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 재무장관과 유일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만난 한·미 재무장관회의에서 최대 화두는 환율 문제였다.
유 부총리는 "환율은 시장에서 자율적으로 결정되며 환율 급변동 등 예외적인 경우에 한해 시장안정 노력이 이루어진다"는 기존 한국 정부의 환율정책 원칙을 재차 강조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루 장관은 "환율정책보고서에서 평가한 것처럼 한국이 (환율에) 일방향으로 개입하지 않고 있다고 생각한다"며 기존 입장을 재확인하는 데 그쳤다.
뒤집어 말하면 한국 정부가 외환 시장에서 적극 움직이기만 하면 '일방적 개입'으로 판단하겠다는 으름장이자, 유 부총리의 해명에도 의심을 거둘 수 없다는 경고인 셈이다.
그동안 한·미 FTA 이후 한국의 대미 무역수지 흑자 규모는 2012년 152억달러, 2013년 206억달러, 2014년 250억달러, 2015년 283억달러로 거의 2배 가까이 불어났다.
결국 지난 4월 루 재무장관이 수장인 미 재무부는 환율 개입 의혹이 있다며 한국을 관찰대상국으로 지정했다.
실제로 미국 정부가 한국산 철강 제품에 최대 48%의 반덤핑 관세를 부과하는 등 원화 가치를 절상하라는 통상 압력 수위가 고조되는 형국이다.
이같은 미국의 원화절상·통상압력은 이번 회의를 앞두고 더욱 거세졌다.
루 장관 방한 직전에는 마크 리퍼트 주한미국대사가 "한·미 FTA의 완전 이행을 서둘러야 한다"고 노골적으로 압박했다.
루 장관 본인도 회의 직전 미 재무장관으로는 사상 최초로 한국 환율 정책의 한 축을 맡고 있는 이주열 한은 총재를 루퍼트 대사와 함께 비밀리에 만나는 이례적 행보까지 보였다.
이처럼 미국 정부가 통상 문제에 민감한 가장 큰 이유는 올 연말 미국의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보호주의 흐름이 강화되기 때문이다.
민주당 힐러리 클린턴 후보와 공화당 도널드 트럼프 후보 모두 한결같이 대미 무역 흑자국에 불만을 터뜨리며 인위적 환율 조작을 의심하고 있다.
따라서 한동안 미국 정부의 거센 압박이 계속될 수밖에 없지만, 인위적인 원화 절상의 경제적 부담이 상당한만큼 한국 정부가 과연 얼마나 실리를 살릴 수 있을 지 향후 대응이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