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교롭게도 영장이 기각된 인물들은 대부분 비자금 조성이나 로비 의혹과 관련됐다.
서울중앙지법은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상 횡령과 배임수재 등의 혐의를 받고 있는 롯데건설 상무 박모씨와 상무보 최 모 씨에 대한 구속영장을 기각했다고 9일 밝혔다.
사건을 수사 중인 서울중앙지검 롯데수사팀은 롯데건설이 하도급 업체와의 거래 과정에서 공사대금 일부를 돌려받는 방법으로 10억~20억 원대 비자금을 조성한 것으로 판단했다.
하지만 이들에 대한 영장이 기각되면서 비자금 조성 의혹에 대한 검찰 수사가 차질을 빚게 됐다.
앞서 강현구 롯데홈쇼핑 대표이사에 대해서도 구속영장이 기각됐다. 홈쇼핑 인허가 로비 의혹의 핵심인물인 강 대표에 대한 영장 기각으로 이 부분에 대한 검찰 수사도 다소 동력을 잃었다.
검찰은 강 대표가 지난해 롯데홈쇼핑 사업권 재승인 심사 당시 사업 승인권을 가진 미래창조과학부 등에 로비를 지시한 것으로 판단했다.
또 강 대표는 회사자금 9억 원을 횡령하고 회사에 80억 원대 손해를 끼친 혐의도 받고 있다.
아울러 롯데케미칼 측으로부터 뒷돈 수천만 원을 받아 챙긴 혐의를 받은 세무법인 T사 대표 김 모 씨에 대한 영장도 기각된 바 있다.
검찰은 김 씨가 부산지방국세청이 롯데케미칼에 대한 세무조사를 벌이는 과정에서 국세청 로비 명목으로 수천만 원의 금품을 받았다고 의심하고 있다.
검찰이 의욕적으로 시작한 롯데그룹 비리 수사 과정에서 3차례나 영장이 기각되면서 성과를 장담하기 어려운 상황이 됐다.
비자금 조성과 각종 로비 의혹을 사실로 확인하기가 쉽지 않게 된 것이다.
계열사와 오너 일가에 대한 대대적인 압수수색을 통해 매년 300억 원 상당이 신격호 총괄회장과 신동빈 회장에게 흘러 들어간 정황을 포착했지만 이 자금을 '비자금'으로 규정하지 못하고 있다.
롯데 측은 "배당금과 급여라는 점을 서류 등을 통해 소명했다"는 입장이다.
이에 수사의 타깃도 오너가(家)의 탈세 수사로 옮아가고 있다.
검찰은 신격호 총괄회장이 일본 롯데홀딩스 주식을 셋째 부인인 서미경 씨와 장녀인 신영자 롯데장학재단 이사장 등에게 증여하는 과정에서 6000억 원의 세금을 내지 않은 정황을 잡고 수사력을 모으고 있다.
특히 세금 탈루와 관련해 신동빈 회장과 신동주 전 일본 롯데홀딩스 부회장도 "무관하지 않다"며 총수 일가 전체에게 '칼날'을 겨누고 있다. 검찰이 세금 탈루로 승부수를 띄운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