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의원 갑질이 끊이지 않는 이유는 입법기관으로서 막강한 권한을 가지고 있지만 이를 적절히 제어할 자정능력은 전혀 갖추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박 의원의 전 비서관 A 씨는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박 의원의 지역구 사무실에서 13개월동안 근무하며 매달 월급에서 120만원 씩을 떼어 박 의원 측에 입금했다고 밝혔다.
A 씨는 또 자신이 상납한 돈을 박 의원의 아파트 관리비와 가스비 등으로 사용했다고 주장했다. A 씨는 결국 지난 1월 사표를 제출했다.
이에 대해 박 의원은 월급 일부를 받은 것은 사실이지만 지역구 사무실 운영이 어려워 A 씨가 자발적으로 돈을 낸 것이라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월급을 '자발적으로' 상납했다는 박 의원의 해명에 설득력이 없는데다 이것이 사실이더라도 지역구 사무실 운영비를 비서관의 월급으로 충당한 것은 정치자금법 위반 등 관련법 위반 소지가 크다.
박 의원의 갑질 의혹이 의원실 내부에서 발생한 부당 노동행위라면 최근 발생한 일련의 국회의원 갑질 논란은 국회의원으로서 가진 고유 권한을 이용한 것이다.
최근 새정치민주연합 노영민 의원이 자신의 의원회관 사무실에 카드단말기를 설치해놓고 산하기관에 책을 판매한 사실이 드러났다.
같은당 신기남 의원은 자신의 아들이 로스쿨 졸업시험에서 낙방하자 압력을 행사했다는 의혹이 제기됐고, 윤후덕 의원도 로스쿨 출신 변호사인 딸의 대기업 채용 과정에서 압력을 행사했다는 의혹을 받았다.
새누리당 김태원 의원 역시 로스쿨 출신 변호사인 아들이 정부 산하기관에 채용되는 과정에 개입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국회의원 갑질의 배경에는 입법기관으로서 국회의원이 가지는 막강한 권한이 자리잡고 있다. 그 권한은 정부와 그 산하기관은 물론이고 민간 기업에까지 영향을 미친다.
국회의원들은 입법활동을 통해 정부의 조직 구성 자체와 활동 범위, 권한 등을 정한다. 특히, 매년 이들 조직의 예산을 심의.의결한다는 점에서 한마디로 이들 기관의 목줄을 틀어잡고 있는 셈이다.
한 전직 정부 산하기관 기관장은 "산하기관 입장에서 국회의원은 '갑중에 갑'"이라며 "기관장 역할 중 상당수가 의원회관에 찾아가서 읍조리며 예산을 구걸하는 것"이라고 하소연했다.
사정은 민간 기업도 마찬가지다. '롯데그룹 형제의 난', '대한항공 땅콩 회항', '남양유업 사태' 등 사회적 이슈가 터질때마다 국회는 이들 기업을 손보겠다고 팔을 걷어붙인다.
그런데 근본적인 문제해결에 나서기 보다는 '호통치기'나 '망신주기'에 그치고, 더 나아가 해당 이슈를 개인적인 이득을 취하는데 이용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롯데그룹 형제의 난 당시 국회가 우리 재벌의 후진적 지배구조 개혁에 나서기보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을 국감장에 불러 주제와 관계없는 질문으로 망신을 주거나 지역구 민원을 해결을 요구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또, 한 중진 의원이 모 대기업에 다니던 자신의 동생 퇴사 문제로 국감 때마다 해당 기업 총수일가를 증인으로 채택하고 있다는 의혹은 알만한 사람은 다 아는 일이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입법 규제로 기업을 압박하는 것은 물론 국감장에 총수를 불러내 망신을 주고 민원청탁을 하는 경우가 많다"며 "을 입장에서 어디에 하소연할 방법도 없다"고 말했다.
국회의원들이 정부와 그 산하단체를 견제.감시하고 민간기업의 부당행위를 지적하는 본연의 임무는 게을리한채 엉뚱하게 이들을 대상으로 갑질에만 혈안이 돼 있는 것.
◇ "의원직 제명 등 중징계로 경종 울려야"
문제는 이같은 국회의원의 갑질에 제동을 걸어야 하는 국회의 정화기능이 전혀 작동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국회 윤리위원회는 각종 비위행위를 저지른 국회의원에 대해 의원직 제명 등 각종 징계를 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지고 있지만 사실상 제기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실제로 지난 1979년 군부정권의 탄압을 받아 김영삼 전 대통령이 의원직에서 제명된 사례가 있을 뿐 헌정사상 비위행위로 의원직에서 제명된 의원은 단 한명도 없는 실정이다.
국회 윤리위원회 뿐만 아니라 각 당도 자체적으로 윤리위원회 또는 윤리심판원 등을 두고 소속 의원들의 비위행위에 대해 징계를 하지만 '제식구감싸기'에 그치고 있다.
윤후덕 의원의 딸 취업 청탁 의혹에 대해 새정치민주연합 윤리심판원이 징계시효인 2년이 지난 사건이라는 이유로 면죄부를 준 것이 대표적이 예다.
또, 사건 당시에는 여론에 밀려 출당 등 강한 징계를 내렸다가 몇 년이 지나 여론에 관심에서 멀어지면 슬그머니 입당시키는 일도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다.
이처럼 자정기능이 제대로 발휘되지 못하다 보니 검찰 등 외부 사정기관의 수사결과로 명백한 불법행위가 드러난 경우 외에는 국회의원들의 갑질을 처벌할 수 있는 방법이 없는 상황이다. 그러나 이마저도 '정치적 탄압'이라고 주장하며 수사결과에 반발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용인대 정치학과 최창렬 교수는 "국민정서와 동떨어진 국회의원들의 갑질에 대해 국회가 제명 등 강한 처벌을 내려야 하지만 결국은 제식구감싸기로 흐지부지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갑질 국회의원을 제명해 경종을 울릴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