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화정책만으론 안돼"…이주열 총재의 '불편한 심기'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19일 오전 서울 남대문로 한국은행 본관에서 열린 금융통화위원회 회의에 참석해 생각에 잠겨 있다. (사진=황진환 기자)
총선 과정에서 불거진 '한국판 양적완화'의 여파에다 최근 '금리인하 여력이 있다'는 유일호 경제부총리 발언 등으로 기준금리 인하 기대감이 다시 커지고 있다.

평소 신중하고, 말을 아끼는 이주열 한국은행총재가 경기를 살리기 위한 처방으로 거론되는 '구조조정'과 '금리인하' 문제에 대해 비교적 분명한 어조로 한국은행과 금융통화위원회의 입장을 밝혔다.

19일 금융통화위원회 직후 기자간담회에서 한 기자가 "여소야대 국회가 등장하면서 추경 편성과 같은 정부 주도 경기부양책을 쓰기가 더 어려워졌다. 이런 상황에서 국회동의 없이 쓸 수 있는 카드는 기준금리 인하가 유일하다는 일부의 주장이 있는데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고 물었다.

곤혹스러울 수 있는 질문에 이 총재는 다른 나라의 예를 들며 한은의 입장을 밝혔다.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지자 미국을 중심으로 경기침체와 금융시스템에 대한 우려가 높아졌다. 미국은 제로금리에 이어 양적완화를 취했다. 뒤이어 유럽에서 재정위기 문제가 부각되면서 역시 경기침체와 디플레이션 우려에 직면하게 됐고, EU도 똑같이 제로금리에 양적완화를 추진했다.

일본도 여기에 동참했고, 많은 신흥국들도 통화정책을 완화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운용했다.

그 결과 단기적으로는 조금 효과가 있는 듯 했지만 결국은 성장세는 미약하고, 저물가에 직면해 있다.

이런 결과(통화정책이 근본적인 효과를 보지 못한 상태)가 초래된 것은 그 원인이 '경기요인'보다 '구조요인' 때문이었고, 이들 국가들도 같은 진단을 내리고 재정정책과 구조조정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정치적인 이유로 인해서 구조조정 정책이나, 경우에 따라 재정정책이 통화정책을 못 따라주는 것이 사실이다.


이 점은 여러 이유로 구조조정이 어렵다고 해서 통화정책에만 의존하면 안 된다는 뜻이다.

그러면서 이 총재는 '물론, 금통위는 경기회복을 지원하는데 주력할 것이지만 통화정책만으로는 안 되니까 전반적인 정책이 같이 갈 경우에만 효과가 있다'는 것이 금통위의 스탠스다.

"중앙은행의 금리(조정)가 가장 빠를 수는 있지만 어떤 정책은 시너지효과를 내는 게 중요하고, 같이 갈 때 경제주체들에게 신뢰를 불어넣어줄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 총재의 답변은 국회동의를 거쳐야 하고, 이해당사자들의 반발로 구조개혁이 어렵다는 이유로 금리정책에만 매달린다면 기대했던 경기회복은 안되고, 가계부채 등 부작용만 키울 수 있다는 경고의 의미를 담고 있다.

구조개혁은 이해 당사자들의 반발과 그에 기반한 정치세력의 동의를 구해야 한다는 점에서 쉽지 않은 과제다. 부실기업을 정리하는 것이 구조조정의 시작이지만 정치논리에 기대어 생명을 연명해가는 것이 단적인 예다.

반면 한국은행의 금리조정과 발권력은 금통위원 7명 중 4명만 동의하면 동원 가능한 카드다. 그래서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정치권력은 필요한 돈을 쉽게 조달할 수 있는 발권력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한다.

물론, 정치권력이 원한다고 중앙은행이 돈을 찍어낼 경우 어떤 일이 벌어지는 지는 역사가 보여준다. 가까이는 2007년 미국의 서브프라임모기지 사태, 2003년 카드대란 등이 모두 무리한 신용완화가 가져온 부작용이었다.

발권력을 가진 중앙은행이 정부로부터 부당한 압력을 받지 않도록 법으로 독립을 보장한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이날 이 총재의 발언은 우리 경제를 근본적으로 살리기 위해 구조개혁이 필요하고, 이를 위해 정부와 정치권이 함께 노력해 달라는 중앙은행 총재의 호소로 받아들여진다.

지금처럼 구조개혁이 제대로 추진되지 않는 상황에서 금리를 내리고, 자금을 지원해 봐야 부실기업들의 생명만을 연장할 뿐이고, 이는 결국 사회적 부실만 더 키울 뿐인데 정부와 정치권은 손쉽다는 이유로 통화정책에만 기대려 한다는 것이다.

한은이 기준금리 인하에 신중한 것은 우리경제를 둘러싼 불확실성이 여전히 크다는 점도 작용했다. 미연준이 금리인상 속도를 완만히 가져가기로 했고, 이에 따라 중국 등 신흥국 경제의 불안도 다소 완화되면서 세계금융시장은 안정세를 찾아가고 있다. 그러나 이는 시기가 미뤄졌을 뿐 언제라도 재연될 수 있다.

최근 유일호 경제부총리는 '금리인하 여력이 있다'고 했지만 이주열 총재는 "경제상황이 불확실할 때는 정책을 아껴둘 필요가 있다"고 했다. 비록 기초체질이 튼튼하다고 해도 우리경제는 소규모 개방경제의 특성상 외부 충격에 상대적으로 취약하고, 과거 외환위기와 글로벌금융위기의 아픈 경험이 있다.

그런 만큼 효과가 미미한 경기부양을 위해 금리를 내릴 수 있는 여력을 소진한 뒤 만약 금융시장에 어떤 충격이 온다면 통화당국이 두 손을 놓고 지켜봐야 하는 상황이 올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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