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 70주년에 되새겨야 할 우사 김규식의 '광이불요'

독립운동사와 친일반민족사 연구가로서 수많은 역사적 인물을 재조명한 김삼웅 전 독립기념관장이 이번엔 김규식의 삶을 이야기하는 <우사 김규식 평전>을 펴냈다.

우사 김규식은 일제강점기 해외 각지에서 큰 활약을 펼친 뛰어난 외교가였고 임시정부의 부주석으로 독립운동에 앞장섰다.

또, 분단은 있을 수 없다며 끝까지 남북협상과 좌우합작을 외쳤던 게 바로 그였다.

몽양 여운형과 함께 좌우합작을 주도했는데, 이것이 성공했다면 우리의 현대사는 완전히 달라졌을 거라고 말하기도 한다.

'만약'이라는 말에 정말 힘이 있었다면, 김규식이 오래토록 민족의 중심축이 되어 주었더라면, 그래서 그가 그렇게도 소리 높였던 남북협상과 좌우합작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졌더라면 우리의 답답한 현실이 조금은 바뀌지 않았을까?

하지만 그는 이 세상에 없고 그가 추구했던 신념과 정신을 우리는 되새기지 못하고 있다.

왜 김규식인가?

임시정부의 주석이었던 김구를 모르는 사람은 없겠지만, 부주석이었던 김규식에 대해서는 역사에 관심이 없다면 알지 못하는 사람도 많을 것 같다.

그만큼 김규식은 그리 큰 비중으로 다루어지지 않거나 주역이 아닌 조역 정도로 인식되고 있다.

그는 생애를 민족의 운명과 일체화시키면서 고난의 삶을 살다가 납북되어 분단과 동족상잔의 낯선 이역에서 숨을 거두었다.

저자는 타협노선보다 극단주의를 선호하는 국민의 시각, 그리고 그의 생애가 ‘극적 사건’이기보다는 꾸준하고 일관되는, ‘투쟁과 협상’의 지도노선이어서 일반에게 덜 알려졌을 것이라고 보고 있다.

또한 연구가 소수 연구자들 수준에서만 맴돌고 있기 때문에 우리가 김규식을 그저 조역으로 인식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한다.

김규식은 겸양과 지성, 높은 학식과 정직한 처신으로 이념을 뛰어넘어 독립운동 진영에서는 항상 존경과 흠모의 대상이었다.

정세 판단력이 뛰어나고 지식이 해박하여 한국에 영향력을 미치는 여러 국제정세를 미리 예견하면서 임시정부 중심으로 좌우합작을 성사시키고 독립운동 세력의 통합을 지도하였다.

문·사·철 분야의 학식과 더불어 정치와 외교력을 겸비한 흔치 않은 지도자여서 정치인보단 정치학자, 외교가의 측면이 매우 강했다.

하지만 문약했던 건 아니라 남북협상에 대해 시비하는 미군정사령관 하지 중장의 책상을 두드리며 분노를 터뜨릴 만큼 호기 있었지만 권력에 집착하진 않았다.

그래서 한때 미군정이 이승만 대신 김규식을 남한 정권의 수반으로 고려하며 접촉하려 했지만 ‘통일정부 수립’이라는 일관된 원칙과 노선으로 반쪽짜리 정권에 연연하지 않았다.

그의 사상과 활동을 요약하면 ‘항일민족독립과 반분단 통일국가 수립’을 이룩하기 위한 ‘좌우합작과 남북협상’이라고 할 수 있다.

이념적 차이가 있더라도 우리 민족이 이것을 초월하고 대동단결하여 해방 전에는 일본제국주의에 효과적으로 대항하고 해방 후에는 조국의 분단을 막자는 것이 좌우합작의 취지였다.

남북협상 역시 해방 후 이념을 달리하는 남, 북 각각의 정치세력이 대화와 협상을 통해서 분단을 막고 하나의 통일정부를 수립하자는 취지였다.

만약 김규식의 뜻대로 됐더라면. 뜻을 함께하던 여운형이 암살되지 않고 김규식이 조금 더 건강해서 좌우합작의 뜻을 이루어냈더라면 우리에게 동족상잔의 비극은 없었을 것이다.


비록 이념적 차이는 있더라도 그것을 초월한 ‘단일정부’가 만들어졌더라면, 우린 지금까지 한 민족으로 한 나라의 국민으로 그렇게 살게 되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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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우사 김규식의 생애를 넉 자로 표현해 냈다.

‘광이불요(光而不耀)’ 빛나되 번쩍이지 않는다. 즉, 빛은 나지만 그것이 지나치면 안 된다는 말이다.

김규식의 삶이 딱 그것이었다.

불우한 시대 불우한 환경에서 태어나 다방면에서 큰 족적을 남긴 그는, 비교 대상을 찾기 어려울 만큼 삶이 빛났다.

하지만 결코 스스로 자신의 우월함이나 업적을 내세우는 법 없이 목표를 향해 조용히 전진할 뿐이었다.

그는 늘 민족사의 정점에 서있었다.

독립운동을 최일선에서 지도하고 민족이 분단되는 것을 막기 위해 좌우합작과 남북협상을 지도하고 3영수의 일원으로 추앙되었으며 국민의 존경과 기대를 한 몸에 받기도 했다.

다만 너무나 꾸준하고 일관되게 ‘민족을 사랑하는 지도자’로서 정도를 걸었을 뿐이다.

조실부모하고 병약한 몸으로, 짧지도 길지도 않은 약 70년의 군더더기 없는 생애는 온통 독립과 통일정부 수립을 위해 바친 고난의 역정이었다.

일각에서 평가하는 것처럼 결코 ‘실패한 이상주의자’가 아니다.

그는 평생 정도를 당당하게 걸었고 해방 후 그가 뿌린 합리적이고 온건한 통일정부 수립 노선은 남과 북 우리 민족 모두의 마음에 새겨야 할 현실적인 과제가 되고 있다.

김삼웅 저/채륜 간/391쪽/19,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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