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김병준-한광옥 보면, '팽' 당한 김종인-이상돈 떠오른다

김병준 국무총리 내정자가 3일 오후 서울 종로구 통의동 금융감독원 연수원에서 기자간담회를 갖고 있다. (사진=황진환 기자)
최순실 게이트로 그로기 상태에 빠진 박근혜 대통령이 구원투수로 김병준(62) 총리 내정자에 이어 3일 한광옥(74) 대통령 비서실장 카드를 꺼내들었다.

신임 비서실장에 내정된 한광옥 국민대통합위원장은 대표적인 동교동계 사람이다. 김대중 정부에서 1999년 대통령 비서실장에 발탁됐고, 대통령직속 노사정위원장과 새천년민주당 대표를 역임하는 등 대표적 야권 중진인사였는데 공천에 불만을 품고 탈당한 뒤 지난 대선때 새누리당에 합류했다.

김병준 총리 내정자는 참여정부 대통령직 인수위에 몸담은 뒤 대통령 정책실장과 교육부총리, 대통령 정책특별보좌관을 지낸 정통 노무현맨이다.

이번 인사에는 과거 야권에 몸담았던 친노, 동교동계 출신 인사를 중용함으로써 거국중립내각의 모양새를 갖추려한 흔적이 엿보인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벌써부터 '통합인사 코스프레'라는 비아냥이 나오고 있다. 과연 김병준-한광옥 카드로 혼란한 정국을 수습할 수 있을까?


시계바늘을 2012년 초로 되돌려보자.

총선, 대선을 앞두고 위기에 빠진 박근혜 당시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은 김종인, 이상돈 두 사람을 영입해 각각 국민행복위원장 겸 경제민주화추진단장과 비상대책위원을 맡긴다. 당명도, 당의 상징색도 바꾼 박근혜 비대위는 이들 두 사람을 통해 당의 노선까지 덧칠을 시도했다.

선거때 야당의 최대 구호였던 '이명박정권 심판론'은 경제민주화와 복지공약을 앞세운 새누리당의 좌클릭 전략에 맥을 추지 못했으나, 선거가 끝난 뒤 둘의 운명은 '토사구팽'이었다. 이들은 나중에 "국민들께 죄송하다"고 사과했다.

김병준-한광옥 내정자가 이들의 전철을 밟지 말라는 보장이 없다. 현재 안고 있는 문제의 본질은 대통령의 국정운영 방식과 민주적인 리더십의 문제에 있는데 대통령의 인식이 바뀌었다는 징후는 아직 찾아볼 수 없기 때문에 그러하다.

왼쪽부터 김종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국민의당 이상돈 의원. (사진=자료사진)
야당의 협조가 절대적으로 필요한 상황에서 아무런 상의없이 참여정부 출신 인사를 기습적으로 총리에 내정한 것도 모자라 동교동계 인사를 비서실장에 기용한 것은 불통의 정치가 그대로라는 얘기다. 한 정치권 인사는 "4년전 합리적 보수를 가장해 경제민주화를 추진하는 것처럼 했다가 이번엔 친노와 동교동계 사람을 통해 국면을 돌파하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병준 총리 내정자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냉장고 안의 음식은 냉장고가 잠시 꺼져도 상한다. 국정도 마찬가지"라며 국정이 붕괴되는 상황을 우려해 총리 내정을 수락했다고 밝혔다. 또 "헌법이 규정한 총리로서의 권한을 100% 행사하겠다"며 "경제-사회 분야에 대한 국정운영은 총리에게 맡긴 것으로 생각한다"고 언급했다.

김 내정자는 국정교과서에 반대한다는 뜻과 함께 최순실 게이트와 관련해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검찰의 수사와 조사가 가능하다는 개인적인 견해도 밝혔다.

그러나 이는 단지 총리 내정자의 발언일 뿐이다. 황교안 총리를 비롯해 박근혜 정부를 거쳐갔던 무수한 총리 내정자가 책임총리로서의 소임을 다하겠다며 거창하고 당찬 포부를 밝혔지만 제대로 존재감을 드러낸 전례가 없다.

비선실세 최순실씨가 국정 전반에 걸쳐 영향력을 행사한 정황이 곳곳에서 드러나고 있는 점에 비춰 그동안 총리는 국정의 2인자가 아니라 그저 행사용 총리였을 뿐이었다.

따라서 진정한 책임총리가 되려면, 또 이를 국민이 믿도록 하려면 박근혜 대통령이 내치에 관한한 권한을 총리에게 넘겨주겠다고 직접 국민들게 소상히 밝히는 게 먼저다. 더불어 국정마비 사태를 불러온 최순실 게이트와 관련해 박 대통령은 검찰 수사에 대한 본인의 입장을 밝힐 필요가 있다.

대통령이 눈을 시퍼렇게 뜨고 있고, 보이지 않는 손의 지휘하에 상황이 관리되고 있다는 의혹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이런 조치들이 없다면 김병준-한광옥 카드는 4년전 새누리당 비대위의 데자뷔이자 눈속임이 아니란 보장이 없다.

국면돌파용 사석(死石)작전이나 꼼수로는 정치적 혼란과 경제 위기, 외교안보의 난맥상과 같은 엄중한 위기를 헤쳐나갈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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