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대통령은 정 의장에게 "국회에서 여야 합의로 총리에 좋은 분을 추천한다면 그 분을 총리로 임명해 실질적으로 내각을 통할해 나가겠다"고 제안했다. '총리 권한 문제로 논란이 발생해서는 안된다'는 정 의장의 지적에는 "신임 총리가 내각을 통할할 수 있도록 실질적 권한을 보장해서 그런 취지를 잘 살려 나가겠다"고 답했다.
총리에게 '내각 통할'을 보장한다는 게 박 대통령의 약속이지만, 현행 헌법에 총리는 이미 '행정각부를 통할'(제86조 ②항)하도록 규정돼 있다. 특별히 새로운 제안이 아니다.
청와대는 이와 관련해 "거국내각을 비롯한 내각구성 권한을 총리에게 충분히 보장한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도 "대통령과 총리간 협의가 있어야 된다"고 한정했다. 실제로 헌법 규정상(제87조 ①항) 장관 임명권자는 대통령일 뿐, 총리가 아니다.
"개헌도 안된 상황에서 대통령이 모든 것에서 물러날 수 있는 근거는 없다"(청와대 관계자)는 기조 그대로다. 박 대통령의 제안은 헌법에 규정된 기존 총리 권한을 확실히 보장하겠다는 것일 뿐, 자신의 권한을 얼마나 어떻게 내려놓을지에 대한 설명이 결여돼 있는 셈이다.
오히려 박 대통령은 정 의장과의 회동에서 "대통령으로서 저의 책임을 다하고 국정을 정상화시키는 게 가장 큰 책무"라면서 국정주도 의지를 거듭 강조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국회 추천 총리에게 실질적인 권한을 다 넘긴다고 했지 않느냐"며 야권의 2선 후퇴 요구가 총리 국회 추천 제안으로 충족된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런 가운데 청와대는 "내정 철회는 아니다. 국회 추천으로 새 후보자가 나오면 정리될 문제"라면서 김병준 총리 내정자의 지위도 유지한다는 방침을 밝혔다. 경우에 따라 김 내정자 임명동의 절차에 들어갈 수도 있다는 것이자, 국회 추천에만 매여있지는 않겠다는 뜻이 될 수 있다.
이날 박 대통령의 행보를 놓고는 "야권에 폭탄을 떠넘긴 것"(여권 관계자)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총리 추천권 이양이란 야권의 요구를 일부 수용하면서, 야권의 양보를 압박하는 전략이라는 얘기다.
박 대통령으로서는 향후 야권이 어느 쪽 입장을 취해도 이득이라는 관측도 있다. 야권이 총리 추천을 거부하는 경우 '반대만 일삼는 야당' 이미지로 역공을 취할 수 있고, 박 대통령 제안을 받아들이는 경우는 '최순실 정국'을 '인사 정국'으로 전환시키는 효과를 거둘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