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야구위원회(KBO)는 최근 "지난달 MLB로부터 포스팅 금액 상한선을 800만 달러(약 93억 원)으로 하자며 한·미 선수계약협정 개정안을 보내왔다"고 밝혔다. 해외 진출 자격을 얻은 비FA 선수의 이적료 최대치를 묶자는 것.
800만 달러는 일본야구기구(NPB) 소속 선수의 이적료 상한선인 2000만 달러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금액이다. 때문에 KBO의 수준을 무시하는 것이 아니냐는 논란이 일었다.
KBO는 전체적인 선수층은 일본보다 얇지만 톱클래스 수준은 비슷하다는 평가다. 지난해 두 국가의 정예가 나선 프리미어12에서도 한국은 4강에서 일본을 꺾고 정상에 올랐고, 2008년 베이징올림픽과 2006, 09년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서도 라이벌 대결에서 이기고 지는 등 호각세를 보였다.
일단 역대 사례를 보면 이적료는 일본이 높았던 게 사실이다. 2006년 마쓰자카 다이스케는 보스턴으로부터 5111만 1111 달러의 이적료를 받았고, 2011년 다르빗슈 유(텍사스)는 역대 최고인 5170만 3411 달러의 응찰액을 기록했다. KBO는 2012년 류현진이 LA 다저스에서 2573만7737 달러, 박병호가 미네소타에서 지난해 1285만 달러를 받았다.
일단 KBO는 MLB와 협상 만료일을 오는 5월15일로 미룬 상황이다. 단시간에 결론을 내기 쉽지 않은 까닭이다. 팬들 여론과 구단 입장 등을 고려해 깊은 고민이 생길 수밖에 없다.
▲선수협 "선수뿐 아니라 구단 입장도 생각해야"
결과적으로는 MLB의 제안을 어쨌든 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한·미 선수계약협정이 깨지면 KBO 리그 선수들이 무분별하게 미국으로 유출될 수 있는 까닭이다.
물론 KBO 복귀 금지나 출전 제한 징계 등의 장치가 있지만 근본적으로 선수 유출을 막기에는 역부족이다. 일본의 경우도 2013년 MLB의 제안대로 2000만 달러 이적료 상한선이 확정됐다.
한국프로야구선수협회도 고민하는 부분이다. 사실 이적료 상한선은 선수들에게는 호재가 될 수 있다. MLB 구단이 그만큼 선수 연봉에 더 많은 금액을 책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박병호의 경우 비교적 높은 이적료에도 연봉은 4년 1200만 달러 보장에 그쳤다. 선수에 대한 투자액은 정해져 있는데 이적료에 더 많은 지출이 들어간 까닭이다.
선수협 박충식 사무총장은 MLB 상한 제안 논란이 일던 지난 20일 CBS노컷뉴스와 통화에서 "지난해 초 MLB로부터 포스팅 상한선을 두자는 언질이 있어 예상은 하고 있었다"고 운을 뗐다. 이어 "일본과 차이가 적지 않아 그대로 받아들이기는 어렵다"면서도 "물론 선수들의 연봉을 챙겨준다는 입장이라면 이해할 수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곧이어 박 총장은 "그러나 선수를 키우고 투자를 해온 KBO 구단들의 입장도 생각해야 한다"고 전제했다. 선수의 꿈을 위해 구단이 일정 부분 양보하는 만큼 배려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어 "만약 포스팅 금액도 낮추고 이에 따라 연봉도 낮아져 선수들이 대우를 제대로 받지 못하면 수용하기 어렵다"면서 "포스팅 금액도 유지하고, 연봉도 많이 받아야 할 부분"이라고 강조했다.
▲KBO "상한선, 선수에게 불리할 수도 있다"
KBO 역시 마찬가지다. KBO 관계자는 "800만 달러는 상당히 애매한 액수"라면서 "선수들에게 유리할 수도, 불리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오히려 미국 진출에 도움이 될 수도 있다. 이 관계자는 "사실 800만 달러 상한선이 넘은 선수는 류현진과 박병호 정도였다"면서 "실제로 800만 달러를 넘을 선수가 앞으로도 많지 않을 수 있다"고 말했다. KBO 구단이 먼저 상한선 내에서 이적료를 제시할 수 있는 만큼 구단과 선수가 모두 실리를 챙길 수도 있다는 것이다.
자존심도 중요하지만 결국은 실리를 챙기는 것도 필요한 부분이다. 어쨌든 유리한 쪽은 MLB인 만큼 KBO로서는 피해를 최소화하는 게 우선이다. 물론 선수협에서는 이적료 문제가 발생하지 않게 FA 취득 연한을 줄이는 방안을 주장하지만 구단 입장에서는 받아들이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일단 KBO는 구단은 물론 여론을 수렴한 뒤 MLB와 협상에 나설 예정이다. 자존심이냐, 실리냐. KBO의 장고가 깊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