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 마포구 상암동에서 북한씩 떡을 만들어 파는 새터민 김필옥(44·여)씨.
달콤한 떡 수증기가 가득 찬 떡방을 종종거리며 뛰어다니는 김씨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찜통을 열자 하얗고 노란 색색의 절편이 먹음직스러운 자태를 드러냈다.
쉴새 없이 밀려드는 전화 주문에 설 당일인 8일에도 가게에 나와 떡을 만든다.
"주문이 밀려서 설날에도 출근해야 해요. 제가 만든 떡을 먹으면서 사람들이 고향의 맛이라면서 감사하다고 인사할 때 제일 보람을 느끼죠. 그게 음식을 만드는 사람의 보람 같아요. 돈도 중요하지만… 그런 게 제일 좋은 거죠."
설을 앞둔 지난 4일 서울시 송파구의 또다른 떡 공장을 찾았을 때도, 하얀 작업복을 입은 새터민 직원들은 분주히 떡을 날랐다.
차가운 바깥 날씨와 달리 공장 안은 뜨거운 김이 가득했고, 분쇄기에서 나오는 뽀얀 쌀가루가 찜통으로 들어가자 김이 모락모락 나는 기다란 가래떡으로 바뀌어 나왔다.
직원들은 바삐 움직이다가도 기계를 빠져나오는 떡을 바라보며 간간히 한숨을 쉬었다.
북에 남편과 자녀 둘을 두고 온 주모(65·여)씨는 "명절 때마다 외로움에 가슴을 쓸어내린다"며 "TV 속 귀향 행렬은 남의 일일 뿐"이라고 말했다.
"다른 사람들은 가족이 있어서 놀러 다니고 인사하고 그러잖아요. 그런데 우리는 갈 데가 있어요? 집에서 TV나 보고 뉴스 보면서 항상 고향생각 하는 거죠."
경기도 연천의 떡 공장에서 일하는 새터민 강모(49·여)씨에게도 '명절'이란 두 글자는 가슴 아픈 단어다.
생일 때나 먹을 수 있던 귀한 떡을 북에 있는 가족에게 전해주고 싶은 마음이 앞서 눈물부터 흐른다.
"올해 우리 엄마가 86세인데, 설날은 탈북자들 가슴 아픈 날이에요. 내가 실컷 떡을 먹고 있는데… 강냉이떡 맛있게 드시던 엄마 생각이 나요."
강씨는 "추석과 설날에 정말 외롭다"며 "이번에는 동생과 함께 북한식 만두를 만들어 먹을 계획"이라고 말했다.
설을 하루 앞두고 터진 북한 미사일 사태에 대한 걱정도 나타냈다.
김필옥씨는 "북한에서 한 번씩 사고가 터질 때마다 새터민들에 대한 인식이 안 좋아지는 걸 느낀다"면서 "새터민들의 가장 큰 바람이 통일인데 계속 저러면 어떻게 통일이 되겠냐"며 막막해했다.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 차별 속에 한국 생활이 서러울 때도 있지만, 자신이 만든 떡이 다른 사람의 명절을 풍족하게 만든다는 보람으로 외로움을 조금씩 채워 간다.
강씨는 "앞으로 통일이 된다면 북한에 떡과 빵을 만드는 회사를 차리고 싶다"며 "나보다 못한 분들에게 꼭 도움이 되고 싶다"는 바람을 내보였다.
"떡 주문이 밀려들어오면 우리 몸은 바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구나 그런 자부심이 들어요. 내가 만든 걸 사람들이 맛있어 하는구나 생각하며 자부심을 느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