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방심(放心)은 패배와 후회를 낳는다

올림픽 축구 아시아 최종예선 결승에서 일본 선수들이 극적으로 우승한 뒤 기뻐하는 가운데 한국 선수가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하늘을 바라보는 모습.(도하=대한축구협회)
사실 다 이긴 게임이었다. 그저 축구경기를 보고 즐기는 수준이지만 내 눈에 비친 우리 선수들의 패스는 너무나 빠르고 정확했다. 경기를 TV로 지켜보면서 솔직히 질 것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오프사이드 판정을 받긴 했지만 두 번씩이나 일본의 골그물을 흔들었고, 스코어도 이미 2-0으로 앞서던 상황이었으니까. 적어도 후반전에 일본의 아사노 다쿠마 선수가 교체 투입되기 전까지는 그랬다. 그런데 결과는 2-3 역전패였다. 불과 14분동안에 몰아친 일본팀의 골폭풍에 내리 세 골을 허용했다. 모든 게 방심(放心)한 때문이다.

어제 카타르 도하에서 열린 2016 아시아축구연맹(AFC) 23세 이하(U-23) 챔피언십 일본과의 결승전을 두고 하는 말이다. 경기가 끝난 뒤 신태용 감독은 이렇게 말했다. "90분동안 단 1%라도 방심하면 이런 결과가 나온다는 것을 선수들이 느꼈을 것입니다". 정말로 적보다 무서운 것이 방심이라는 사실을 모두가 새삼 실감한 한·일전이었다. 한순간의 방심은 너무도 큰 허탈감을 남겼다. 언젠가 기록은 깨지기 마련이지만 24년을 이어온 올림픽 축구 예선 무패행진이 일본에 역전패를 당하면서 종지부를 찍게 돼 무척 아쉬웠다.


전후반을 열심히 뛴 우리 어린 선수들을 탓하고 싶지는 않다. 신태용 감독을 비롯한 코칭스태프와 응원을 소홀히 한 우리들도 방심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고 말한다면 너무 지나친 것일까? 보기 좋게 숙적 일본팀의 콧대를 꺾어놓길 바라면서 '한 골 더, 한 골 더'만을 외친 탓은 아닌지. 너무 일찍 승리감에 도취된 안이함 때문이다. 아들과 함께 TV를 지켜보며 열심히 응원했던 나 자신조차 어느새 비스듬히 옆으로 누운 채로 경기를 즐기는 '방심 상태'였다.

그런데 신태용 감독의 일문일답에서도 그의 '방심'을 느낄 수 있었다. 그는 "오늘 경기에서 1~2골을 더 넣었으면 일본을 더 압박했을 것이다"라며 자신의 공격축구가 계속될 것임을 강조했다. 어쩌면 신 감독도 일본을 큰 점수 차이로 이기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1~2골을 더 넣으려는 시도는 오히려 후반 체력 저하로 인해 공격과 수비라인이 멀어지면서 일본팀에게 연거푸 역습을 당하는 원인이 된 것은 아닌지… 다 지나간 얘기지만 수비를 보강해 점수를 지키면서 이기는 경기를 했으면 어땠을까 싶다.

견강부회일지 모르겠지만 우리 선수들이 일본팀을 이겨주길 바라는 마음은 한 달여 전 한·일 정부간에 타결된 일본군 위안부 문제의 파열음과도 무관치 않다. 일본에서 들려오는 많은 말들로부터 여전히 진심어린 사죄와 반성을 확인할 수 없기 때문이다.

방심의 사전적 뜻풀이는 '마음을 다잡지 않고 풀어 놓아 버림'이다. '방심은 금물'이라는 격언은 우리 삶과 직접 연관돼 있다. 최근 잇달아 보안시스템의 허점이 노출된 인천공항의 경우도 원인을 따지고 들어가면 결국 관련 당국의 방심이 빚은 것이다.

정치권도 예외는 아니다. 방심은 상승세를 순간에 하락세로 반전시킨다.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의 '조선족' 발언, 더불어민주당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의 '국보위' 발언, 국민의당 한상진 공동창당준비위원장의 '이승만 국부' 발언까지…

방심은 여유와 자만에서 시작돼 패배와 후회로 끝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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