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대통령은 한일 정상회담을 사흘 앞둔 지난 10월 30일 일본 마이니치신문 등과의 인터뷰에서 “위안부 문제가 올해 안에 해결돼 피해자들의 상처가 치유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박 대통령이 ‘연내 타결’ 시한을 제시한 것은 이게 처음이었다.
지난달 2일 아베 총리와의 정상회담에서도 ‘위안부 문제의 조기 타결’을 위한 협상을 가속한다는 데 합의하면서 연내 타결 기조를 유지했다. 실제로 12월 28일 양국은 올해가 가기 전 위안부 문제에 대해 합의를 도출해냈다.
하지만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이 격하게 반발하면서, 박 대통령은 “피해자들이 수용할 수 있고, 우리 국민이 납득할 수 있는 해결 방안을 제시하는 것이 중요하다”던 본인의 지론에 반하는 합의를 내놓고 말았다.
양국 합의가 졸속으로 의심받는 데에는 취임 초 강경 일변도였던 박 대통령 대일 기조와 최근 상황이 사뭇 달랐기 때문이다. 당선자 신분이던 2013년 초 일본 정부 특사의 예방을 받은 자리에서 박 대통령은 “역사를 직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취임 첫해에도 “가해자와 피해자라는 역사적 입장은 천년이 흘러도 변할 수 없다”(3·1절 기념사)거나 “과거를 직시하려는 용기와 상대방의 아픔을 배려하는 자세가 없으면 미래로 가는 신뢰를 쌓기 어렵다”(광복절 기념사)고 아베 정부에 경고했다.
코리아연구원 김창수 원장은 29일 CBS와의 통화에서 “6월 22일 국교정상화 50주년 기념행사에서도 박 대통령은 ‘과거사의 무거운 짐을 내려놓을 수 있도록 만들자’는 취지로 발언했다. 2년만에 입장이 확 바뀐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후 지난달 한중일 정상회담을 전후해 박 대통령이 ‘연내 타결’을 언급했는데, 결과적으로 그게 발목을 잡았다”며 “일본은 계속 기다리고 있다가 연말 막판에 전격 타결을 노렸다. 우리 정부는 유리하지 못한 위치에서 내쫓기듯 협상에 임해 졸속 타결한 셈”이라고 말했다.
이번 합의에는 미국의 압력도 작용했다는 관측이 우세하다. 한일간 과거사 갈등은 동북아 지역 안보전략에 장애 요인이었기 때문에 미국 입장에서는 해소가 절실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지난 2월 웬디 셔먼 당시 미국 국무차관은 “과거사 논쟁이 이해는 가지만 실망스럽다. 정치지도자가 과거의 적을 비난함으로써 값싼 박수를 얻는 것은 어렵지 않다”는 공개 비난으로 한일 양국 정부를 압박했다. 미국 정부는 이번 한일 합의 직후에는 “민감한 과거사 이슈에 합의를 도출한 것을 환영한다”고 밝혔다.
김한권 국립외교원 교수는 “위안부 문제 협상의 연내 타결에는 미국의 영향력도 작지 않은 것 같다”며 “동북아에서 중국을 견제하려는 미국의 입장에서는, 한일 양국의 관계가 빨리 개선되기를 바라는 게 당연하다. 그간 양국 정부에 ‘관계 개선을 희망한다’는 메시지를 강하게 알려온 것도 사실”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