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 해체가 거론될 만큼 절대적으로 불리한 상황이지만 야당보다 한 수 높은 정치공학 기법을 발휘하며 기사회생을 노리는 것이다.
◇ 골대론
정진석 원내대표는 15일 더불어민주당 추미애 대표의 청와대 영수회담 취소 소동을 놓치지 않고 야당에 맹폭을 가했다.
그는 "거국내각, 총리 추천, 영수회담 등 민주당의 이런 행태가 한 두 번이 아니지 않는가"라며 "과연 국정수습 의지가 있는건지 근본적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새누리당은 대권욕에 눈 먼 야당이 국정 수습에 나서기 보다는 매번 새로운 요구조건을 내걸며 오히려 사태를 꼬이게 한다는 이미지를 부각시키고 있다.
마치 2015년 한일 위안부 협상때 한국 측이 골대(요구사항)를 자꾸 바꾸는 바람에 협상이 어려워지고 있다고 했던 일본의 '골대(goal post) 이동론'과 닮았다.
야당이 이처럼 허점을 노출하는 데에는 전략적 실책 탓도 있지만, 대통령 하야국면이란 '지도상에 없는 길'을 가야하는 데 따른 근본적 한계도 작용한다.
거국내각의 정의를 놓고도 헌법에 규정된게 아니어서 사용자마다 제각각 뜻이 다르고, 대통령의 2선후퇴나 퇴진, 사퇴, 하야, 탄핵 등의 용어도 마냥 혼재된 채 사용되는 현실이다.
대통령 하야는 헌정 중단이고 2선후퇴는 위헌 소지가 있기 때문에 수용할 수 없다는 여권의 주장도 같은 맥락에서 허점이 많기는 마찬가지다.
정진석 원내대표는 이날 "대한민국 헌정은 계속돼야 한다"면서 "대통령 하야는 헌정 중단, 헌정 파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우리 헌법은 탄핵(65조)뿐만 아니라 하야(68조)나 2선후퇴(71조)에 대해서도 나름의 근거 규정을 두고 있다.
헌법에 의한 정치를 뜻하는 헌정을 중단하는 것은 5.16 같은 쿠데타에 의해서나 이뤄지는 것이다. 대통령이 스스로 물러나는 궐위(闕位)의 상태가 되는 것은 헌법에 있는 내용이다.
여권의 논리대로라면 대통령 하야를 요구한 100만 촛불민심도 헌정질서를 파괴하는 체제위협세력이 된다.
◇ 개헌론
같은 맥락에서 현재 여권에서 제기하는 개헌론도 숨은 복선을 경계하지 않을 수 없다.
정 원내대표는 "최순실 사태의 진상 규명과 병행해서 대통령 친인척, 측근비리의 근본적 해결도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광장의 함성은 우리에게 문제를 던진 것이지 답을 던져준 것은 아니"라면서 개헌 논의에 즉각 나설 것을 촉구했다.
물론 최순실 사태를 계기로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해를 거론하며 개헌 필요성을 제기하는 것 자체는 일면 타당하다.
그러나 이번 사건을 최씨 일파의 '측근 비리'로만 한정하는 것은 명백히 본질을 흐리는 것이며, 빨리 개헌정국으로 전환하려는 속셈이 깔려있는 것으로 보인다.
더구나 역대 대통령들이 측근 비리에 따른 레임덕을 겪긴 했지만 대통령 본인이 문제가 된 적은 없었다. 대통령의 통치능력에 심각한 의문이 제기된 적은 더더욱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