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기 단축근무…여전히 그림의 떡?

노동부, 임신기 단축근무제 확대 홍보하기 전에 장애물부터 치워라

기사와 직접적인 연관이 없음. (사진=스마트이미지 제공/자료사진)
정부가 임신한 노동자들의 일하는 시간을 2시간 줄이도록 관련 제도를 확대했지만, 적용대상을 늘리기 전에 제도 보완이 급선무라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한 중견기업의 4년차 직장여성이었던 김모(30)씨는 지난해 8월 회사를 그만뒀다.

당시 임신 8개월이던 김씨는 '근로시간 단축제도' 대상이었지만, '회사 사정 알지?'라는 직장 상사의 한 마디에 근로시간 단축은커녕 직장 동료들과 똑같이 야근 당직까지 맡아야 했다.

김씨는 "애초 '임신기 근로시간 단축제도'라는 제도 자체를 들어본 적도 없다"라며 "'일손이 부족하다'는 말에 새벽 6시부터 다음날 새벽 1시까지 당직을 맡아야 했다"고 털어놨다.


이어 "동료들이 내 몫의 일까지 해야할 걸 뻔히 아는데 일을 덜하겠다고 말하기 어려웠다"며 "결국 당직 다음날 정기검진에서 아이 상태가 나빠졌다는 진단을 받은 바람에 회사를 그만뒀다"고 말했다.

정부는 2014년 9월부터 300인 이상 사업장에만 도입됐던 '임신기간 근로시간 단축 제도'를 지난 25일을 기해 상시 고용된 노동자가 1명 이상 있는 모든 사업장에 확대 적용한다고 밝혔다.

이로써 유산의 위험이 높은 임신 12주 이내, 혹은 조산의 위험이 높은 36주 이후에 있는 모든 노동자가 같은 임금을 받고 일하는 시간은 최대 하루 2시간씩 줄일 수 있게 됐다.

하지만 '임신이 벼슬이냐'는 직장 상사의 눈치는 물론, 자신이 일하던 몫을 떠안게 된 동료들이 눈에 밟히다보면 임신한 노동자가 근로시간 단축제를 이용하기는 그림의 떡이다.

실제로 노동부가 내놓은 '2015년 일·가정 양립 실태조사'에 따르면 지난 1년 동안 단 한 명이라도 제도를 사용한 회사는 11.6%, 그나마도 한 사업장에서 평균 1.9명만 사용했다.

노동부 관계자는 "2904개인 300인 이상 고용 사업장 가운데 100개 사업장만 표본으로 추출한 통계"라며 "따로 급여를 지급하지 않고 회사 내에서 처리하다보니 정확한 실태조차 파악하기도 어렵다"고 밝혔다.

근로시간 단축제를 가로막는 가장 큰 장애물은 역시 직장상사지만, 근로시간 단축을 거부한 회사에 마땅히 항의할 방법도 없다.

회사가 근로시간 단축을 거부하면 과태료 500만원을 내야 하지만, 신청을 거부당한 노동자 본인이 직접 노동청에 신고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회사가 해당 노동자를 찾아내 불이익을 가할 위험이 크다 보니 적발 사례는 2015년 한 해를 통틀어 겨우 3건에 불과했다.

따라서 전문가들은 정부가 '저출산 대책을 확대했다'며 홍보에 급급하기보다는 제도 보완부터 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민주노총 김수경 여성국장은 "보건의료 업계의 경우 주야3교대로 근무하는데 근로시간 단축을 신청할 수 있겠나"라며 "300인 이상 사업장에서도 사용률이 저조한데, 노조가 조직되지 않은 영세사업장에서 개인이 신청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강제로 근로시간 단축제도를 도입해봐도 오히려 여성 노동자를 기피하는 풍조만 더 심해진다"며 "대체인력을 도입하는 한편, 남성도 근로시간을 단축하는 등 전면적인 노동 시간 단축을 위한 제도 개선이 동반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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