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왜 홍명보는 실패할 수밖에 없었나?

감독 전략전술 부재·선수 투지실종은 준비 부족 탓…축구협회가 자초한 일

브라질 월드컵이 조별리그가 끝나고 16강 토너먼트가 시작됐다.

조별리그를 마친 결과 미주 대륙 팀들의 득세에 아시아 팀 전멸, 유럽 팀 절반 이상의 몰락으로 요약된다. 어느 정도 예상했던 일이다. 역대 월드컵이 그랬다. 장거리 원정에 따른 컨디션 조절 실패가 주된 원인으로 보인다. 아시아 팀이 가장 심했고, 유럽의 강팀도 예외는 아니었다.

이번에 한국 대표팀은 1무2패(3경기 3득점 6실점)의 초라한 성적표를 받았다. 1998년 프랑스 월드컵 이후 16년 만의 조별리그 무승이라는 참담한 결과다. 당초 큰 기대는 하지 않았지만 이렇게 처참하게 패할 줄을 몰랐다. 축구를 사랑하는 국민 모두가 충격에 빠졌다.

여기저기 비판의 목소리가 거세다. 내용이 너무 나빴기 때문이다. 러시아와의 1차전에서 행운의 무승부를 기록한 한국은 2차전에서 우리의 1승 제물로 여겼던 알제리에게 유린당했다.

우리의 약점을 집요하게 파고든 알제리에게 충격의 2-4 패배를 당하는 순간 축구를 보는 국민이나 현장에 있던 감독, 선수 할 것 없이 모두 '멘붕'에 빠졌다. 벨기에와의 3차전에서는 10명을 상대하고도 0-1로 패하는 바람에 외신의 조롱거리가 될 정도였다.


◈올림픽 수준 선수로 월드컵 도전 '망신'

결과적으로 홍명보 감독은 한국축구의 수준을 2002년 월드컵 이전으로 퇴보시켰다. 홍 감독은 월드컵 대표팀 레벨의 선수들을 이끌고 런던올림픽에서 동메달을 땄지만 역설적으로 올림픽팀 수준을 벗어나지 못한 선수들을 데리고 브라질 월드컵에 도전했다가 망신을 당했다.


올림픽에 나갔던 선수들을 지나치게 과대평가했거나 아니면 월드컵을 우습게 본 홍 감독의 판단착오가 아닌가 싶다. 감독의 전략전술 부재와 선수들의 저질 체력, 투혼 실종이 도마 위에 오를 수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번 월드컵에서 한국 축구의 장점은 하나도 없었다. 강인한 체력을 바탕으로 끊임없이 상대를 압박하면서 간결한 원터치 패스로 중앙을 뚫거나 빠른 측면 돌파로 상대를 무너뜨리는 한국식 축구는 이제 삼척동자도 다 아는 내용이다. 하지만 이러한 모습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여기서 화려한 개인기나 탄탄한 피지컬 타령을 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기대했던 홍명보, 전략전술 등 총체적 '무능'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한마디로 준비 부족 때문이다. 감독, 선수, 축구협회 모두에게 해당하는 말이다. 월드컵 개막을 1년도 남겨놓지 않고 홍명보 감독이 대표팀 지휘봉을 잡았을 때 많은 사람들은 뭔가 부족하지만 홍 감독의 지략만큼은 믿었다.

풍부한 선수 경험과 런던올림픽 동메달이란 성과가 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번 월드컵에서 상대에 따른 맞춤 전략전술을 능수능란하게 구사할 것이란 기대감이 있었다.

하지만 홍 감독은 우리의 기대를 완전히 저버렸다. 단순히 전략전술 부재를 넘어 무능에 가까웠다. 선수 선발 잡음에서부터 평가전 연패, 잘못된 선발 기용과 적절한 선수 교체 실패, 상대 전력 분석 실패, 경기 중 분위기 반전을 위한 대응 전술 실패까지 홍 감독의 실수는 일일이 나열할 수 없을 정도다.

특히 홍 감독은 '점유율'에서 '전방압박 역습'으로 변하는 세계 축구의 트렌드를 전혀 감지하지 못한 듯 했다. 이번 월드컵에서 강팀들은 더 센 상대를 제압하기 위해 수시로 포메이션을 바꿨다. 네덜란드는 스페인을 깨기 위해 수비 때는 5-3-2, 공격 때는 3-5-2를 들고 나와 모두를 놀라게 했다.

또 끊임없는 전방 압박을 시도했다. 상대 수비라인이 조금만이라도 허점을 보이면 2, 3선에서 최전방으로 간결한 원터치 패스를 연결해 골을 터뜨리는 전술을 구사했다. 수비를 단숨에 무너뜨리는 최전방 연결 패스는 좌우측면과 중원, 최후방을 가리지 않았다. 네덜란드가 스페인을 무너뜨릴 때도 그랬고, 알제리가 한국을 대파할 때도 그랬다.

하지만 홍 감독은 런던올림픽 때부터 쓰던 4-2-3-1 포메이션을 끝까지 고수했다. 전방 압박도 없었고, 빠른 측면 돌파나 최전방으로 연결하는 2, 3선의 간결한 원터치 패스도 거의 없었다. 빠른 템포의 공격 전개는 오간데 없고 중원에서 목적 없는 드리블에 횡패스와 백패스만 난무했다.

이 때문에 우리의 공격과 수비 패턴을 쉽게 간파한 상대팀들이 너무 편하게 우리 골문을 열어젖혔다. 감독이 철저하게 준비하지 못한 책임론이 나온다. 상대 전술에 따른 대응 플랜 A, B, C가 있었는지 궁금하다.

월드컵에 참가한 선수들도 비난의 화살을 피할 수 없다. 월드컵은 세계에서 축구 제일 잘하는 선수들이 나와 최고의 기량을 뽐내는 무대다. 따라서 선수들은 최고의 몸 상태로 자신의 기량을 유감없이 발휘해야 하는 책임이 있다.

하지만 이번 브라질에 간 선수들의 몸 상태는 역대 최악이었다. 손흥민 등 일부를 제외하고 대다수 선수들의 몸 상태는 낙제점이었다. 압박 축구와 기동력 축구가 사라진 결정적 이유가 여기에 있다. 감독만 탓할 문제가 아니다. 선수들 스스로가 최상의 몸을 만들고 유지해야 하는 이유를 이번에 뼈저리게 느꼈을 것으로 보인다.

◈단기성과에 일희일비…'禍' 자초한 축구협회

축구협회가 이 모든 문제를 자초했다. 임기가 보장된 조광래 감독을 지역예선 중에 조기에 경질하고 극구 사양하는 최강희 감독을 대신 지역 예선이 끝날 때까지만 감독을 맡기는 최악의 실수를 저질렀다. 선수들은 감독이 바뀔 때마다 혼란에 빠졌고, 얼떨결에 월드컵팀을 맡은 홍명보 감독은 철저하게 준비할 시간을 갖지 못했다.

결국 축구협회가 젊은 홍 감독을 사지로 몰아넣은 꼴이 됐다. 브라질 월드컵에 관여한 모든 축구인 들은 통렬한 자기반성의 시간을 가져야 한다.

축구협회는 앞으로 차기 월드컵 감독을 선임할 때 심사숙고해야 하지만 결정된 뒤에는 모든 것을 맡기고 충분하게 시간을 줘야 한다. 감독의 축구 철학이 자연스럽게 대표 팀에 구현될 때까지는 말이다. 단기성과에 일희일비하면서 감독이 하는 일에 일일이 간섭을 하면 지금과 똑같은 상황이 되풀이 된다. 명심해야 할 대목이다.

협회는 이와 별도로 국가대표 상비군제도를 활성화시켜 지속적으로 선수 관리를 확대해야 한다. 젊은 선수들이 스카우트 파동이나 병역기피 문제에 휘말리거나 각종 사건사고에 연루되지 않도록 제도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체계를 갖춰야 한다. 그래야만 제2의 박주영 같은 선수를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와 함께 유소년 축구를 더 활성화시켜 대형 수비수와 세계적인 골키퍼를 반드시 길러내야 한다. 수비가 약하고 골키퍼가 부실하면 어떤 대회에 나가서도 좋은 성적을 낼 수 없다는 사실을 우리는 너무나 잘 알고 있다.

브라질월드컵은 이렇게 실패로 끝났지만 더 이상 좌절하거나 실망할 필요는 없다. 월드컵은 4년 후에 다시 열린다. 철저하게 준비하고 대비면 된다. 한국축구 이제 다시 시작해야 한다.

▲한국 축구 대표팀(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홍명보 감독과 알제리 축구 대표팀(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홍명보 감독(사진=노컷뉴스DB)
▲이청용(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손흥민(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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