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신경숙 표절 사태 이후 침체일로를 걷던 한국 문학계에는 벼락처럼 날아든 희소식이 아닐 수 없다.
맨부커상선정위원회는 16일 저녁 7시(현지시간) 영국 런던 빅토리아앤알버트 박물관에서 진행된 시상식을 통해 한강의 소설 '채식주의자'를 2016년 맨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 수상작으로 발표했다.
한강의 맨부커상 수상은 한국 작가로는 처음이다. 영미권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맨부커상은 노벨문학상, 프랑스 공구르상과 함께 세계 3대 문학상으로 꼽힌다는 점에서 의미를 더하고 있다.
'채식주의자'(펴낸곳 창비)는 어린시절 자신의 다리를 문 개를 죽이는 장면이 뇌리에 박혀 점점 육식을 멀리하고 스스로 나무가 돼간다고 생각하는 영혜를 주인공으로 한 소설 3편을 묶은 연작소설집이다.
'한강 소설에 나타나는 채식의 의미'(문학과환경·2010)를 주제로 평론을 발표했던 문학평론가 신수정 명지대 교수는 한강의 이번 수상을 두고 "한국 문단의 엄청난 축복"이라고 표현했다.
신 교수는 "맨부커상 본상을 받는다는 것은 쉬운 것이 아니"라며 "한강의 이번 수상은 한국 문학이 세계 시장으로 나갔다는 것이다. 비평적으로 그 작품을 인정받아 감회가 남다르다"고 전했다.
시인이자 문학평론가인 김응교 숙명여대 교수도 "(한강의 '채식주의자'는) 충분히 그럴 만한 작품"이라며 "핵심 주제는 육식을 거부하는 딸을 때리고 사람을 문 개를 오토바이에 묶어 끌고 다닌 아버지가 지닌 남성적 폭력"이라고 평했다.
최원식 한국작가회의 이사장은 "작가 한강에 대해서는 최근 '소년이 온다'(창비·2014)라는 작품을 보고 괄목상대했다"며 "그의 이전 작품들을 다시 찾아봐야겠다는 마음을 먹고 있던 차에 이번 수상 소식을 들으니 더욱 관심이 간다"고 말했다.
최 이사장은 "한국문학의 주류는 '가난하지만 착한 사람들에게는 비둘기처럼, 정의롭지 못한 강자에게는 호랑이 같은 문학'으로 표현되는 강한 사회성을 품었는데, 뛰어난 작가들은 문학을 통해 사회성과 예술성을 통일시켜 왔다"며 "한강은 '소년이 온다'를 통해 피해가고 싶지만 결코 피할 수 없어 정면승부를 건다. (작가로서 성장하는) 그 과정이 너무도 아름답다"고 강조했다.
◇ 뛰어난 한국 작가·작품 알리기…'동반자'로서 번역가에 주목
실제로 소설 '채식주의자'는 지난 2004년 처음 발표된 작품으로 2007년 단행본으로 출간됐다. 하지만 해외에는 지난해 1월 처음으로 소개됐고, 이에 따라 올해 맨부커상에 이름을 올린 것이다.
김응교 교수는 "우리 문학은 (세계적으로 권위 있는) 상을 받을 수준에 오른 작품이 많은데, 번역과 같은 접촉점의 문제가 있다"며 "번역이 얼마나 중요한가. 번역이 되지 못해 알려지지 못한 작품들이 많았는데, 이번 수상이 참 기쁜 이유"라고 전했다.
이날 맨부커상 시상식에서는 규정에 따라 채식주의자를 영어로 번역해 영미권에 소개한 영국인 번역가 데버러 스미스(29)도 한강과 함께 맨부커상 공동 수상자로 호명됐다.
최원식 이사장은 "뛰어난 번역가는 해당 작가와 작품을 잘 이해하고 소명의식을 지닌 동반자인데, ('설국'으로 유명한) 가와바타 야스나리가 노벨문학상 등을 탄 데는 일본에 깊은 관심을 지녔던 에드워드 사이덴스티커라는 뛰어난 번역가의 역할이 컸다"며 "맨부커상의 경우 작가와 함께 번역가에게도 상을 준다는 점에서 훌륭한 제도를 갖췄다"고 말했다.
이어 "한국에 유학 온 일본, 중국, 서양 사람들 가운데 한국문학을 이해하고 있는 학생들은 용돈도 벌면서 번역을 많이들 하고 있다"며 "이들을 부양해 주면 각국에 돌아가 한국문학에 대한 애정을 바탕으로 수준 높은 번역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제안했다.
◇ 한국문학에 염증…등돌린 독자들 다시 끌어모일 수 있을까
신수정 명지대 교수는 "한강은 우리 문단 내부에서 비평적으로, 대중적으로 높은 평가를 받은 작가로 이미 국내 문학상을 많이 받았다"며 "(맨부커상 수상을 통해) 한국에서 이미 통하는 최고 수준의 작가로서 작품 자체가 우수하다는 것을 인증받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요즘 트렌드인 채식은 전 세계가 공감하는 영역으로서, 이는 육식으로 대표되는 폭력적 세계에 대한 강력한 저항이 되기도 한다"며 "전 세계가 필요로 하는 주체의 자기선언에 온 세계가 공감하지 않았나 싶다. 무엇보다 보편적 주제였다.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 세계가 인정하는 보편적 주제에 대한 공명"이라고 분석했다.
지난해 신경숙 표절 사태 이후 독자들은 한국 문학에 대해 강한 염증을 느끼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한강의 맨부커상 수상이 한국 문학에게 전환점을 제공할 수 있을지도 관심사다.
김응교 교수는 "내부적으로 한국문학이 너무 침체되고 있다. 시집은 현재 시집이 아니라 과거의 시집이 팔리고 있고, 소설은 문학성 높은 소설이 아니라 상품성 있는 것들이 팔리고 있다"며 "내부에서는 문학상 등을 받아도 전혀 독자들의 관심을 받지 못하는 환경이다. 독자와 작품이 만나지 못하는 현상들이 잇따라 일어나고 있다"고 우려했다.
김 교수는 "맨부커상 수상이라는 외부로부터 온 충격으로 한국문학이 부각된 격인데, 이로 인해 내부에서 곪은 것이 아물고 우리 문학에 대한 관심도가 다시 높아지지 않을까라는 기대를 해본다"며 "이번 수상을 계기로 외부적으로는 번역을 통해 우리 문학 작품들이 널리 알려졌으면 좋겠고, 내부적으로는 문학성 높은 작품들이 보다 많이 조명 받고 쓰여지고 읽혔으면 한다"는 바람을 전했다.
최원식 이사장도 "(맨부커상을 받은) 한강에게로 회귀할 독자들을 통해 한국문학의 또 다른 희망을 보게 된다"며 "책을 사는 행위는 투표와 같다"는 말로 독자들에게 좋은 문학을 선택해 달라고 당부했다.
그는 "최근 들어 서점에 가면 지난해 신경숙 표절 사태 탓인지 한국문학으로부터 독자들이 떨어져나갔다는 것을 더욱 체감하게 된다. 독자들이 한국문학으로 돌아올지는 모르겠지만, 이번 맨부커상 수상으로 우선 한강이라는 작가에 주목할 것이라는 점에서 긍정적"이라며 "이번 총선에서 훌륭한 선택을 하셨듯이, 독자들께서 훌륭한 책을 사 주시면 훌륭한 작가를 북돋아 주는 것이고, 덜 훌륭한 책을 선택하면 그러한 문학이 부양된다. 책을 살 때 신중하게 판단해 주시기를 바란다는 말씀 드리고 싶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