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싣는 순서 |
① 부실기업 꿰찬 '정피아·산은낙하산'…기업부실화는 인재(人災) ② 총대맨 금융위 배후 청와대는 '쏙'…애먼 산은·수은만 '덤터기' |
현재 정치권와 금융당국에서는 산은 등 채권단에 책임을 묻는 발언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금융위나 기재부 등 책임있는 당국에서는 정확한 책임소재를 가리고 이를 토대로 재발방지를 논의하기 보다는 쓰러져 가는 기업에 대한 '연명식 구조조정'에만 매달리고 있다.
산은 등 국책은행은 "적반하장식의 성과연봉제 카드를 들이밀며 BH코드 맞추기식 행정으로 구조조정 책임 본질을 흐리고 있다"고 토로하고 있다.
◇ 국책은행 실제 관리 주체는 '금융위'
금융권에서는 금융당국과 정부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점점 커지고 있다. 금융당국이 책임을 회피하기에만 급급하다는 것이다.
특히 금융위가 산은의 부실경영, 방만 운영 등에 대해 질타하는 것을 두고는 '적반하장도 유분수'라는 냉소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산업은행 한 관계자는 "산은의 100% 지분을 금융위가 가지고 있다. 산은이(주채권은행) 기업들에 대해 제대로 구조조정을 하지 않았다면 거기(금융위)에서 귀책사유가 있다고 본다"고 지적했다.
산업은행의 실제 관리 주체가 금융당국이었고, 대우조선해양과 STX조선 지원은 금융위가 주도한 결과라는 것이다.
산업은행법 제13조(임원의 임면)에는 금융위원장이 회장을 제청해 대통령이 임명하고, 전무이사와 이사는 회장의 제청으로 금융위가 임면한다고 적시돼 있다. 감사 역시 금융위가 임면하도록 돼 있다.
제22조에는 산은의 업무계획의 승인권이, 제34조에는 산은을 감독하고 명령, 임원의 해임 등 징계할 권한이 각각 금융위에 있음도 적혀있다. 즉, 금융위가 산은의 모든 것을 좌지우지 할 수 있는 구조라는 것이다.
◇ 대우조선해양의 실제 주인도 '금융위'
대우조선해양의 지분 구조를 살펴보면, 제1대 주주는 산은(49.7% 보유), 제2대 주주는 금융위(12.2%)다. 산은의 주인이 금융위인 것을 감안하면, 금융위가 대우조선해양의 실 소유주나 다름없다는 얘기다.
금융권 관계자는 30일 "산은·수은의 부실이 커진 원인 가운데 하나는 지난해 10월 이뤄진 대우조선해양에 대한 4조2천억원 지원 결정이었다"며 "지금까지 운영자금 2조8천억원이 지원됐고 4천억원의 유상증자도 이뤄졌으며 앞으로도 1조원을 더 쏟아 부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이 관계자는 "이 결정은 임종룡 금융위원장을 비롯해 기획재정부 장관, 금융감독원장, 청와대 경제수석 등이 참석한 이른바 ‘서별관회의’(비공개 경제금융점검회의)에서 내려졌다"며 "산은이나 수은은 정부 정책적 결정을 따른 것일 뿐"이라고 덧붙였다.
◇ 정치판에 놀아나거나 방관한 '금융위'
산은을 관리·감독해야 할 금융위가 주주총회에서는 늘 회사 쪽 안건에 찬성했다는 주장도 나왔다.
2014년 3월 주총에서 "대우조선해양의 대주주인 산은 임원이 대우조선의 감사에 임명되면 독립성이 훼손될 가능성이 있다"며 베어링자산운용 등 23곳의 기관투자자가 반대 의견을 냈으나 금융위는 찬성표를 던졌다. 이듬해 주총에서는 1인당 임원 보수 한도를 6억6700만원에서 7억5000만원으로 인상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1954년 산업은행이 설립된 이래 내부출신이 은행장으로 임명된 것은 단 세 차례 뿐이었다. 대부분 정권차원에서 내려보낸 인사들이었다. 산은에 전문성이 없는 회장을 임명한 주체가 청와대나 금융위라는 것이다. 실제 산업은행장은 대부분이 청와대 낙하산으로 채워졌다.
홍 전 회장의 재임시절인 2013년과 2015년에 산업은행에 각각 순손실 1조4474억원, 1조8951억원을 기록했다. 홍 전 회장은 동부그룹의 구조조정 타이밍을 놓친데다 대우조선해양 부실을 키웠다는 비판을 받고 있는 인물이다.
이동걸 현 산업은행 회장은 지난 대선 당시 박 대통령이 이사로 있는 영남대 교수로 있으면서 박 후보자에 대한 금융인 지지선언을 주도한 인물로 알려졌다.
이전 정부였던 이명박 정부 시절에 회장을 맡았던 강만수 회장도 이명박 정부 시절 대통령실 경제특별보좌관을 지낸 직후 산은금융지주 회장에 선임됐다.
금융권 한 관계자는 "국책은행들이 정권의 입맛대로 움직이게 된 것은 낙하산 인사들이 계속 내려온 것 때문인데 금융위는 이에 동조하거나 방관했다"고 토로했다.
◇ 정권에 따라 수시로 바뀌는 금융위 정책
정권에 따라 계속해서 바뀌는 목표들도 문제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녹색금융'과 '기술금융'이다.
금융당국은 이명박 정부시절 '녹색금융'을 야심차게 밀어붙였다. 하지만 정권이 바뀌고 박근혜 정부가 들어서자 '기술금융'으로 전환됐다. 녹색금융은 온데간데 없어졌다.
이런 행태는 이전에도 마찬가지였다는 게 금융권의 분석이다. 김대중 정부의 벤처 육성책과 노무현 정부의 동북아 금융허브 등 정권 코드에 철저히 맞춰졌다.
시중은행이 부실업종에 대해 자금을 회수하는 동안에도 유독 산업은행만은 계속 천문학적인 자금을 투입한 것이 결국 금융위 탓이라는 것이다.
◇ 여전히 BH코드 맞추기에만 급급한 금융위
구조조정 큰 그림을 그려야 하는 시기에 금융위가 내놓은 '성과연봉제'를 놓고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시민단체와 금융노조 측은 임종룡 금융위원장의 BH코드 맞추기 정책에 불만을 쏟아냈다.
금융당국이 내세운 논리, "산은과 수은의 방만한 운영은 성과연봉제를 통해 개선할 수 있다"는 것이 어불성설이라는 것이다.
권오인 경실련 팀장은 "국책은행을 관리하는 것은 금융위인데, 부실채권을 발생시킨 책임이 산업은행에도 있겠지만 부실하게 한 금융위도 책임이 있다"며 "스스로도 구조조정 컨트롤 타워라는 식으로 얘기했고, 사실상 금융위가 주도해왔는데, 이제와서 논란이 되니까 책임을 지지 않으려고 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산업은행 내부 한 관계자는 "금융위에서 주장하는 것은 산은, 수은 구조조정이란 현안을 다뤄야 하니까 성과연봉제는 빨리 정리를 해라는 식"이라며 "구조조정과 성과연봉제는 관련이 없는데. 조선 구조조정을 빨리 진행해야 할 당국이 대통령 보고가 임박하자 마구잡이식으로 밀어붙이려고 하는 것 같다"고 토로했다.
이어 이 관계자는 "정부에서 결정난 것에 대해서 뒤엎기는 힘든데 추후 손실에 대해서는 우리만 독박을 쓰는 구조"라며 "국회를 통해서 제대로 된 진상조사를 해서 책임소재를 가려야 하고 거기에 관련된 금융위원장, 기재부장관 등 서별관회의에서 논의했던 당사자들의 결정이 제대로 된 판단이었는지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 시민단체·전문가, "이번엔 책임을 지워야"
시민단체와 금융권 및 금융 전문가들은 제2, 3의 STX조선 사태를 막으려면 이번에 반드시 책임소재를 명확히 해서 엄단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안진걸 참여연대 팀장도 "정치권 낙하산 인사들이 무분별하게 사외이사로 가서 부실방만경영을 부추기는 것을 봤을때 명백하게 정부당국, 관치금융당국의 정책실패가 있었다"며 "이번 사태에 대해서는 반드시 철저한 책임추궁과 함께 재발방지대책도 만들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산업은행 한 관계자는 "실제로 구조조정 건이 발생하면 산은이 정책금융기관으로 할 수 있는 게 없다"며 "금융당국에서 결정된 사안을 일방적으로 통보하다보니까 관리가 부실해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대우조선해양을 살리자고 결정했던 금융당국이 지금에 와서는 쏙 빠지고 책임은 산은이 지라고 하는 식"이라며 "이런 것이 반복되면 제2, 제3의 대우조선 사태가 발생하지 않으리란 법은 없다"고 토로했다.
한상일 한국기술교육대 산업경영학과 교수도 "경제적 손실 주체가 확정돼야 한다. 그 주체한테 의사결정권을 줘야하는데 현재 그런 것이 없다"며 "조선산업 등 특정산업만 죽어가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강성진 고려대 경제학 교수는 "국책은행이 만들어 질 때에는 정부가 민간 보다 우월했던 때였지만 지금은 민간이 공적기관보다 경쟁력이 있는 상황"이라며 "이제는 정부가 주도하는 산업정책을 하지 말아야 한다"고 충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