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일 국회 등에 따르면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새정치민주연합 이종걸 의원은 보험회사의 대주주 등이 발행한 주식 및 채권에 대한 투자한도 기준을 장부가액, 즉 시장가격으로 명시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보험업법 개정안을 지난주에 발의할 것으로 알려졌었다.
이 의원은 보험사가 보유한 계열사 주식 평가기준을 시장가격으로 정하는 내용의 보험업법 개정안 성안을 마무리하고, 국회 발의에 필요한 동료 의원들의 서명까지 모두 받았다. 한 언론은 지난달 25일 이 의원이 곧 개정안을 발의할 예정이라고 보도했다.
이 의원이 발의할 예정이었던 보험업법 개정안에 서명한 의원은 새정치민주연합 민병두 박영선 배기운 이학영 추미애 홍종학 황주홍 의원과 정의당 김제남 심상정 의원 등 모두 9명이다.
하지만 이종걸 의원은 이날까지 국회에 법안을 제출하지 않았다. 이 의원실 관계자는 CBS와의 전화통화에서 "발의를 위한 준비는 거의 마쳤는데 아직 의원님의 지시가 없어 제출하지는 않은 상태이며 현재로선 언제 낼지도 확실하지 않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정치권과 재계에서는 삼성그룹이 이 개정안의 발의를 막기 위해 로비를 펼치고 있다는 의혹이 나왔다. 새정치민주연합의 한 관계자는 7일 “삼성 측에서 법안이 발의된다는 소식을 듣고 여의도에 직원들을 투입해서 법안에 서명을 한 의원실을 찾아다니며 재고를 요구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법안에 서명한 A 의원실 관계자도 '삼성 측의 접촉이 있었느냐'는 질문에 “(삼성이) 구슬린다고 구슬려지는 것은 아니지만 (삼성측으로부터)얘기는 다 듣고 있다”고 말했다.
이종걸 의원실 관계자도 “삼성 측에서 찾아온 일이 있다”면서도 “예민한 문제라서 더 자세히 설명하긴 어렵다”며 삼성이 어떤 이유로 찾아와서 무슨 말을 했는 지에 대해 함구했다.
삼성은 왜 의원실을 돌며 작업에 나선 것일까? 아직 법안이 발의도 안됐지만 발의될 경우 삼성그룹의 지배구조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현재 보험회사는 총자산의 3% 이상을 계열사 주식에 투자할 수 없도록 규제받고 있다. 보험가입자가 납입한 보험금을 적정하게 운용하도록 해 보험금 지급의 안정성을 보장하기 위한 것이다.
문제는 보유 주식을 평가하는 명확한 기준이 법령에 나와 있지 않다는 점이다. 금융당국은 감독규정을 통해 주식을 처음 샀을 때의 가격, 즉 취득원가를 적용하고 있다. 하지만 비슷한 업종인 은행과 저축은행 등이 보유한 계열사 주식은 취득원가가 아닌 시장가격으로 평가하고 있다. 이 때문에 보험사, 특히 삼성생명에 대해서만 특혜를 주고 있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지난해 기준 삼성생명의 총자산은 193조원으로, 대주주 등이 발행한 주식의 보유 한도는 자산의 100분의 3인 5.79조원이다. 삼성생명이 보유한 20개 계열사의 주식은 취득원가로는 2.2조원이지만 시가로 따지면 20.65조원에 이른다. 계열사 주식을 현행법의 취득원가가 아닌 개정법의 시가로 평가할 경우 삼성생명은 15조원 가까운 주식을 처분해야 한다.
특히 삼성생명은 삼성전자 주식의 7.56%에 해당하는 15.3조원 어치를 보유한 최대주주이다. 삼성그룹은 이건희 회장의 장남 재용 씨가 25.1%의 지분을 보유한 에버랜드를 정점으로 삼성생명, 삼성전자, 삼성SDI로 이어지는 순환출자 구조로 짜여 있다. 삼성생명이 삼성전자 주식을 처분하게 되면 그룹의 지배구조 자체가 흔들리게 된다.
경제개혁연대 김상조 소장은 "다른 법령에도 평가 방법을 정한 규정은 없지만 삼성생명만큼 신경 써야 할 금융기관이 없으니까 감독당국이 합리적으로 결정한 것"이라며 "다른 나라는 물론 우리나라의 다른 금융기관도 글로벌 스탠더드에 따라 보유 주식을 시가로 평가하는데 유독 보험사만 그렇게 할 이유가 없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