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일 활동가 "헤이트 스피치는 우익의 오락거리"

신숙옥 노리코에넷 대표 "일본사회 아직 미성숙"

신숙옥 노리코에넷 공동대표
"일본에서 헤이트 스피치의 핵심은 한국인 차별입니다. 동네마다 쓰레기 수거차가 돌아다니면서 '조선인이 있으면 쓰레기통에 담아 말살시켜버립시다'라는 방송까지 했을 정도였습니다."

재일교포 3세로 헤이트 스피치 반대모임인 '노리코에넷'을 운영하고 있는 신숙옥 공동대표는 헤이트 스피치가 절정에 달했던 2013~2014년을 회상하며 말했다. 20여년 넘게 거리 위에서 시민운동을 펼쳐온 신 공동대표도 헤이트 스피치 세력의 주요 목표 대상인 신오쿠보 한인타운에 발을 디뎠을 때 극도의 공포감을 느꼈다고 털어놨다.

"'조선인 여성은 강간해도 좋다'는 식의 혐한 발언들이 쏟아지다보니 다들 공포감에 질려 이야기를 낼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경찰도 헤이트 스피치를 반대하는 시위대를 무력으로 끌어내는 일이 다반사였습니다."

재일교포를 공포에 떨게 한 헤이트 스피치 기세가 꺾이게 된 것은 불과 세 달 전의 일이다. 지난 5월 24일 연립여당인 자민당과 공명당이 발의한 헤이트 스피치 해소법이 일본 중의원 본회의에서 통과되면서 헤이트 스피치 세력의 기류도 변화했다.

하지만 신 공동대표는 헤이트 스피치 해소법의 시행은 찬성하지만, 아직도 갈 길이 멀다는 점을 일본 현지에서 전파하고 있었다. 강연차 환경재단이 주최한 '피스 앤 그린보트' 프로그램에 참석한 신 공동대표를 CBS 박재홍 아나운서가 만났다.

▶ 재일교포의 권리 회복을 위해 시민운동에 나서게 된 계기부터 듣고 싶다.

"성격 탓이다. (웃음) 어머니와 오빠, 남동생이 정신적으로 너무 약했다. 학교에서 남동생이 이지메를 당해 울고 돌아오면 내가 학교를 찾아가 복수하곤 했다. 어린 시절 어머니에 대한 기억도 이웃들의 등살에 밀려 계단에서 울고 있는 모습이었다. 모두가 '안 된다'고 할 때 나는 '된다'는 DNA가 있었던 것 같다."


▶ 막상 거리로 나서보니 혐한 시위의 실태가 어땠나?

"조선학교 등교 방해는 가벼운 수준이다. '좋은 한국인이든 나쁜 한국인이든 모두 죽여버려라’라고 적힌 피켓을 들고 나왔고, 심지어는 일본인 여중생이 마이크를 들고 ‘재일교포들이 많이 사는 지역에 찾아가 학살하겠다'는 증언도 서슴없이 내뱉었다."

▶ 당시에 재일교포들의 피해가 상당했을 것 같은데?

"신오쿠보 안에 교포들이 운영하는 상점 280여개가 망했다. 보수 우익들이 상점에 찾아와 '다케시마, 센카쿠 열도는 누구 땅이냐?'는 식으로 행패를 벌이기 때문에 영업 자체가 불가능하게 된 것이다. 혐오발언들이 적힌 낙서들도 지우면 다시 그리는 식으로 이어졌다."

▶ 주로 헤이트 스피치에 나서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인가?

"의외로 50대 전후의 중산층들이 많이 출현한다. 이들에게 헤이트 스피치는 오락의 개념이다. 또한 일본의 중산층 계급의 경제적 입지가 줄어들고 있다는 불안감도 헤이트 스피치에 나서는 주된 요인이다."

신숙옥 노리코에넷 공동대표(오른쪽)과 박재홍 아나운서
▶ 다행히도 헤이트 스피치 해소법이 일본 중의원에서 통과됐다. 구체적으로 어떤 변화들이 나타나고 있나?

"우선 경찰의 태도다. 헤이트 스피치에 반대하는 시위대를 제지하는 일이 줄어들었다. 이전에는 반대하는 운동가들이 폭행을 당하고, 시위와 전혀 상관없는 지인들도 재판을 받는 일이 발생했다. 하지만 시행 이후 경찰의 배치와 시선이 반대 시위대가 아닌 혐한 시위대를 향해 돌아설 정도로 대응의 원칙 자체가 바뀌었다."

▶ 뜻 깊은 성과를 거둔 셈인데 아직도 부족한 점이 있나?

"그동안 일본에서 차별 철폐를 지지하는 정치 지도자는 한 번도 없었다. 사실상 우익 단체들의 활동은 정치계에 보험을 들어놓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일본의 주류 정치가들이 우익 세력의 입장을 비호해주고 있는 상황에서 헤이트 스피치가 이대로 소멸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 헤이트 스피치 반대를 옹호하는 일본 내의 정치 세력은 없는 것인가?

"사실상 없다는 것이 문제다. 민주주의의 한계라고도 볼 수 있는데 우리의 주장을 대변할 정치가를 내세울 수 있는 유권자들의 표가 적다. 아직도 재일교포는 투표권을 행사할 수 없기 때문에 선거를 통해 싸울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여전히 일본 사회는 성숙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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