을 보면 이번 정권 내내 문화예술계에 대한 탄압이 엄청난 수준이다.

- 그 분에게 정말 고맙고, 마음에 빚을 졌다. 그런 비망록이 아니었다면 조금이라도 그런 사실들이 나타날 수 없었으리라 생각한다. 문화예술계는 너무 오랫동안 어두운 시대를 지났다. 이미 블랙리스트는 이명박 정권 초기부터 만들어졌고, 청와대로부터 지침이 내려왔었다. 1순위가 황지우 한국예술종합학교 전 총장이었고, 2순위가 부산영화제와 부천영화제였다. 그런 맥락 속에서 당시 집행위원장이었던 김동호 이사장이 위원장을 그만두게 된 것이다. 나 또한 '좌파'라고 하면서 노골적 몰아내기를 겪었다. 유인촌 장관이 그걸 주도했었다.

▶ 전방위적인 외압이 있었단 이야기다. 사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문화예술계는 이런 검열에 시달리곤 한다. 이에 대해 어떻게 대처해야 된다고 생각하나?

- 검열이 제도적으로 없어졌다고 해서 편안하게 생각하면 안 된다. 어떤 정권이 들어오든 마찬가지다. 문제는 영화계가 검열에 대해 너무 수동적이었다는 거다. 지원을 못 받으면 따지기만 급급했을 뿐이다. 그러면 이런 사태는 계속 일어난다. 그런 면에서 이것이 단순히 부산국제영화제 이용관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었으면 한다. 제가 살아보니 겨울이 지나면 봄이 오고, 싹이 트고, 곷이 피고, 열매를 맺더라. 결말이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다. 어쨌든 지금은 싹이 태동하는 시기다.

▶ 물밑에서는 부산영화제를 차지하기 위한 이권 다툼도 치열했던 것으로 안다. 영화제에 가장 큰 위협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 토호세력들과 싸우느라 힘이 다 빠졌었었다. 그들은 자신들이 (영화제를) 접수하면 왜 못하겠느냐는 식의 생각을 하더라. 물론 그들 중에서도 좋은 사람들이 많다. 2015년에 공동집행위원장 체제를 결정했을 때, 이름만 대면 입이 벌어질 수 있는 명단들이 올라왔었다. 한 마디로 가관이었다. 그렇게 하면서 나를 조여오는데 정말 소름이 돋을 정도였다.

▶ 본인이 어렵게 강수연 집행위원장을 데리고 왔는데 결국 해촉되면서 강 위원장 혼자 부산영화제를 이끌게 되는 형국이 됐다. 강 위원장에 대해서는 어떤 생각인가?

- 인간적인 측면에서 너무 미안하고, 안쓰러울 뿐이다. 이렇게 고생하라고 데려온 건 아니었다. 나는 강 위원장이 김동호 이사장이 오면서 더 어려운 지경에 처했다고 본다. 지금 부산영화제는 거의 김동호 집행위원장과 강수연 부집행위원장 체제로 흘러가고 있다. 이사장이 굳이 다니지 않아도 될 곳에는 집행위원장을 보내서 살려줘야 하는데 전혀 그렇지 않다. 강 위원장에 대해서는 전적으로 제 책임이라는 무거운 생각을 가지고 있다.

▶ 앞으로 부산영화제가 나아갈 방향에 대해 어떻게 전망하고 있나?

-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잘 될 것이다. 김동호 이사장이나 제가 없다고 해서 이 영화제가 어디로 가지 않는다. 얼마든지 영화인들이 빈 곳을 보완하면 된다. 강수연 위원장은 데리고 올 때 제가 밖에서라도 신의를 다하겠다고 했으니 그 약속을 지킬 것이다. 부산영화제는 정치, 행정과도 밀접하게 연관돼 있다. 그들과 적절하게 어울리면서 또 부당한 일에 대해서는 싸워야 한다. 제일 중요한 게 프로그래밍인데 대단한 실력을 가진 사람이 이미 국내에 수백명이다. 전통이란 그렇게 맥을 이어가는 것이니, 세대 교체가 되더라도 아무런 문제가 없을 것이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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