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무총리 자리만 해도 벌써 3명에 이른다.
대통령직 인수위원장으로 김용준 전 헌법재판소장을 임명하더니, 고사하던 그를 박근혜정부의 초대 국무총리로 지명했다.
역동적으로 활동해야 할 자리인 총리 자리에 몸이 불편한 70대의 김 전 헌재소장을 지명한 것은 모두를 뜨악하게 만들었다. 재판 밖에 모르는 이를, 그것도 국정의 알파에서 오메가를 다 관할해야 하는 자리에 지명한 걸 두고 논란이 많았다.
결국 7억 원이라는 고액 수임료와 전국 곳곳의 부동산 등이 발목을 잡아 청문회에 서보지도 못하고 사퇴했다.
그리고 선택한 카드가 역시 법조인 출신인 정홍원 전 고검장이었다.
그도 한 달에 3천만 원의 수임료를 받았으며 검사와 변호사라는 직무외엔 그 어떤 자리도 맡은 적이 없었으나, 여당인 새누리당과 언론의 협조 속에 가까스로 국무총리에 임명됐다.
정홍원 총리는 박 대통령과 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에 가려 흔적이 없었고, 그의 역량은 세월호에서 여지없이 드러났다.
어디서부터 손을 써야 하는지를 모르고 우왕좌왕했고, 세월호 유가족들과 현장에서 취재한 기자들로부터 무능한 총리라는 지적을 받았다.
인품은 훌륭할지 모르나 '다이나믹 코리아'의 국무총리를 맡기기엔 적합한 인물이 아니라고 할 수 밖에 없는 대통령의 선택이었다.
박 대통령은 세월호 참사로 온 국민의 가슴이 먹먹하고 치유가 필요한 국면에서 '관피아 척결' 적임자라며 안대희 전 대법관을 회심의 카드로 내세웠다.
그의 청렴 강직 이미지를 인상적으로 받아들인 새누리당은 "너무 너무 잘된 발탁"이라며 환영했다.
6.4지방선거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나름의 정치적 계산에 따라 안 후보자를 반겼지만, 그의 총리 소감문은 검찰을 당황하게 만들었다.
국무총리란 정치 분야에서부터 경제, 사회, 문화, 스포츠, 예술에 이르기까지 국정의 모든 분야를 챙겨야 할 자리다.
하지만 "관피아와 적폐를 척결하는 데 모든 것을 바치겠다"는 일성을 본 검사들은 “마치 검찰총장 내정자의 소감 같았다”고 말했다.
그도 결국 ‘황제급' 전관예우에 해당하는 5개월간 수임료 16억이라는 벽을 돌파하지 못하고 낙마했다.
■ 김기춘 실장, 홍경식 수석은 안대희 파동의 중심
박근혜 대통령이 사랑한 또 다른 검사 출신 참모들도 그 한계를 여지없이 보여줬다.
김기춘 비서실장과 홍경식 민정수석이 잘못하는 바람에 이번 안대희 후보자 '인사 참사'가 생겼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통령이 안 후보자를 총리로 거론하더라도 두 사람만큼은 그의 역량과 경험 등의 문제점을 지적했어야 했다. 재산 검증 과정에서 16억 원이라는 고액의 수임료 문제도 밝혀냈어야 한다.
안 후보자에 대한 여론과 검증을 맡은 우병우 청와대 민정비서관, 권오창 공직기강 비서관 역시 책임론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청와대 인사 검증팀의 한 관계자는 안 후보자를 가리켜 “이렇게 세금을 잘 내고 깨끗한 분은 처음 본다”고 했단다. 한 현직 검사는 “청와대 민정수석실의 법조인 출신들은 모두 청맹과니와 다름 없다”고 힐난했다.
■ 현직 검사, "청와대 검증팀은 청맹과니"
박 대통령이 검사 출신들을 너무 과도하게 사랑한 나머지 빚어진 인사 참사다.
평생을 ‘죄가 되느냐 되지 않느냐’ ‘기소감이냐 불기소감이냐’ 만을 따져온 법조인들이 국민의 눈높이와 ‘국민 정서법’을 알 턱이 없음은 물론이다.
한 번도 ‘을’의 위치에서 살아본 적이 없는 ‘갑’의 인생만이 전부인 그들을 국가 권력의 최고 요직에 기용했으니, 사단이 벌어지지 않는다면 그게 이상한 일일 것이다.
TK 판사 출신의 한 중견 변호사는 “안대희 파동은 박 대통령이 법조인과 군 출신만을 쓰는 바람에 일어났다”며 “안대희 후보자 사퇴는 대통령이 사과해야 할 사안”이라고 말했다.
검사와 판사 출신들은 법으로 모든 것을 재단하려 하거나 집단주의적인 사고를 하는 경향이 강하다.
엊그제 안대희 총리 후보자의 고액 수임료에 대해 검사 출신 변호사 대여섯 명에게 물었더니 모두 “불법과 탈법이 아닌데 문제가 될까”라고 말했을 정도다.
■ 대통령이 동종교배 인사 폐해를 알았더라면...
전관예우를 애써 모른 척하려는 일종의 집단사고(Group Thinking) 형태이자, 동종교배의 폐해다.
응집력이 그 어떤 조직보다 강한 검사 출신들은 현직은 말할 것도 없이 퇴직한 이후에도 끼리끼리 몰려다니며 동질적 행동을 한다.
평생을 그런 문화에서 생활하다보니 ‘우린 잘못된 결정을 할 리 없다’는 맹신을 바탕으로 문제를 특정한 사고의 틀 안에서만 바라본다.
이의(異議) 제기를 억제하려는 기제도 쉽게 작동한다. 비판하는 자들이 어떤 저의를 갖고 의도적으로 공격만 할 뿐이라고 착각하는 것이다.
여기에 우월의식과 폐쇄적인 문화에 동종교배(同種交配)적 인사까지 접목이 되면 집단사고의 오류는 국정의 독버섯처럼 된다.
2010년 세계 최대 자동차회사 도요타가 최악의 리콜사태를 겪은 것도 "이사 29명 모두가 도요타 출신들로 이뤄져 다양성이 없었기 때문"이란 게 영국의 경제지 이코노미스트의 분석이었다.
박근혜 대통령이 동종교배 인사의 문제점을 직시하지 못했거나 알았더라도 그 실상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면 인사 패착의 원인은 거기에 있다.
안대희 후보자를 내세웠을 때 ‘또 법조인이냐’라는 문제 제기를 언론이 한 것은 동종교배의 집단적 사고와 자신들의 결정이 옳다는 독선을 우려한 것이다.
이마저도 의도적 비판이라고 인식했다면 법조인 중용에 대한 반성과 해법은 앞으로도 제대로 나올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