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객선 침몰] 선장·선원 '1호 탈출' 해경이 방조

현장 첫 도착 해경 경비정에 구조돼

세월호(6천825t급) 선원들이 절체절명의 위기에 빠진 승객을 두고 먼저 탈출하는 상황을 해양경찰이 방조한 것으로 확인됐다.

22일 해양경찰청에 따르면 지난 16일 세월호 침몰 현장에 가장 먼저 도착한 경비정은 목포해경 소속 123정(100t급)이다.

해경 123정은 이날 오전 8시 58분 상황실로부터 출동 명령을 받고 당시 위치에서 30km 떨어진 사고현장에 오전 9시 30분 도착했다.

123정이 현장에 도착했을 때 세월호는 이미 왼쪽으로 50∼60도 기울어진 상태였다.

선원들은 오전 9시 38분 세월호와 진도 연안해상교통관제센터(VTS) 간의 마지막 교신 직후 선박 조타실에서 탈출을 시작했다. 오전 9시 28분 '선실이 안전하다'고 선내 방송을 한 지 10분만의 일이다.

5층 조타실 왼쪽 옆 갑판이 물에 닿을 정도로 배가 기울었기 때문에 선원들은 물에 뛰어들지 않고도 세월호 좌현에 밀착한 123정에 옮겨 탈 수 있었다.

선원들은 조타실 바로 옆에 25인승 구명뗏목(구명벌) 14척이 있었지만 이마저도 작동시키지 않고 서둘러 123정에 올라탔다.

해경은 그러나 선박 구조를 가장 잘 아는 선원들을 다른 승객을 구조하는 데 적극 활용하지 않고 육지 병원으로 이송하는 오판을 저지르고 말았다.


해경 123정이 이준석(69) 선장 등 선원 10명과 일반승객 등 총 80명을 구조, 1차 구조를 마친 시각은 오전 9시 50분. 400명에 가까운 다른 승객들이 여전히 배에 갇힌 채 구조의 손길을 애타게 기다리던 때였다.

선원들이 피를 흘리거나 골절상을 입는 등 부상이 심각한 상황이었다면 긴급 이송을 하는 것이 맞지만 스스로 탈출할 수 있을 정도의 몸 상태였기 때문에 선원들을 구조에 적극 활용해야 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특히 123정이 도착한 직후 해군 3함대 PKG, 어선 등 구조 선박들이 속속 현장에 모여든 점을 감안하면 더욱 아쉬운 대목이다.

구명조끼를 입고 뛰어든 승객 구조를 다른 선박에 맡기고 해경이 선원들을 앞세워 제한적이라 하더라도 조타실 인근 구역을 중심으로 선내 수색을 했더라면 훨씬 더 많은 인명을 구할 수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수많은 승객을 놔두고 탈출한 선원 10명은 일반승객 47명과 함께 오전 10시 10분 123정에서 진도군청 급수선으로 옮겨져 오전 11시께 진도군 팽목항에 도착했다. 다른 선박에 구조된 선원까지 합치면 선장·항해사·기관사·조타수 등 이른바 선박직 선원 15명은 전원 생존했다.

선장과 선원들이 승객을 버리고 배에서 먼저 빠져나오는 '1호 탈출'을 해경이 도운 셈이다.

이는 2012년 이탈리아 유람선 코스타 콩코르디아호 좌초 사건 당시 배를 버리고 탈출한 선장에게 해안경비대장이 재승선을 지시하며 남아 있는 승객 현황을 파악하라고 단호하게 대응한 것과 극명한 대조를 이룬다.

선장 이씨는 팽목항 도착 후 선장 신분을 숨긴 채 진도한국병원으로 옮겨져 물리치료실 온돌침대에 누워 물에 젖은 지폐를 말리며 시간을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해경의 뒤늦은 호출을 받고 오후 5시 40분이 돼서야 구조 지원을 위해 현장 지휘함인 해경 3009함에 승선했다. 침몰 초기 승객을 구조할 수 있는 결정적인 시간인 '골든타임'을 허비한 뒤였다.

이씨는 수중 수색에 나서는 잠수사에게 선박 구조를 설명하며 뒤늦게 구조 지원활동에 참여했지만 이후 더 이상의 생존자는 발견되지 않았다.

해경의 한 관계자는 "선원들을 구조할 당시에는 배가 넘어가는 긴박한 상황이어서 한 명이라도 더 구조해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며 "선원들을 구조에 활용할 생각은 미처 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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