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히 퇴직연금이 개인퇴직연금(IRP) 체제로 전환되면서 IRP를 놓고 금융업계간 신경전도 뜨거워지고 있다.
IRP란 퇴직하기 전후 개인적으로 퇴직연금전용 계좌를 개설해 퇴직금을 연금으로 장기간 분할 수령할 수 있도록 고안된 퇴직연금을 말한다.
물론 퇴직금을 일시금으로 수령할 수도 있지만 가급적이면 연금으로 돌려 안정적인 노후 보장이 가능하도록 디자인된 연금 제도다.
올해 100조원대에 이를 것으로 예상되는 퇴직연금은 법적으로 모두 IRP로 통해서 수령해야함에 따라 금융업계는 IRP 유치를 위해 사활을 걸고 있다.
문제는 금융업계간 IRP 계좌 개설 방식이 달라 불공정 논란이 일고 있다는 점이다.
고객이 IRP 계좌를 열 때 삼성생명과 교보생명 등 보험사들을 통해 계좌를 열려면 영업점을 방문하지 않고 온라인상에서도 가능한 반면 은행, 증권사 계좌는 반드시 영업점을 방문해서 열어야 한다.
이는 관련법령의 규정 때문이다.
보험사가 취급하는 보험형 IRP는 보험상품으로 규정돼 다른 보험 상품처럼 금융실명거래 및 비밀보장에 관한 법률(금융실명법)상의 금융자산에 포함돼 있지 않아 실명확인 절차를 거치지 않아도 된다.
다시 말해 공인인증서를 가지고 온라인상에서 본인확인만 거치면 계좌 개설이 가능하다는 뜻이다.
반면 같은 IRP라도 은행과 증권사가 취급하는 것은 금융실명법상의 금융자산으로 분류돼 반드시 실명확인을 거쳐야한다.
고객들로서는 수고롭게 점포에 찾아가서 계좌를 개설할 바엔 편안하게 인터넷으로 계좌를 트는 게 낫다고 생각할 수 있다.
눈뜨고 당하고 있다는 불만이 은행이나 증권사에서 나올 만한 대목이다.
한 증권회사 간부는 “오래된 법 조항 때문에 시장에서 불공정 게임이 진행되고 있다”며 “더욱이 온라인으로 계좌 개설이 가능하다보니 고객들이 IRP 상품 종류에 대해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상태에서 가입하는 부작용도 생기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IRP 가입 문제는 정상화 조치가 필요한 금융업계의 대표적인 비정상 관행”이라고 덧붙였다.
보험상품이 금융실명법상의 실명확인 대상 금융자산에서 제외돼 있는 점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제기도 나오고 있다.
또 다른 금융업계 관계자는 “보험상품 가입시 자금세탁방지법(FIU법)에 따라 공인인증서를 통한 본인확인 절차를 거치도록 돼 있다지만 금융정보가 대규모로 유출된 이상 본인확인은 얼마든지 회피가 가능한 상태”라며 “금융실명법도 이 같은 현실에 맞게 개정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생명보험협회 류제상 팀장은 “퇴직연금 시장에서 고전하고 있는 쪽은 오히려 보험사들이다”고 해명했다.
그가 보내온 ‘자산관리계약 기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말 현재 퇴직연금 전체 점유율은 은행 56%, 보험 33%, 증권 10.9% 순으로 은행이 압도하고 있다.
특히 IRP 점유율의 경우는 69.2%, 17.3%, 13.5% 순으로 보험과 은행간 격차가 더 벌어져 있다.
그러나 이렇게 IRP 점유율에서 은행이 우세를 보이고 있는 것은 은행의 촘촘한 점포망 때문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퇴직연금을 바로 해지하기 위해 가까운 은행으로 달려가는 사람들이 아직은 대부분이라는 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