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쓸로몬] 청년희망펀드에 '방위성금'이 어른거린다

쓸로몬은 쓸모있는 것만을 '즐겨찾기' 하는 사람들을 칭하는 '신조어' 입니다. 풍부한 맥락과 깊이있는 뉴스를 공유할게요. '쓸모 없는 뉴스'는 가라! [편집자 주]

최근 KEB하나은행의 청년희망펀드 가입 독려 메일이 논란이 됐죠.

하나금융그룹이 지난 21일 저녁, 그룹 계열사를 포함한 전 직원들에게 다음날 오전까지 '청년희망펀드 공익신탁'에 가입하라는 이메일을 보낸 게 문제가 된 겁니다. 1만 원 이상 인터넷 뱅킹을 통해 가입하도록 사실상 강제했다는 건데요.


◇ 왜 하나금융은 직원들에게 이런 메일을 보냈을까요?
"대통령의 의중이 강하게 반영돼 있다. 각계각층 고위급들이 기부에 동참하고 있다. 펀드 가입을 받는 금융사 회장과 임원이 기부를 시작했다. 올해 하나금융은 통합이라는 큰 이슈를 잘 마무리했다. 정부가 규제했다면 충분히 무산될 수도 있는 일이었지만 금융당국의 배려도 한몫했다. 그러니 이럴 때 뭐라도 더 해야 한다"

'이런 의중이 있었던 것 아닐까'라는 게 금융권의 해석입니다.

KEB하나은행 한 관계자도 "올해 통합이슈도 통과되다 보니 정부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지 않으냐"고 하소연했습니다.

◇ 박 대통령 제안 후 닷새 만에 전격 시행

청년희망펀드의 탄생은 그야말로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이 빠르게 진행됐습니다.
(사진=청와대 제공)

지난 16일 박근혜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청년고용을 위해 노력하자"며 펀드 조성을 제안했습니다. 그리고 닷새 후인 21일 KB국민, 신한, 우리, KEB하나, 농협 등 5개 시중은행을 통해 '청년희망펀드'가 전격 시행됐습니다.

이날 박 대통령은 자신이 제안한 청년희망펀드에 제1호로 기부했고, 이병기 비서실장을 비롯한 청와대 수석비서관들도 개인적으로 일정 금액을 펀드에 기부할 예정이라고 밝혔습니다.

아울러 박 대통령은 "노사정에서 어려운 결단을 내려주신 것에 대해 뜻을 같이하고자 그동안 많은 분들이 청년희망펀드에 기부를 약속해주셨다"며 "자승 총무원장과 이영훈 한기총 회장님을 비롯한 종교인 여러분과 박현주 회장을 비롯한 기업인 여러분들,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와 원유철 원내대표를 비롯한 국회의원 여러분 등 많은 분들이 그 뜻에 동참할 것을 말씀해주셨는데 진심으로 감사하다"고 기부 의사를 밝힌 대표적 인사들의 이름을 직접 거론하기도 했습니다.

여기에 펀드 가입을 받고 있는 5대 은행 중 3개 금융지주 회장(김정태 하나금융지주 회장과 한동우 신한지주 회장, 윤종규 KB금융지주 회장)이 솔선수범하며 기부를 이어갔습니다. 이들 회장단은 임원진들과 함께 채용확대를 위해 반납하기로 했던 연봉의 50%를 공익신탁에 가입하기로 했습니다.

◇ 구체적인 목표액이나 사업계획은 있나?

그런데 다들 궁금해하는 게 있습니다. "모아서 어디에 쓸 건데?"라는 게 바로 그것입니다.

이에 대해 펀드 가입을 받고 있는 5개사에 물어봤습니다. 하지만 돌아오는 답변은 "모르겠다"였습니다. 어디에 쓸지도 모르는 돈을 일단 위에서 모으라고 하니까 일단 받아놓고 보자는 것일까요.

아무리 취지가 좋다고 하더라도 기금의 사용처, 운용방식 등 구체적 계획이나 효과에 대한 기초적인 검토도 없이 무턱대고 '돈부터 걷고 보자'는 발상은 좀 성급한 것 같습니다.

현재 정부 내에 청년 취업을 지원할 기금이나 재원이 마련된 것이 전혀 없어서 이런 펀드를 급작스럽게 만든 걸까요. 되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명칭 이름에 대해서도 짚어봐야 합니다. 펀드란 투자전문기관이 일반인들로부터 돈을 모아 증권투자를 하고 여기서 올린 수익을 다시 투자자에게 나눠주는 것을 말합니다.

왜 기부가 아니라 펀드라고 이름을 지은 걸까요. 남들이 다 한다니까 '펀드'라는 이름만 듣고 가입했다가는 낭패를 볼 수 있습니다. 설마 이런 걸 바라고 펀드라고 하신 것은 아니리라 믿습니다. 연말 세액공제 15%를 들이밀려 '펀드' 운운하시는 것도 맞지 않다고 봅니다.

◇ 문득 방위성금이 생각나네요

일각에서는 이런 불만의 목소리도 나옵니다. "정부가 세금은 어디에 두고 자꾸 국민에게 기부금 형태의 또 다른 세금을 걷으려고 하는지 모르겠다"고 말이죠.

KEB하나은행의 강제 가입 논란이 하나은행을 제외한 다른 금융권 직원들의 부담을 줄여줬다는 우스갯소리도 들립니다. 강제 모집 논란이 불거지면서 또다른 형태의 금융권 직원 동원이 사실상 봉쇄됐기 때문입니다.

공기업 등 정부 산하기관의 눈치 보기에 대해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습니다. 정부 산하기관장 중 다수가 박근혜 정권에서 임명한 이들이기 때문인데요. 조직 책임자가 앞장서서 직원들에게 가입 주문을 할 수 있다는 것이죠. 게다가 펀드 가입 실적이 은행을 통해 국무조정실에 매일 보고된다는 점도 이들의 실적 경쟁에 불을 붙일 것이란 관측입니다.

자꾸 엮고 싶지 않지만, 박정희 대통령 시절의 '방위성금'이 떠오릅니다. 방위성금은 '국가를 외부의 적으로부터 지키기 위한 일에 쓰도록 국민이 자진하여 내는 돈'을 말합니다.

정말 궁금합니다. 세금은 어디에 두시고, 자꾸 국민에게 내라고 하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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