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하라→지중해→해저터널…쌓여가는 '난민의 무덤'

아프리카·중동 출신 난민들, 유럽행 위해 수차례 목숨 걸어

지구촌이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최악의 난민 위기를 맞고 있다.

아프리카와 중동 각국의 난민들이 살아남기 위해, 혹은 더 나은 삶을 위해 목숨을 건 여정을 멈추지 않으면서 사막과 바다와 터널에는 이름 없는 난민의 무덤이 쌓여가고 있다.

◇ 니제르 아가데즈

아프리카 중서부의 가난한 나라 니제르에 있는 오아시스 도시 아가데즈는 사하라 사막으로 들어가는 관문이다.

16세기 사하라 사막을 횡단하는 대상들의 거점 도시였던 이곳에 요즘 다시 사람들이 모여든다.

세네갈, 감비아, 나이지리아, 카메룬, 기니, 부르키나파소, 나이지리아 등 다양한 나라에서 핍박과 가난을 피해 온 이들의 목적지는 사하라 사막 너머, 유럽으로 가는 관문 리비아다.

미국 일간 월스트리트저널(WSJ)과 워싱턴포스트(WP)는 최근 이곳을 찾아 목숨을 걸고 사하라 사막을 건너는 사람들의 모습을 전했다.

이곳에서 '브로커'들은 난민 1인당 300달러 가량을 받고, 작은 픽업트럭에 30명 이상을 구겨넣은 채 매주 한 차례씩 리비아로 향한다.

가는 데만 3∼4일이 걸리는 사하라 종단길에는 곳곳에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경찰을 만나면 얼마간의 뇌물을 주고 통과할 수 있다고 해도 AK-47 소총으로 무장한 강도를 만나면 목숨이 위태롭다. 차가 고장이라도 나서 사막 한가운데 멈췄다가는 한 사람당 2갤런(7.6리터) 가량 가져온 물로는 이틀도 버티기 힘들게 된다.

국제이주기구(IOM)에 따르면 지난 6월에만 아가데즈와 리비아 사이 사하라 사막에서 48구의 난민 시신이 발견됐다. 1996년부터 지난해까지 최소 1천 명 이상이 사하라에서 사망한 것으로 추산된다.

그러나 이는 추정치일 뿐, 누구도 신고하지 않는 사막에서의 죽음이 얼마나 많을지는 아무도 알지 못한다.

매주 월요일 트럭으로 난민을 실어나르는 무사(38)는 WP에 "가다가 숨지는 사람을 사막에 묻어주기 위해 차에 삽을 싣고 다닌다"며 "당국에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지금도 수많은 난민들이 '꿈의 땅' 유럽으로 가는 첫 고비를 넘지 못하고 사하라 사막에 잠드는 것이다.

◇ 리비아 트리폴리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에서 무사히 사하라 사막을 건넌 사람들은 리비아 트리폴리 항구에 모인다. 오랜 내전으로 신음하고 있는 시리아 난민 일부도 유럽행을 위해 리비아로 온다.

아프리카와 중동 난민이 유럽으로 밀입국하는 루트는 여러 개가 있지만 그 중에서도 리비아를 출발해 지중해를 거쳐 이탈리아나 몰타로 가는 중앙 지중해 루트는 시리아 등 중동 난민이 터키를 거쳐 유럽으로 들어가는 동부 루트와 더불어 가장 많은 난민이 이용하는 루트다.

유럽 국경관리기관 프론텍스에 따르면 올해 들어 6월까지 모두 6만7천 명의 난민이 리비아를 거쳐 유럽으로 불법 입국했다.

2011년 '아랍의 봄' 이후 리비아 정국 혼란 속에 국경통제와 해상경비가 느슨해지면서 이곳에 오는 난민의 수가 급증했고 이들의 밀입국을 알선해 돈을 챙기는 밀입국 조직이 활개를 치면서 밀입국은 더욱 조직화됐다.

난민들은 브로커들에게 1천 달러 안팎의 돈을 주고 대개 불법 개조된 낡고 작은 배에 몸을 실은 채 200㎞ 이상 떨어진 이탈리아 람페두사 섬을 향해 아슬아슬한 항해를 시작한다.

빛도 들지 않는 갑판 아래에서 물도 제대로 못 마시며 버텨야 하는 난민들이 살아남는 방법은 위태롭기 짝이 없는 배가 기신기신 이탈리아에 도달하거나, 아니면 해상에서 유럽 해안경비대에 구조되는 것이다.

리비아 해안경비대에 발목이 잡히면 리비아로 돌아가 수용생활을 하며 다음 기회를 노려야하고, 그렇지 않으면 지중해에서 익사하거나, 길어진 표류에 탈수나 기아로 숨지거나, 난민선의 일상화된 폭력에 희생되기도 한다.

유엔난민기구(UNHCR)에 따르면 올해 들어 현재까지 지중해를 건너다 숨지거나 실종된 난민의 수는 2천 명을 넘어섰다.

그렇지만 잇단 난민선 침몰 사고에도 트리폴리로 모여드는 난민들의 수는 줄지 않는다.

프론텍스는 올여름 지중해를 건너기 위해 리비아에서 대기하는 난민 수가 50만 명을 넘을 것으로 내다봤다.

◇ 프랑스 칼레

일부 난민들은 사막과 바다를 건너 유럽에 도달한 후에도 '더 나은 삶'을 위한 여정을 멈추지 않는다.

도버해협을 사이에 두고 영국과 맞닿은 프랑스 항구도시 칼레에는 '정글'이라고 불리는 난민촌이 있다.

다양한 경로를 통해 유럽 입성에 성공한 후 영국을 최종 정착지로 삼기 위해 도버해협을 건너려는 난민들이 몰려들면서 자연스럽게 형성된 임시 난민촌이다.

최근 지중해를 건너는 난민이 급증하면서 이곳에 모여드는 난민들도 늘어 현재 3천 명 가량이 정글에 머물러 있다고 영국 일간 가디언은 보도했다.

이곳에 온 난민들은 주로 에리트레아, 에티오피아, 수단 등지 출신으로, 프랑스어보다 영어가 편하고, 영국은 주민등록증 등 일반 신분증이 없는 데다 상대적으로 일자리를 구하기 쉽다는 이유 등으로 영국행을 원하고 있다.

영국 정부가 망명 신청자에게 얼마간의 생활 지원금을 주는 것도 영국행을 부추기는 요인이다.

이들은 칼레와 영국 포크스턴을 잇는 해저터널인 유로터널을 통해 영국 잠입을 시도한다.

최근 더욱 삼엄해진 경비를 뚫고 정차한 대형트럭이나 유로스타 열차에 숨어들어 터널을 통과하는 것이다.

지난 6월 프랑스 항만 노동자의 파업으로 유로스타 운영이 중단되면서 열차에 실려 터널을 건너야하는 화물트럭들이 터널 앞 도로를 가득 메우게 됐고, 혼란을 틈타 트럭에 숨어들려는 난민들도 더욱 몰려들었다.

달리는 고속열차에 뛰어들다가, 트럭에 아슬아슬 매달려있다가 추락사고나 감전 등으로 목숨을 잃은 사람도 6∼7월 들어서만 10명에 달했다.

그러나 사하라 사막과 지중해를 건넌 이들에게 고작 50㎞의 유로터널에 도사리고 있는 위험쯤은 감수할 만한 것이다.

아버지가 독재 정권 하에서 살해당한 뒤 유럽행을 결심한 에리트레아 출신 테디는 사하라 사막 종단과 리비아에서 1년간의 수감생활을 거친 후 칼레에 도달했다.

영국으로 가기 위해 칼레에 머물며 기회를 엿보고 있는 그는 영국 일간 가디언 기자에게 "좋은 상황은 아니지만 지금까지 겪은 것에 비하면 아무렇지도 않다"고 말했다.

난민들의 무모한 도전이 이어지면서 칼레 인근 공동묘지에는 종착지로 가는 마지막 관문을 넘지 못한 이들의 무덤도 하나 둘 늘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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