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와 새누리당은 11일 오후 긴급 당정회의를 갖고 7~9월 주택용 전기요금 부과분에 한해 완화된 누진제를 적용하기로 결정했다.
당정이 결정한 누진제 완화 방안은 전체 6단계인 누진제 전 구간의 폭을 50kWh씩 늘리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지금까지는 월 전력 사용량이 130kWh일 경우 2단계에 해당돼 1kWh당 125.9원이 부과되지만, 오는 9월까지 석 달간은 1단계 요금이 적용된다.
1단계 요금의 1kWh 단가는 2단계의 절반에도 미치지 않는 60.7원이다.
당정은 "이번 한시적 누진제 완화에 따라 총 2200만 가구가 석달 간 평균 19.4%의 전기요금 경감 효과를 볼 것"이라고 설명했다.
박 대통령이 이날 새누리당 이정현 대표를 비롯한 여당 새 지도부와 오찬 회동에서 이 대표의 건의를 수용한지 불과 반나절 만에 누진제 개선책이 나왔다.
이 대표로선 취임 선물을 받은 셈이고 서민들에게도 가뭄 끝 단비 같은 소식이다. 하지만 이렇게 간단히 풀릴 것을 왜 그리 질질 끌었는지 생각하면 씁쓸한 뒷맛을 남긴다.
회사원 김모(48. 경기 김포시 구래동)는 "늦게나마 이렇게 결정한 것은 환영하지만 지금까지 뭐하다가 이제 와서 인심 쓰듯 하는 게 기분이 좋지만은 않다"고 말했다.
올 여름 더위는 1994년 이후 20여년 만에 최고를 기록할 만큼 맹위를 떨치고 있다. 서울의 경우 지난달 22일부터 최근까지 이틀(7월29일, 8월3일)을 빼고 매일 열대야 현상을 겪고 있다.
이에 따라 국민들은 한시적이라도 누진제를 완화해 달라고 보름 넘게 호소해왔지만 정부와 여당은 아랑곳하지 않아 원성이 자자했다.
특히 새누리당은 친박·비박 간의 당권투쟁이나 야당에 대한 추경과 사드(THAAD) 공세 등에만 열중해왔다.
그러는 동안 야당은 전기요금 누진제 이슈를 선점하고 공론화에 성공하며 민생·정책 정당으로서의 위상을 다지고 있다.
따지고 보면 정부의 누진제 완화 결정은 성난 민심과 야당의 압박에 밀린 결과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에 이 대표는 "진지하게 살펴보겠다"고 답변했고 이튿날 최고위원회의에서 논의한 결과를 바탕으로 박 대통령에게 누진제 개선을 건의했다.
이 대표 취임 전까지는 폭발 직전의 여론 동향에 무감각했던 셈이다. 조만간 받아들 전기요금 고지서를 보며 가가호호 어떤 반응을 보일지 당내에서 아무도 경보음을 울리지 않았던 것이다.
더민주 김종인 대표가 11일 "이 찜통더위에 에어컨도 켤 수 없는 사태를 바라보면서 과연 국민들이 왜 이런 반응 보이는지를 깊이 새길 필요가 있다"며 총선 참패에도 여태 민심을 읽지 못한다고 혀를 찰 정도였다.
누진제 완화는 지난해에도 시행됐던 전례가 있는 만큼 폭염이 기승을 부린 올해는 더 쉽게 해결될 수 있었다.
물론 늦은 결정에도 불구하고 소급 적용으로 인해 가구별로 손해 볼 일은 없다. 하지만 정부·여당의 무성의와 무감각에 국민들의 불쾌지수는 이미 위험수위에 달했다.
한 최고위원은 "당이 그동안 (전기요금 문제에) 손을 놓고 있었던 것은 상당히 문제가 있다"며 "타이밍을 놓친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