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표적 서민생활 침해사범인 보이스피싱에 사기죄만 적용되던 관행이 깨지면서 범죄단체 가입만으로도 엄한 처벌이 가능해 보다 선제적 차원에서 범죄를 예방할 수 있는 발판이 될 것으로 보인다.
대구지법 제3형사 단독 염경호 판사는 28일 보이스피싱을 목적으로 기업형 범죄단체를 조직해 중국과 국내에 콜센터를 두고 전화금융사기를 벌여 13억여원을 가로챈 혐의로 기소된 국내 총책 이모(28)씨에 대해 징역 6년, 팀장급 책임자 원모(30)씨와 문모(41)씨에게는 징역 5년과 징역 4년 6월을 각각 선고했다.
또 보이스피싱 전화상담원 등 32명에게는 징역 3년~6년을 선고했다.
이들에게는 사기 외에 범죄단체 가입 및 활동에 관한 법률 위반이 처음으로 적용됐다.
검찰은 보이스피싱 조직이 갈수록 조직화, 국제화되고 있는 대표적인 사례로 판단, 이 조직 자체를 불법으로 보고 '범죄단체 가입 및 활동'에 대한 혐의를 적용해 기소했다. 법원 역시 이 조직을 범죄단체로 인정했다.
재판부는 "규모나 통솔체계를 갖춘 조직운영의 방식 등이 형법 제114조에서 정하고 있는 범죄단체에 해당하는 것으로 판단할 수 있을 정도로 인적·물적 설비를 갖추고 범행을 저질렀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또 "보이스피싱 조직에 가입해 상담원이나 팀장 역할을 맡아 실적에 따라 지급되는 급여나 수당을 받기 위해 보이스피싱 사기범행을 1년 이상 조직적이고 체계적으로 저질렀다"며 "보이스피싱 범행이 계속 증가하고 있고 범행수법 또한 날로 치밀해지고 있다"고 우려를 표시했다.
국내뿐만 아니라 중국에 사무소를 개설하고 지금까지 확인된 조직원만 100여명에 이르며 사장과 관리책임자, 중간관리자, 상담원 식으로 하향식 명령 전달체계를 갖춰 범죄조직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 재판부의 판단이다.
또한, 실적이 나쁠 경우 조직에서 배제하는 등 징벌·위계체계를 갖추고 조직 탈퇴를 철저하게 통제해 범죄조직의 형태를 띄었다고 봤다.
재판부는 "피고인들이 범죄단체 가입의 고의는 없었다고 주장하지만, 업무 개시 전 사전 교육 과정에서 보이스피싱 목적의 범행이라는 것을 충분히 알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판시했다.
법원, 검찰 등 사법당국은 이번 판결이 보이스피싱 범죄 조직을 광범위하게 적발하고, 엄벌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사기죄는 징역형 최고 형량이 10년이지만 범죄단체 혐의를 함께 적용하면 최고 형량이 15년으로 늘어나며 범죄단체에 단순히 가입한 사람도 조항의 적용을 받게 된다.
검찰 관계자는 "보이스피싱 조직이 법적인 범죄조직으로 인정되면서 향후 다른 사건들의 경우에도 조직의 윤곽이 드러났을 경우 엄벌이 가능해졌다"며 "직접 사기 범행에 가담하지 않은 사람도 단체 가입만으로도 형사처벌이 가능해져 경각심을 높일 수 있게 됐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