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제역 '재앙'…정부, 지자체 뒤돌아 '먼 산 구경'

이동필 장관 "지자체, 구제역 시스템 문제 노출"

구제역이 발생한 안동 남후마을 입구를 5일 방역본부 관계자가 출입을 차단하고 있다.
구제역이 전국으로 확산되고 있다. 지난해 12월 3일 충북 진천에서 처음 발생한 구제역이 불과 한 달 사이에 충남과 경기, 경북 등 전국 4개도 10개 시.군으로 번졌다.

정부는 이번 구제역의 발생 원인과 경로에 대해선 한 달이 지나도록 규명하지 못하고 있다.

그러면서, 돼지농가들이 예방백신을 제대로 접종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며 모든 책임을 농가에 떠넘기고 있다.

이에 대해 축산농민들은 억울하다며 정부의 무능때문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실제로 정부의 구제역 방역 시스템이 현장에서 전혀 작동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 구제역 빠르게 확산…정부는 농가 탓

지난해 12월 3일 진천에서 처음 발생한 구제역은 5일까지 경기 이천과 경북 의성 등 전국 33개 농장에서 발생하며 빠르게 확산되는 양상이다.

지금까지 2만5천여 마리가 살처분됐다. 피해액만 100억원이 넘을 것으로 추산된다.

농식품부는 이번 구제역이 예방백신을 접종하지 않아 항체형성률이 떨어지는 농장에서 집중적으로 발생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주이석 농림축산검역본부장은 "백신을 2차례 이상 접종한 돼지의 항체형성률은 최소 60%가 넘어 구제역에 걸리지 않았다"며 "예방 접종을 제대로 하지 않은 축산농가의 책임이 크다"고 말했다.

농식품부는 구제역 예방백신을 접종하지 않은 농가에 대해선 과태료를 현재 500만원에서 최대 1,000만원까지 늘리고, 가축 재입식 제한과 살처분 보상금 감액 등 패널티를 한층 강화하겠다고 5일 밝혔다.

◈ 정부 따로, 지자체 따로…구제역 방역 시스템 붕괴

현재 우리나라의 구제역 방역 체계는 중앙 부처인 농식품부가 큰 틀에서 정책을 결정하면 지방자치단체는 현장에서 실행하는 이중 구조로 운영되고 있다.

농식품부가 축산차량 이동제한조치와 방제초소 설치 등을 결정하면 이에 따른 축사 소독과 예방백신 접종, 살처분 등은 모두 지자체의 몫이다.

그런데, 실제 현장에서는 중앙정부와 지자체가 엇박자를 내며 유기적인 협조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실예로, 농식품부는 구제역 확산 방지를 위해 공수의가 직접 백신접종에 참여하도록 조치했지만, 전국 지방자치단체들은 인력 부족등의 이유로 아예 소 닭 보듯 하고 있다.

충북의 경우 이번 구제역 사태의 최초 발생지이자 최대 피해지역으로, 현재 공수의가 모두 51명이 있지만 주로 한우에 대해서만 백신접종을 하고 우선 당장 시급한 돼지는 사실상 방치하고 있다.


충북도 관계자는 "충북에서 사육되는 한우만 24만 마리에 달하는데 돼지까지 감당하기에는 무리가 있다"며 "농장주가 고령이거나 소규모 농장에 대해서만 겨우 지원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처럼 중앙정부와 지자체간 손발이 맞지 않는 것에 대해 이동필 농식품부 장관도 우려를 나타냈다.

이 장관은 5일 출입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구제역 발생 현황을 살펴보면 지방 자치단체장의 의지에 따라서 지역마다 백신 항체형성률이 다 다르다"며 "지자체는 확인하고 점검하는 역할을 맡아야 하는데 시스템의 문제점을 노출한 것 같다"고 말했다.

이 장관은 그러면서, "제주도의 경우 공수의가 18명에 불과한데도 돼지 구제역 예방을 위해 접종업무를 잘 수행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 돼지농가, "백신 접종 어떻게 하는지 교육 받은 적도 없다"

정부는 구제역 확산 방지를 위해선 농가들이 백신접종을 스스로 알아서 잘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는 축산농민들에 대한 접종교육이 충분하게 이뤄졌기 때문에 얼마든지 백신접종을 할 수 있다는 전제가 깔려있다. 하지만, 현장에 있는 축산농민들의 입장은 다르다.

구제역 피해를 입은 김모(57, 충북 청주시)씨는 "전국의 돼지농장주들 가운데 백신접종 방법과 시기 등을 제대로 알고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라며 "무조건 농가 책임이라고 하는 것에 대해 억울한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실제, 돼지사육 농가에 대한 백신접종 교육이 부실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돈협회 관계자는 "예방백신 접종에 대해서 이론교육은 실시하지만 현장에서 실무교육은 하지 않고 있다"며 "이론교육 또한 강제성이 없고 축산농민들이 알아서 자율적으로 받고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그나마 전남도의 경우는 축산농가들이 전염병 백신접종 교육을 받으면 이수증을 발급해 주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이밖에 다른 지방자치단체는 백신접종 교육 시스템이 거의 없다"고 덧붙였다.

◈ 인력난에 시달리는 돼지농장…구제역 백신접종 엄두 못내

농식품부에 따르면, 현재 국내 사육 돼지는 모두 1,000만 마리에 사육농장은 8천여 농가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돼지 농장 1곳 당 평균 1,250여 마리를 키우는 셈이다.

문제는 이들 돼지농장의 인력이 농장주를 포함해 2~3명에 불과하다는 점이다. 인력 구하기가 어렵다 보니, 외국인 노동자까지 채용하고 있는 실정이다.

충북의 경우 돼지 1,000마리 이상 사육하는 230개 농장 가운데 38개 농장에서 133명의 외국인 노동자가 일을 하고 있다. 그나마 이들 농장은 5천마리 이상 대규모 농장이다.

이렇다 보니, 정부가 요구하는 것 처럼 구제역 예방백신을 제때 접종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게 양돈업계의 입장이다.

농협 관계자는 "백신을 6개월에 2차례 이상 접종해야 하는데 수천 마리의 돼지를 두세명이 접종하는 게 쉽지 않다"고 말했다.

더구나 국내 돼지사육 농장들은 대부분이 영세한 소규모 농장들로 백신접종 비용도 큰 부담이 되고 있다. 돼지 구제역 예방백신의 1마리 분 구입 가격은 2천원이다.

정부는 돼지 1,000마리 이하 소규모 사육농가에 대해선 예방백신 구입비용을 100% 지원하고 1,000마리 이상 전업농가에는 구입비용의 50%를 지원하고 있다.

하지만, 농장주가 직접 백신접종을 하지 않고 수의사나 일반인에게 위탁할 경우 인건비 등 각종 비용은 본인이 부담해야 한다.

한돈협회 관계자는 "사람을 써서 백신접종을 하기 위해선 1,000마리 농장의 경우도 최소 100만원 이상의 비용이 소요되는데, 영세농가 입장에서는 부담이 크다 보니 백신접종을 꺼리는게 현실이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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