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서 3차례 대국에서 내리 패배해 궁지에 몰렸다가 4국에서 깜짝 승리를 거둔 비결도 집념을 앞세운 '무한 복기'가 있었던 것으로 풀이된다.
'복기'란 대국이 마친 뒤 승자와 패자가 나란히 앉아 앞서 자신들이 둔 착수와 행마 등을 분석하는 것으로, 경기 규칙에는 빠져있으나 거의 모든 경기 후에 이뤄진다.
바둑계에서는 이를 '미덕'으로 표현한다.
이 9단과 유년시절부터 함께 바둑을 공부해온 한종진(37) 9단은 이날 서울 성동구 한국기원에서 취재진을 만나 지난 12일 오후 3국을 마친 이 9단의 숙소를 찾아 복기를 도왔다고 밝혔다.
한 9단은 "원래는 혼자 괴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을 것 같아 위로를 해주려고 간 것"이라면서 "하지만 이 9단은 거듭 패인 분석에만 열중했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이어 "3국 복기를 마친 뒤엔 다시 1국과 2국을 복기를 되풀이했다"며 "저녁 식사까지 이 9단의 아내가 시켜준 룸서비스로 해결했다"고 말했다.
결국 이 9단은 다음 날 열린 4국에서 알파고에 통한의 1승을 거두며 설욕에 성공했다.
이 9단의 끈기와 집념은 유년시절부터 익히 알려져 왔다.
이 9단은 지난 2001년 LG배 세계기왕전 결승에서 당시 완벽한 수읽기로 '바둑의 신'으로 불리던 이창호 9단에게 2연승하고도 3연패해 쓴맛을 맛봤다.
대부분의 기사라면 혼란과 좌절을 느끼고 슬럼프에 빠질 수 있었던 상황이었으나 스무살의 이세돌 3단은 달랐다.
2년 뒤 같은 대회 결승에서 또다시 만난 이창호 9단에게 도전해 진검승부 끝에 3승 1패를 거두고 바둑계 세대교체를 전 세계에 공표한 것.
비록 패했지만 알파고와의 최종국에서도 이 9단의 끈기와 집념은 빛을 발했다.
경기가 시작된 지 4시간 30분이 넘어가고, 전문가들이 대부분 이 9단의 패배를 확신하고 있을 때도 그는 흑돌을 계속 집었다.
현장 중계를 맡은 김성룡 9단은 "프로들은 이미 이 9단이 졌다는 걸 안다"며 "그럼에도 계속한다는 것은 계산기와 끝까지 해보겠다는 걸 뜻한다"고 밝혔다.
한종진 9단은 "이 9단은 승부에 대해서는 어린 시절부터 늘 한결같이 강했다"며 "다른 사람들은 '참는다'고 표현하겠지만 그는 매 순간 '도전'해온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