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2부(주심 김창석 대법관)는 박해전씨 등 6명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일부 승소로 판결한 원심을 깨고 소송을 각하했다고 4일 밝혔다.
아람회 사건은 80년대 대표적인 용공 조작 사건으로 박씨, 황보윤식씨, 김창근씨 등이 5.18광주민주화운동의 진상을 알리는 유인물을 배포했다가 연행돼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 등으로 구속기소된 사건이다. 이들은 1983년 징역형을 확정받았다.
피해자의 딸 아람양의 백일잔치에 모인 것을 반국가단체를 조직했다고 해 '아람회'사건으로 명명됐다.
박씨 등 4명과 사망한 이모씨의 유족 2명은 국가를 상대로 정신상 손해배상을 청구해 인당 4~7억원의 위자료를 받은 뒤 재산상 손해배상청구소송을 냈다.
1심은 박씨 등 6명 모두에게 국가가 19억 2,000만원을 배상하라며 원고 일부 승소 판결했다. 2심은 이 가운데 3명의 청구를 기각하고 1심에서 인정됐던 4억 6,000여만원을 모두 취소했으며, 박씨 등 나머지 3명에 대해서만 9억 7,000여만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박씨 등이 옛 광주민주화보상법에 따른 보상금 등 지급결정에 동의해 보상금을 수령했다"며 "이는 재판상 화해와 동일한 효력이 미친 것으로 봐야 한다. 보상금 지급 결정에 동의한 이상 손해배상을 구할 수 없다"며 판결을 아예 뒤집었다.
결국 대법원의 판결로 아람회 사건 피해자 본인과 가족 전원은 2011년부터 4년째 이어진 소송에도 손해배상을 단 한 푼도 받지 못하게 됐다.
대법원은 올 초 박씨 등의 가족들이 국가를 상대로 낸 정신상 손해배상 청구소송 상고심에서도 소멸시효가 지났다는 이유 등으로 원고 패소 취지 판결을 선고한 바 있다.
법조계 안팎에서는 대법원이 현 정부 들어 과거사와 관련한 판결에서 엄격한 기조를 이어가고 있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실제 대법원은 지난 2013년 5월 '진도군 민간인 희생사건' 판결에서 국가배상소송 소멸시효를 3년에서 6개월로 줄이는 등 6개월 내 소를 제기 하지 않는 사건들을 줄줄이 기각하고 있다.
지난달에도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문인 간첩단 사건' 피해자 문학평론가 김우종씨 등 7명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원고 일부 승소 판결한 원심을 파기했다.
당시 대법원은 "민주화보상법에 따라 보상금 지급결정에 동의한 때에는 위자료를 포함해 피해 일체에 대해 재판상 화해한 것과 동일한 효력이 발생한다"는 근거를 댔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박주민 변호사는 "간첩사건의 경우 사회적 낙인이 찍혀버려 피해자들이 경제적으로도 굉장히 곤궁한 상황에 처할 수 밖에 없었다는 것을 고려해줘야 한다"며 "당시 피해자들은 워낙 소액이라 청구권이 포기되는 부분을 인지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국가가 잘못했던 부분을 대법원이 무겁게 받아들이고 판단했어야 하는데 최근 대법원 판결을 보면 과거사 판결에서 국가의 부담을 줄여주는 방향으로만 법 해석을 하는 것 같아 매우 아쉽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