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밖에도 스포츠에서는 열정 대디들이 적잖다. 세계적 축구 스타인 박지성의 아버지 박성종 씨와 국민 타자 이승엽의 아버지 이춘광 씨 등이다. 열정적으로 때로는 묵묵히 자식의 뒷바라지를 해온 부정(父情)이 있었기에 스타도 탄생했다.
이제 당구에서도 이런 말이 어색하지 않을 것 같다. '당구 대디'라는 신조어가 탄생할 조짐이다. 바로 '당구 천재 형제' 김행직(24 · 전남연맹)과 김태관(19 · 경기연맹)의 아버지 김연구 씨(46)다. 예전 '얼짱 당구 스타' 차유람-차보람 자매의 부친 차성익 씨의 바통을 이어받았다고 할까.
김행직과 김태관은 한국 당구 3쿠션의 미래를 책임질 기대주들이다. 중학교 때부터 당구 신동으로 유명했던 김행직은 사상 최초로 세계주니어선수권대회 3연패는 물론 4회 우승의 위업을 쌓았고, 지난해 역대 최연소 아시아선수권 우승과 국내 랭킹 1위 등극도 이뤄냈다.
동생도 만만치 않다. 김태관은 지난해 세계주니어선수권 정상에 올라 역대 최초의 형제 우승을 달성했고, 대한체육회장배 전국대회에서도 학생부를 제패, 일반부 정상에 오른 형과 역시 국내 대회 최초의 형제 동반 우승을 일궈냈다.
결국 김행직은 운명처럼 3쿠션에 빠졌고,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본격적으로 선수의 길을 선택했다. 김행직은 "솔직히 운동을 하면 다른 애들처럼 축구나 야구, 육상을 하고 싶었다"면서 "반 강제적일 수도 있고, 싫었는데 (아버지가) 하라고 했을 수도 있었다"고 지금은 웃으며 당시를 회상하기도 했다. 이어 "아버지의 꿈이 당구 선수였다고 하는데 내가 대신 이뤄 드리는 것일 수 있다"고 덧붙였다.
김 씨는 "당구장을 운영하면서 보는 눈이 있었다"면서 "행직이를 보니 끈기와 집중력이 남달라서 키우면 되겠다 싶었다"고 말했다. 타 지역의 당구 고수를 찾아가 배우게 한 것도 김 씨였다. 김행직이 6살 무렵 김 씨는 당구장 대신 고깃집으로 업종을 변경했지만 당구 열정만큼은 변하지 않았다.
고향인 전북 익산에서 아무 연고가 없던 수원 매탄고로 김행직을 보낸 것도 같은 이유다. 당시 매탄고는 성인 대회에서도 두각을 나타내던 김행직 1명 때문에 당구부를 만들었다. (이후 동생 김태관도 형을 따라 매탄고로 진학, 졸업했다.)
형에 이어 동생도 본격적으로 큐를 잡게 되면서 김 씨는 다시 당구장을 운영하기로 했다. 본인이 워낙 당구를 좋아하기도 했지만 형제가 마음껏 훈련할 수 있는 장소를 마련해주려는 마음이 더 컸다. 둘은 손님들이 뜸한 오전 훈련을 하고, 저녁 시간에는 당구장 영업을 돕는다. 때로 동호인들과 경기를 하기도 한단다.
이미 당구계 스타로 우뚝 선 형의 이름을 따 '김행직 당구클럽'이다. 김 씨는 "행직이가 성적을 내면서 찾는 손님들이 늘어 매출에도 상당히 영향을 미친다"고 흐뭇하게 귀띔한다. 당구장 곳곳에는 형제들의 입상 장면이 들어간 현수막이 걸려 있다.
그런데 웬걸. 어린 줄로만 알았던 김태관의 상승세가 무섭다. 본격 입문 4년 만에 괄목할 만한 성과를 냈다. 김 씨는 "이렇게 잘할 줄은 미처 몰랐다"면서 "구력이 짧은데도 성적을 낸다"고 대견한 표정이다.
둘이 맞대결을 한다면 과연 아버지의 마음은 누구에게 기울까. 우산장수와 소금장수 아들들을 둔 심경이 아닐까.
일단 김 씨는 아직까지는 형의 편인 것 같다. 김 씨는 "행직이는 이제 대기업 후원(LG U+)도 받고 성적을 내야 하는 선수"라면서 "반면 태관이는 아직 배우는 단계라 패배의 맛을 더 봐야 한다"고 전문가 못지 않은 분석을 내렸다.
그렇다면 김 씨의 당구 실력은 얼마나 될까. 김행직은 "당구를 정말 좋아하시는데 동호인 수지로 250 정도 된다"면서 "어릴 때는 아버지가 많이 가르쳐주셨는데 언제부터인가 배울 게 없더라"고 웃었다.(수준급 동호인들이 붙어볼 정도는 된다는 뜻이다.)
이제는 형제의 상대가 되진 못하는 게 사실. 앞서 언급한 박준철 씨나 박성종 씨, 이춘광 씨도 자식보다 해당 종목을 잘 하지는 못하는 게 당연하다.
그러나 그 열정만큼은 자식들을 능가하고도 남을 터. 그래서 아버지다. 대한민국 스포츠를 이끄는 열정 대디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