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지 말라" 눈물바다…다시 긴 이산의 슬픔 속으로

북측 가족들 작별상봉 직후인 오전 11시50분 금강산 떠나

21일 강원도 고성 금강산에서 열린 제20차 남북이산가족상봉 2일차 단체상봉에서 눈물을 흘리고 있다. (사진=박종민 기자)
22일 오전 작별상봉을 끝으로 남측 390여명과 북측 140여명, 96가족은 또다시 기약없는 이산의 슬픔을 안게 됐다.

북측은 오전 11시30분까지 2시간 동안 진행된 작별상봉 직후인 11시50분 북측 가족들을 버스에 나눠 태우고 금강산을 떠났다. “가지 말라”는 오열이 이어졌고, “통일 뒤 다시 보자”는 장담 못할 약속이 쏟아졌다.

버스 출발전, 남측 가족의 버스 접근이 허용되자마자 남측 동생 박용득씨(81)는 차안에 앉아 있는 누나를 향해 달렸다. 차창을 열려다 북측 당국자의 제지를 받고는 창을 두드리며 누나 박룡순씨(82)씨를 찾아 유리창을 사이에 두고 서로의 손을 부볐다.

북측 안내원들이 멀어지면서 남북의 가족들은 너나 없이 차창을 열고 서로의 손을 부여잡은 채 온기를 나눴다. “부모님 잘 모실테니 걱정 마시라”는 북측 가족들의 인사말도 쉴새 없이 나왔다.

북측 오빠 원규상씨(82)를 보내는 원화자씨(74·여)는 차창 밖에서 “사랑해. 꼭 다시 만나야 돼”라며 눈물을 흘렸다. 역시 북으로 오빠를 되돌려보낸 박순하씨(78·여)는 버스가 출발한 뒤 주저앉아 통곡했다. 일부 가족은 떠나는 버스를 따라 뛰는 모습도 보였다.


앞서 남북의 이산가족은 이날 마지막 작별상봉을 통해 이별을 준비했다.

상봉장에서 북측 고모 김남동씨(83)를 맞은 남측 조카 김옥래씨는 “오늘 밖에 못봐”라며 한숨을 쉬었다. 김남동씨는 남측 오빠 김남규씨(96) 어깨에 기댄 채 눈물만 흘렸다. 또다른 조카 김경란씨는 “나중에 고모 돌아가셔도 (북쪽) 아들이 다시 (남쪽 가족을) 찾을 수 있도록, 예전에 사시던 (남쪽) 주소를 가르쳐 주세요”라고 당부했다.

남측 여동생을 만난 북측 남철순씨(82·여)는 “(먼저 간) 오빠가 너무 불쌍해. 통일되면 가족이 다 같이 큰 집에 모여살자. 이런 불행이 어디 있니 세상에”라면서 분하다는 듯 테이블을 몇차례 내리쳤다. “우리 세대는 끝났어”라는 동생 순옥씨의 한숨에 “세대가 어디 있느냐”면서 “오래 살아야 해. 다시 봐야지”라고 격려했다.

북측 형을 만난 김주철씨(83)도 북측 조카로부터 “통일돼서 다시 만나요”라는 말을 들었다. 김씨의 부인 조정숙씨(79)는 북측 시아주버니 김주성씨(85)에게 “꼭 100세까지 사세요. 저도 남편 잘 간수해서 100살까지 살테니, 꼭 다시 만나요”라고 말했다.

상봉장에서 남측 여동생 박인숙씨(69)는 “업어드릴께요”라며 북측 오빠 박동훈씨(87)를 업는 시늉을 하다 힘에 부쳐 실패했다. 박인숙씨는 이내 오빠를 부퉁켜 안고는 “세살 때 오빠가 저를 많이 업어주셨대요. 그래서 이번에는 제가 대신 업어드리고 싶었는데…”라면서 울음을 터뜨렸다.

남측 동생 박용환씨(75)도 “내가 어렸을 적에 누님이 항상 업어주셨다”며 북측 누나 박룡순씨를 업고 테이블 주변을 한바퀴 돌았다. 그는 “65년전의 이별이 이렇게 길어질 줄 모르고 울지도 않았어. 그런데 이제 또 이별해야 해”라며 울먹거렸다.

박룡순씨의 또 다른 남동생 박용득씨는 눈시울이 붉어진 채 “누님, 내가 내 차로 데려다 줄테니, 오늘은 같이 서울 가자. 2~3일 같이 자고 가자”고 말했다. 박용득씨는 “통일되면 만날 수 있다”는 북측 조카의 말에 “그게 문제가 아니다. 내 가족을 우리 집에 데려간다는데 왜 안되느냐”고 울분을 터뜨렸다.

북측 아버지 리흥종씨(88)를 만난 남측 딸 이정숙씨(68)는 “이렇게 선물을 많이 가져와도 살림이 괜찮겠느냐”는 아버지의 걱정에 “아버지를 위해서라면 제 목숨도 드릴 수 있어요”라며 눈물을 훔쳤다. 북측 아들 리인경씨는 눈시울이 빨개진 채로 천장 쪽만 바라봤다.

남측 동생을 만난 북측 리정우씨(82·여)는 연신 동생의 미리와 등, 어깨를 쓰다듬고 볼에 입을 맞추면서 몇시간 뒤 닥칠 이별을 애달파했다. 남동생 이천우씨(78)는 “72년만에 누나를 다시 만났다. 누나가 함흥에 갈 때 내가 6살이었다”며 손수건을 눈물로 적셨다.

작별상봉이 끝날 무렵 상봉장을 떠나던 한 북측 가족은 출입구 앞에서 “만호 어디갔니?”하고 소리쳐 남측 가족을 불렀다. 멀찍이서 황망히 바라보던 남측 가족은 바로 달려가 한참을 서로 부둥켜 안고 통곡했다.

작별상봉장에는 이전보다 많은 북측 당국자들이 투입돼, 가족들의 대화를 훨씬 예민하게 관찰하는 모습이었다. 일부는 취재진의 메모를 훔쳐보기도 했다. 하지만 가족들의 모습을 보면서 계속 눈물을 흘리는 일부 관계자도 목격됐다.

남측 가족들은 북쪽 혈육에 대한 사무치는 그리움을 안고 이날 오후 1시30분 귀향길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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