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개봉에 앞서 15일 서울 삼청동에 있는 한 카페에서 만난 박보영은 "시나리오를 보면서 힘들 거라고 예상은 했지만, 실제 연기를 하니 더욱 힘들었다"고 말했다.
"'이 정도 했으면 됐겠다'는 마음으로 모니터를 보면 표현이 덜 돼 있는 거예요. 제 감정 폭의 한계를 봤죠. '생각만큼 표현할 수 있을까'라는 고민에 빠져 연기했어요."
그가 맡은 주란 역은 일제강점기인 1938년 경성의 한 기숙학교로 전학 온 소녀다. 주란은 그곳에서 하나둘 이상 증세를 보이면서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학생들을 본 뒤 의문을 품는다. 하지만 곧 그녀에게도 사라진 소녀들이 보였던 동일한 이상 증세가 나타나기 시작한다.
박보영은 "무엇보다 경성학교의 시대적 배경에 끌렸다"고 했다.
"학교 국사 시간에 일제강점기를 배우면서 느꼈던 분노 같은 게 시나리오를 보면서도 생겼어요. 시나리오를 덮은 뒤에도 주란이가 계속 생각났죠. 극중 소녀들을 생각하면 지금도 안타까워요. 직접 겪지는 못했지만 그 시대가 주는 아픔을 우리가 알기 때문이겠죠. 현실에서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을 돕고 싶은 것도 같은 마음에서죠. 그분들이 그림을 그리신 가방 등을 사서 저도 갖고 주변 사람들에게 나눠 주고 있거든요."
▶ 주란을 연기하기가 힘들지 않았나.
= 촬영 때 감독님이 한 번은 "그동안 보지 못했던 너의 얼굴을 보고 싶다"고 하시더라. 고민이 많았다. 얼굴이 벌게지는 장면을 표현할 때는 목 등에 힘줄이 보이도록 하고 싶어서 숨을 참을 수 있는 데까지 참기도 했다. 숨을 참다가 죽을 것 같을 때 멈췄다. (웃음) 그런데 감독님이 조금만 더 하라고 하시더라. 연기하다가 정말 휘청했다. 결국 감독님으로부터 "이 얼굴은 못 봤던 얼굴"이라는 말을 들었다.
= 제 나이가 스물여섯이긴 하지만 아직 10대 감성이 남아 있다. (웃음) 개인적으로 시나리오를 보면서 영화 분위기를 밝게 봤는데, 완성된 영화는 다소 어둡더라. 제목이 영화의 전체적인 분위기와 맞아떨어지는 것 같다.
▶ 극중 멀리뛰기 장면이 나오는데, 실제 실력은 어떤까.
= 촬영 때는 실력이 잠깐 늘었다. 당시 연습을 정말 많이 했다. 배우들이 처음에 연습 삼아서 뛰어봤는데, 다들 정말 '콩' 하고 착지하더라. 무술감독님이 "이걸 어떻게 해야 하나"라고 했을 정도니까. (웃음) 그 뒤로 다들 연습을 많이 했다. 멀리뛰기 촬영 날에는 나름 기록에 대한 경쟁도 있었다.
▶ 수많은 또래 여배우들과 연기한 느낌은.
= 동생들이 많았는데, 기술적인 부분들을 알려 주려고 애썼다. 다들 열심히 했다. 서로 모니터를 보려고 해 감독님이 다른 곳에 모니터를 설치하시기도 했다. 제가 연기할 때면 마치 관객들처럼 저를 보고 있었다. 그래서 더 잘해야 한다는 부담도 있었다.
▶ 이번 영화로 얻은 게 있다면.
= 사람들을 챙겨가면서 촬영을 진행하면 수월하다는 것을 알게 됐다. 현장 용어에 익숙하지 못했던 후배들에게 용어를 설명해 주는 것만으로도 촬영 분위기가 달라지더라. 나만 보는 게 아니라 촬영장 주변을 볼 수 있는 눈을 키운 셈이다.
= 문근영 언니 뒤로 제가 잠시 '제2의 국민 여동생'이라는 수식어를 얻었지만, 금방 김연아 씨에게 넘어갔다. (웃음) 잠깐이었지만 좋더라. 한때는 이미지가 고정되는 것에 대해 '다른 모습을 보여 드려야 하나'라는 생각도 했지만, 지금은 애써 변하려 하지 않는다.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레 변할 거라고 보기 때문이다. 운이 좋고 복이 많다는 생각을 한다. 감사하게 여기면서 좋은 모습으로 보답해야 한다는 걸 알고 있다.
▶ 배우로서 삶은 어떤가.
= 매우 만족스럽다. 사적인 삶도 균형을 맞춰 잘 살고 있다. 촬영장에서 시끌벅적하게 보내다가 끝나면 나만의 시간을 갖고, 외로워질 때쯤 다시 작품으로 사람들을 만나는 점이 마음에 든다.
▶ 나이 서른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는지.
= 서른 살이 될 때까지는 안해 봤던 걸 모두 해 보는 게 목표다. 사실 서른이 됐을 때 현실적인 안정을 선택할까봐 무섭기도 하다.
배우로서 지닌 욕심과 대중이 원하는 모습 사이에서 잘할 수 있을까라는 걱정도 있다. 지금은 내가 지닌 것에 대한 확신으로 계속 밀고 나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고민들이 나중에 긍정적인 모습으로 나타나기를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