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비 신부 김하늘이 새로운 영화를 들고 관객 앞에 나타났다. 무려 2년 만의 복귀다. 그는 영화 '나를 잊지 말아요'에서 기억에 대한 비밀을 감춘 여자 진영 역을 맡아 애절한 멜로 연기를 펼친다.
멜로 가뭄에 빠진 국내 영화계에 '나를 잊지 말아요'가 단비가 되어줄 지는 아직 미지수이지만 시작은 나쁘지 않다. 영화는 7일 영화진흥위원회 통합전산망 기준 예매율 4위를 기록했다. 김하늘과 정우성의 멜로 시너지가 만들어 낸 효과다.
달콤함 속에 우울함을 감춘 김하늘의 연기는 문득 초창기 작품인 '피아노'를 떠올리게 했다. '상처'로 인해 완전하지 못한 사랑은 어쩌면 이룰 수 없는 사랑을 그린 그 때의 감성과도 비슷한지 모른다.
'결혼'을 한다고 해서 김하늘의 행보가 멈출 것 같지는 않다. 그 동안 대중들과 만나지 못했던 시간을 보상하듯 김하늘은 올해 두 편의 영화 개봉을 앞두고 있다. 때문에 '마지막' 멜로에 의미를 두고 슬퍼할 이유는 없을 듯하다.
그리웠던 그 시절보다 더 깊어진 눈빛을 가진 배우 김하늘과의 일문일답.
▶ 영화에 대한 반응은 만족스럽나?
어떻게 기대했는지 모르지만 기대보다 더 잘나왔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웃음) 저희가 많이 긴장하고 떨렸는데 특히 (정)우성 선배는 본인이 제작해서 더 그랬다. 그런데 어제 그런 이야기를 많이 들어서 선배도 분위기가 환해진 것 같다.
▶ 정우성은 이게 여주인공 진영의 영화라고 하더라. 여기에 동의하는지 궁금하다.
- 현장에서도 그런 이야기를 많이 했다. 진영 캐릭터에 대해 매력을 많이 느낀 거 같고, 애착이 있었다. 오히려 자신이 맡은 석원 캐릭터를 보강하거나 욕심을 낼 법한데도 그렇지 않았다. 촬영할 때는 사실 캐릭터 안에서 연기를 하는 중이니까 부담스럽고, 더 잘해야 된다는 이야긴가 싶었는데 영화를 다 보고 나니까 무슨 이야기인지 알 것 같다.
▶ 사실 한국 영화들의 화법과는 조금 다른 느낌이 들기도 한다. 어떻게 보면 일본 영화의 감수성과 비슷하기도 하고, 마치 삽화 같은 이미지로 남는 영화다.
- 시나리오부터 그런 분위기를 느꼈다. 미스터리 장치들이 섞여 있어 기존 멜로 영화들과 다른 구성이고, 다가오는 느낌이 새로웠다. 굉장히 장점이 있는 대본이었고 그래서 더 끌렸던 것 같다. 내가 연기를 해서 캐릭터를 완성해 관객들 앞에 내놓았을 때 어떤 생각을 할지 궁금했었다. 이 영화는 딱 포스터 느낌이다. 색이 정확히 입혀져 있지 않은 흑백의, 다른 분위기를 갖고 있다.
- (정)우성 선배 눈빛이 스크린에서는 빠져들 수 있는데 처음 마주치면 레이저 같아서 시선을 피하고 싶은 눈빛이다. 그런 눈빛에 사랑을 담아서 쳐다보니까 처음에는 당황했는데 나중에 익숙해지니까 좋더라. (웃음) 여성 감독이기도 하고, 우성 선배도 너무 편해서 화기애애할 수밖에 없는 현장이었다. 메이킹 필름을 보니까 완전 감정신을 앞두고 있는데 촬영하기 전에 (감정을 안 잡고) 선배 옆에서 웃고 있더라. '왜 저러고 있지?'라고 생각했다. 요즘 선배가 개그 욕심이 굉장하다. 현장에서도 개그하면 같이 재밌게 받아주다가 나중에 지치면 가서 쉰다고 하고 그랬다. (웃음)
▶ 아무래도 두 사람이 서로 의견을 조율하거나 충돌하는 과정도 있었겠다.
- 충돌은 없고 반영이 많이 됐다. 내가 약간 오글거리는 것을 싫어한다. 그래서 대사나 행동을 좀 더 자연스럽게 하자, 현실에 있는 대사를 하자고 많은 의견을 이야기했다. (정)우성 선배도 의견을 많이 내놓는 편이다. 예를 들어 내가 어떤 부분이 조금 오글거리는 것 같다고 했을 때 우성 선배는 너무 좋다고 한다. 그러면 서로 이야기하면서 합의점을 찾아나가는 식이다.
▶ 구체적으로 어떤 장면이 그랬는지 이야기해 줄 수 있나?
- 욕조신에 선배 아이디어가 많이 반영됐다. 그 씬이 나는 오글거리는 느낌이 있었는데 완성되고 나니까 너무 좋더라. 그런 차림으로 그런 곳에서 하는 연기가 쉽지는 않았다. 뭔가 작품에 대해서는 굉장히 객관적으로 변한다. 내게는 욕조신이 아슬아슬한 지점인 것 같다.
▶ 정우성이 제작자로 참여해서 그런 의견 어필이 더 쉬웠던 점도 있나?
- 원래 내가 의견을 많이 얘기하는 편이기는 하다. 사실 배우 대 배우라면 서로 프라이드를 건드려야 하지 말아야 하기 때문에 각자의 캐릭터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조심스럽다. 그런데 오히려 그럴 때는 내가 선배를 제작자로 보고 이야기를 할 수 있어서 편했다. 연기할 때는 배우로 대하고.
▶ 그렇다면 현장에서 배우 대 배우가 아닌 배우 대 제작자로 함께 일할 때도 있었는지?
- 선배는 본인 촬영이 끝난 후에도 끝까지 현장에 남아 모니터링을 했다. 선배가 현장에 제일 먼저 나와서 가장 늦게 나가니까 빠져나갈 구멍이 없었다. (웃음) 원래 감독이 내 연기를 보는 것과 배우가 내 연기를 보는 것은 느낌이 굉장히 다르다. 그게 너무 부담스러웠는데 선배 딴에는 집중해서 보는 거였다. 나중에 막상 얘기해보면 내 연기가 아니라 다른 부분을 보고 있더라. 내가 혼자 괜히 제발 저려서 그런 거지.
- 진영이를 공감하고 이해했다. 그렇지만 가끔은 아무 생각 없는 (정)우성 선배의 표정이 부럽기도 하고 얄밉기도 했다. 연기할 때 많은 생각을 해야 했었고, 그 생각이라는 것이 사실 저 혼자만 하면 되는 부분이 아니다. 감독님과 끊임없이 상의하고 고민했다. 만약 그 상황이 현실이라면 나는 기억이 사라지기 보다는 아픈 기억이라도 남아 있는 쪽이 편할 것 같다.
▶ 눈물을 흘리는 장면도 유독 많았다. 감정적으로 몰입해야 되는 상황이 많았겠다.
- 눈물이 나오면 그걸 느껴야 된다. 눈물을 흘리지 못하는 신들도 있었다. 그런 신들은 그만큼 와닿지 않았던 거고, 그럴 때는 그냥 감독에게 이야기한다. 이 정도까지가 제 감정인 것 같다고. 마지막 엔딩 장면에서는 하염없이 나왔다.
▶ 실제로 다른 장르 연기보다 멜로 연기가 힘든 부분이 있나?
- 멜로 연기는 배우 본인이 감정적으로 힘들다. 현실에서 길게 감정 표현을 해야 될 것을 짧은 시간에 한 번에 해야 되니까 아무래도 감정적 소모가 있다. 로맨틱 코미디가 위로 간다면 멜로는 아래로 내려가는 느낌이다. 그런데 나름대로 카타르시스가 있어서 굉장히 매력적이다. 로맨틱 코미디는 그냥 계속 즐거워서 수위 조절을 잘해야 된다. 나 혼자 웃기는 게 아니라 다 같이 공감하고 유쾌해야 하니까. 관객이 빠져들 수 있으면서 나 역시 빠져서 연기를 해야 해서 그런 부분이 어렵다.
▶ '나를 잊지 말아요'는 사랑에 대한 전반적인 흐름과 그 기억을 그리고 있다. 결혼을 앞두고 있는 상황에서 이번 영화를 하며 느낀 점이 있나?
- 영화를 보면서 생각을 하게 됐다. 결혼이든 연애든 놓치지 말고 지켜야 하는 중요한 부분이 있는 것 같다. 연애하면서 서로 친해질 때는 그 사람만 바라보고 집중하는데 그게 익숙해지면 그 부분을 순간 놓친다. 많이 바라봐주고 지켜봐주는 게 필요하다고 느꼈다.
▶ 결혼 준비 때문에 한창 바쁜 시기인데 일이 겹쳐서 힘들지는 않나?
- 지금은 아침부터 밤까지 일정이 꽉 차있다. 결혼 준비는 차후의 문제이고, 일단 영화에 집중하고 있다. 후반 작업 중인 영화 두 편도 올 상반기에 개봉할 것 같아서 바쁜 한 해가 되지 않을까. 아직까지 (결혼 때문에) 달라진 점은 모르겠다. 결혼한 다음에 하는 작품에서 물어보면 대답하겠다. (웃음)
▶ 어쨌든 '사랑'에 대한 이야기가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영화인데 실제 본인이 생각하는 '사랑'은 어떤 것인가?
- 사랑은 희생이라는 말이 있는데 나는 희생이 사랑 안에 포함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믿음이나 존경도 마찬가지다. 단정적으로 이야기하고 싶지 않다. 진영이가 한 행동들도 모두 사랑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정말 본인이 아니라고 생각했으면 돌아섰겠지. 온전히 '행복하다'고 이야기할 수는 없지만 절실한 사랑이 아닐까.
▶ 마지막으로 '나를 잊지 말아요'를 한 마디로 정의한다면 뭘까?
- 친구가 시사회로 영화를 보고 난 후, 웃긴 문자를 보냇다. 감성 멜로가 아니고 충격 멜로라더라. (웃음) 기존과 비슷한 사랑 이야기를 기대하고 왔는데 영화를 보면서 많은 생각을 하고 반전에 대해서도 슬프게 공감했다고 했다. 그냥 관객들도 편하게 생각하고 와서 보면 큰 감동과 반전을 느끼면서 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