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양천구 목동에 사는 직장인 김소영(30) 씨는 최근 세 살배기 둘째를 맡긴 어린이집에 들렀다가 충격적인 광경을 목격했다.
아이들의 똥이 그대로 담긴 기저귀가 바닥 여기저기 널려있었고, 심지어 몇몇 아이들은 그런 기저귀를 발로 차며 놀고 있었다.
일부 교사는 만화영화를 띄워놓은 휴대폰을 벽에 기대놓은 채 식판을 치우고 있었다. 아이들은 서로 질세라 맞댄 머리를 밀쳐대며 조그만 화면에 집중하고 있었다.
'평가 인증 어린이집'이라 해서 불과 사흘전 믿고 맡겼던 곳이었다. 하지만 김 씨는 곧장 아이를 데리고 나왔다.
따라 나온 어린이집 원장은 "이게 뭐야, 미쳤나봐. 저 선생님 원래 안 그러는데, 오늘만 이러네" 하며 정작 제대로 된 사과 한마디 없었다.
김 씨는 "정말 한숨밖에 안 나왔다"며 "이럴거면 인증제도가 무슨 소용이 있는지 모르겠다"고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김 씨처럼 '평가 인증 어린이집'이란 말만 믿고 아이를 맡겼다가,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히는 경우가 늘고 있다.
보육시설의 품질을 높이겠다며 시행된 제도가 당국의 허술한 운영 탓에 '무늬만 인증제'로 전락하고 있는 것.
현행 어린이집 평가 인증은 기본사항 확인부터 시작해 4개월 정도 걸리며, 통과하면 3년간 '평가 인증' 현판을 입구에 부착할 수 있다.
인증이 만료되는 시기에 2개월간의 재점검 및 재관찰, 한 달간의 재심의 등 총 3개월 안팎의 평가를 통해 재인증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평가 방식이 현장 검증보다는 서류 심사 위주인 게 문제로 지적된다. "서류를 내고 버티기만 하면 받을 수 있다"는 말이 회자될 정도다.
한국보육진흥원 등에 따르면, 지난 2월말 현재 어린이집 평가인증 통과 비율은 무려 87.5%에 이른다. 전체 4만 2528곳 가운데 3만 7201곳이 인증을 통과했다는 얘기다.
열 곳 가운데 아홉 곳의 환경이 우수해야 한다는 얘기지만, 현실은 거리가 멀다.
서울 어린이집 비리고발 및 상담센터의 김호연 센터장은 "원래 취지인 '보육시설의 질 제고'가 아닌 서류를 통한 인증이어서 사실상 유명무실화됐다"고 지적했다.
그마저도 불필요한 서류가 대부분이다. 양천구의 한 어린이집 원장은 "대체 그 많은 서류를, 누구를 위해 준비해야 하는지 모를 정도"라며 "보육교사가 아이를 가르치기에도 시간이 빠듯하다"고 불만을 표시했다.
정부가 너무 쉽게 인증을 내주는 것도 문제로 지적된다. '보여주기식' 행정을 위해 수치 높이기에만 급급한 것 아니냐는 것이다.
서울 영등포구 당산동에 있는 한 어린이집의 보육교사는 "요즘은 왠만하면 거의 다 통과되는 것 같다"며 "그냥 원장들의 자존심 때문에 인증을 받는 것 같기도 하다"고 했다.
서울 강서구 가양동의 한 어린이집 원장도 "피아노학원에서 아이들에게 참가비를 받아 대회에 내보낸 뒤 상을 받아오지 않느냐"며 "평가인증도 다를 바 없다는 느낌"이라고 했다. 남들 다하니 안 할 수 없다는 것.
평가인증이 '헐값 신세'가 되다 보니, 최근 어린이집 원장들 사이에는 '재인증 기피 현상'도 두드러지고 있다.
지난 2월 기준 재인증을 통과한 어린이집은 26.4%에 불과하다. 김호연 센터장은 "평가인증을 너무 쉽게 형식적으로 내주다보니, 오히려 기피하는 교사나 어린이집이 생겨나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마저도 사후 관리 또한 엉망이다. 인증 기간이 만료되거나 비리 등으로 회수됐는데도 '인증 현판'을 버젓이 붙이고 있는 어린이집도 늘고 있다.
김 센터장은 "재인증을 안 받더라도 부모들은 알 길이 없다"며 "심지어 급식 비리나 원아 폭행을 저지른 어린이집도 정부가 일일이 회수하지 않으면 방법이 없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