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일 체포된 이 회장은 공군 전자전 훈련장비(EWTS) 도입 사업의 무기중개상으로 활동하며 전체 사업비 9,600만 달러(당시 1,365억원) 가운데 절반에 가까운 4,500만 달러를 빼돌린 것으로 드러났다.
정부 사업을 상대로 무려 5백억원이 넘는 돈을 빼돌린 이 회장의 간 큰 범행이 가능했던 이유는 수백~수천억원에 들어가는 주요 무기 도입 사업을 직거래가 아닌 중개를 통해 진행하기 때문이다.
방위사업청에 따르면 군 당국이 지난 2010년부터 최근 5년간 해외 무기 도입 거래는 모두 4,296건이며 이 가운데 76%인 3,265건이 무기중개상을 통해 거래가 성사됐다.
액수로는 2조 5,800억 원에 이르며 국제관례상 수수료율인 5%를 적용할 경우 1,300여 억 원이 무기중개상의 수수료로 들어간 것으로 추산된다. 방위사업청 직원 500여명의 5년치 연봉과 맞먹는 액수다.
하지만 이같은 막대한 수수료도 어디까지나 추산일 뿐 이 회장의 경우처럼 한번에 500억원을 수수료 명목으로 챙긴 드러나지 않은 거래까지 고려할 경우 그 액수는 훨씬 많을 것으로 보인다.
무기 구매를 전담하는 조직인 방사청이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이처럼 막대한 이익을 챙기는 무기중개상이 존재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가장 큰 이유 가운데 하나는 무기를 수출하는 해외 방산업체의 요구 때문이다. 미국의 록히드마틴이나 보잉 등 대형 업체의 경우 한국에 지사를 설립해 방사청과 직거래를 하고 있다.
그런데 이런 대형업체를 제외한 중.소업체들의 경우 꾸준히 물량이 있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지사 설립 등에 행정비용을 투자하기 보다는 무기중개상을 통한 거래가 더 경제적이다.
방사청 역시 직거래를 진행할 경우 마찬가지로 해외출장비 등 행정비용이 발생하는 것은 물론 인력 부족으로 인한 업무과부하가 발생한다는 점에서 무기중개상을 통한 거래를 선호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이 역시 표면적인 이유일 뿐 그동안 드러난 관련 방산비리 사건에서 알 수 있듯이 직거래에서는 발생하기 힘든 뇌물 상납 등 비리가 무기중개상을 통한 거래에서는 가능하다는 것이 무기중개상이 존재하는 큰 이유가 되고 있다.
이 회장 관련 사건도 합수단의 수사결과를 지켜봐야겠지만 방사청 내부의 조직적인 비호없이 원가의 2배 가까이 비용을 뻥튀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게 군 안팎의 시각이다.
군 관계자는 "아무리 무기중개상이 정보를 왜곡한다고 하더라도 1,300억원짜리 사업을 하면서 어떻게 절반 가까운 금액을 빼돌릴 수 있겠냐"라며 "상식적으로 방사청 내에 조력자가 없다면 불가능한 일"이라고 말했다.
이런 문제로 감사원은 지난 2013년 무기 도입 사업에 있어 직거래의 실효성을 확보할 수 있는 '방위사업법' 등 관계법령 정비를 강구하라고 방사청에 통보했다.
이에 방사청은 같은해 방위사업관리규정을 개정해 200만불(22억원) 이상의 무기 도입 사업의 경우 무역대리점(무기중개상)을 활용하지 못하도록 했다.
하지만 '불가피하다고 인정되는 경우', '국외업체의 요청이 있는 경우' 등 무기중개상 활용 금지에 예외규정을 둬 사실상 있으나마나한 규정이라는 지적이다.
따라서 무기 도입 비용에 비해 행정비용이 과도하게 소요되는 소규모 무기 구매 사업을 제외하고는 직거래를 의무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동시에 무기중개상들이 금품과 향응 제공 등 음성적인 로비로 중개권을 따내는 것이 가능하도록 만드는 '군피아' 역시 이번 기회에 뿌리 뽑아야 한다는 지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