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방 송 : FM 98.1 (18:00~20:00)
■ 방송일 : 2012년 10월 25일 (목) 오후 6시
■ 진 행 : 정관용 (한림국제대학원대학교 교수)
■ 출 연 : 서민교 前 친일반민족진상규명위원회 전문위원
▷서민교> 예. 안녕하십니까?
▶정관용> 그 아까 방금 재향군인회에서는 친일인명사전 자체를 부정하시는데, 친일인명사전이 만들어지게 된 법적 근거가 있는 것이었습니까?
▷서민교> 친일인명사전은 결국 민간기구에서 만든 거니까요. 그거 자체를 법적기준이라기 보다는 전문연구자들이 다 모여서 청문회 등도 통하고 그런 의견들을 다 수렴을 해서 기준을 나름대로 제시를 했던 것이고요.
▶정관용> 네.
▷서민교> 그런 쪽은 나중에 정부기관으로 2005년에 발족됐던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특별법과도 서로 연계가 되어 있는 부분이죠.
▶정관용>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2005년에 발족했죠. 그런 활동의 연장선상에서 인명사전이 나왔다 그렇게 보시는거군요?
▷서민교> 그 이전부터 활동을 해왔고요.
▶정관용> 알겠습니다.
▷서민교> 정부기관쪽에서 했던거랑 민간기구에서 했던 것이 되겠죠.
▶정관용> 서민교 선생께서는 그 당시 법률에 의해 만들어진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에 전문위원을 지내신 거예요.
▷서민교> 예. 그렇습니다.
▶정관용> 그리고 거기서 남긴 기록이 있습니까? 백 장군에 대한 기록?
▷서민교> 예. 그러니까 결정을 했죠.
▶정관용> 네.
▷서민교> 조사 대상자로도 선정을 했었고, 최종적으로 행위 확인을 해서 친일 반민족 행위자로 결정을 했죠. 정부기관에서
▶정관용> 친일반민족 행위자로 정부기관이 규정을 했다?
▷서민교> 예.
▶정관용> 어떤 자료를 봤더니 친일행적이 잘 드러나던가요?
▷서민교> 역사적 자료니까 일생에 관한 자료를 다 수집을 했습니다만은 특히 저희들은, 중심이 됐던 것은 본인이 쓴 자서전, 회고록 이 자료들이 상당히 많은 부분 참고가 됐었습니다. 왜냐하면 스스로의 진술과도 거의 동격의 의미를 가지게 되거든요.
▶정관용> 그런데 회고록이 한국과 일본 양국에서 여러 권 나왔다면서요?
▷서민교> 예. 한국에서는 한 두세권 정도 나와 있고요. 일본에서는 오히려 더 많이 나와있습니다.
▶정관용> 네. 그런데 그 내용이 좀 달라요?
▷서민교> 주로 과거 이야기는 허약하게 취급되어 있고요. 주로 한군전쟁 당시의 이야기들이 많이 나와 있죠. 근데 한국에서 나와 있는 회고록은 일본어로 거의 번역이 됐고요, 근데 일본어로만 된 책도 두 종류가 있습니다.
▶정관용> 예.
▷서민교> 근데 일본에서 나와있는 책에 한국에서 나와있는 회고록하고는 전혀 다른 내용이 들어가 있는 게 있습니다.
▶정관용> 어떤 게 다릅니까?
▷서민교> 45년 이전의 활동에 대해서 나와 있는 부분이 있거든요.
▶정관용> 뭐라고 본인 스스로 기록을 했던가요?
▷서민교> 그러니까 백선엽씨 자체가 간도 특설대 활동에 대해서 직접 회고록에서 이야기하고 있는 게 일본에서 나온 내용입니다만 우리들이, 그러니까 간도특설대가 추격했던 게릴라가, 게릴라라고 표현하고 있는데 항일연군이라든지 독립군을 게릴라라고 표현을 하고 있어요.
▶정관용> 예.
▷서민교> 이 게릴라 중에는 많은 조선인이 섞여 있었다. 주의 주장이 다르다고 해도 한국인이 독립을 위하여 싸우고 있었던 한국인을 토벌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이제이 오랑캐를 통해서 오랑캐를 제압한다는 이이제이의 일본의 책략에 완전히 빠져든 형국이라고 지적을 하고 있습니다.
▶정관용> 본인 스스로?
▷서민교> 예. 그리고 약간 변명조로 말씀하시기를 우리가 전력을 다해 토벌했기 때문에 한국의 독립이 늦어졌던 것도 아닐 것이고, 우리가 배반하고 오히려 게릴라고 싸웠더라면 독립이 빨라졌다고도 할 수 없을 것이다. 라고 하면서 마지막 한마디 조금 후회스럽게요 그렇다고 하더라도 동포에게 총을 겨눈 것은 사실이었고 그 때문에 비판을 받더라도 어쩔 수 없다.
▶정관용> 어쩔 수 없다.
▷서민교> 이렇게 말씀 하셨어요.
▶정관용> 그런데 그 후에 주로 2000년대 인터뷰를 보면 독립군을 토벌하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백장군의 답변을 보면 독립군 구경도 해보지 못했는데 무슨 토벌이냐 말했거든요?
▷서민교> 연세도 있으시니까요. 뭐 과거사에 대해서 기억이라는 것이 항상 그렇지 않습니까? 기억이 남아있는 부분과 남아있지 않은 부분도 있다고 생각됩니다만, 지금 제가 말씀드린 내용자체도 본인 스스로가 이것을 문장으로 하신 것이기 때문에 본인의 의견이라고 저는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정관용> 네. 조금 아까 재향군인회 서진현 국장께서도 주로 중공팔로군을 상대로 싸웠고 일부 한국인들을 괴롭히던 김일성 게릴라 부대와도 싸웠다 이런 표현을 쓰셨는데.
▷서민교> 그건 사실과 다릅니다.
▶정관용> 다른가요?
▷서민교> 예. 다르고요. 특히 김일성부대 말씀하셨는데 김일성부대가 노령으로 넘어간 것은 그 이전이고요. 38, 9년이니까요 백선엽장군, 백선엽씨가 간도특설대에 있던 시기와는 겹치지 않습니다. 그리고 팔로군만 가지고 말씀을 하셨는데 당시 시대가 일제시대고 일본이 37년부터 제국주의 침략전쟁을 하던 시기입니다.
▶정관용> 그렇죠.
▷서민교> 그러면 항일부대라고 하는 것은 항일연군이라고 하는것은 그 주의가 공산주의던, 공산주의가 아닌 장개석 군도 싸우지 않았습니까? 그 주의주장만 가지고 편가름을 하면 안 될 것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정관용> 그건 백장군의 일본어판 회고록에서 본인도 그런 표현을 썼죠. 조금아까 말씀하신.
▷서민교> 그렇죠. 그렇죠.
▶정관용> 이래서 분명히 친일반민족행위 했던 건 맞다? 이 말씀인거죠?
▷서민교> 그렇죠. 전전에, 45년 이전의 행위를 가지고 평가를 할때는 당시 특별법규정에 의거해도 그렇고 저희들이 행위가 없으면 규정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정관용> 알겠습니다. 6.25 전쟁 그 이후에 한국군 그리고 한국전쟁에서 혁혁한 공을 세웠다는 점은 인정을 하십니까?
▷서민교> 그런 평가들을 일반적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제가 그쪽으로 분석을 해보진 않았습니다만 그런 일반적인 평가에 대해서는 동감을 하고 있는 바입니다.
▶정관용> 동의할 수 있다?
▷서민교> 예.
▶정관용> 전쟁영웅이라고 불러도 상관없다?
▷서민교> 그건 그렇게 평가를 할 수 있는 기준이 제시가 되고 납득이 되면 괜찮죠.
▶정관용> 그러나 동시에 친일반민족행위를 했던것도 분명하다?
▷서민교> 대한민국건국이후에 특히 한국전쟁이라고 하는 민족비극속에서 어떤 한국군내에서 역할을 하고 공을 세웠다는 것을 폄하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45년 이전의 행위도 있었다는 것은, 과가 있었다는 것은 분명히 지적을 해야 되겠죠.
▶정관용> 알겠습니다. 네 여기까지 듣죠. 고맙습니다.
▷서민교> 예. 감사합니다.
▶정관용> 서민교 전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전문위원 말씀 들었습니다. 전쟁영웅임을 서로 인정한다, 그러나 일제 강점기 때 있었던 흠 그것을 어디까지 볼것이냐 거기서 비롯된 시각차가 나오는 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