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누코비치는 지난 21일 밤(현지시간) 수도 키예프를 떠나 자신의 정치적 지지기반인 동부 지역으로 이동한 것으로 알려졌으나 이후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다.
동남부 지역의 지지 세력을 결집해 수도와 서부 지역을 장악한 야권에 맞설 것이라던 애초 예상과는 달리 아직은 어떠한 저항 움직임도 보이지 않고 있다. 동남부 지역의 반발 분위기도 예상만큼 거세지 않다.
23일 한때 야누코비치가 체포됐다는 소문이 돌았으나 사실이 아닌 것으로 확인됐다. 내무장관 대행 아르센 아바코프는 이날 야누코비치가 남부 크림반도에서 체포됐다는 언론 보도를 부인하면서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다. 나는 그러한 정보를 갖고 있지 않다"고 밝혔다.
크림반도는 러시아계 주민이 많고 친러시아 성향이 강한 우크라이나 내 자치 지역이다. 반도 남서부 항구도시 세바스토폴에는 러시아 흑해 함대가 주둔하고 있다.
동부 도시 도네츠크에서 전세기를 이용, 출국을 시도하다 실패한 것으로 알려진 야누코비치가 러시아로 망명하기 위해 크림반도로 잠입했을 가능성은 있다.
야누코비치는 앞서 21일 밤 혹은 22일 새벽 수도 키예프를 떠난 것으로 전해진다. 이후 동부 도시 하리코프로 간 그는 22일 그곳에서 개최된 동남부 지역 의회 연합 대회에 참석할 것으로 예상했으나 대회장에 나타나지 않았다.
대신 현지 TV 방송을 통해 야권의 정권 장악 시도를 "쿠데타"라고 비난하면서 "절대 자진 사퇴하지 않을 것이며 우크라이나를 떠나지도 않을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당시까지만 해도 자신을 몰아낸 야권을 상대로 결사항전하겠다는 태도였다.
하지만 이후로 알려진 소식은 '실망스런' 것이었다. 우크라이나 국경수비대는 23일 새벽 야누코비치가 동부 도시 도네츠크에서 국경수비대원들에게 뇌물을 주고 출국을 시도하다 실패하고 모처로 도피했다고 밝혔다.
국경수비대는 "무장한 사람들이 돈을 건네며 서류절차 없이 야누코비치 대통령이 탄 전세기를 출국시켜 줄 것을 부탁했다가 거절당했다"고 설명했다. 수비대는 "이후 2대의 장갑 차량이 전세기로 접근했고 비행기에서 내린 대통령이 차로 옮겨타자 곧이어 공항을 떠났다"고 전했다.
이로 미루어 야누코비치는 무장 경호원들을 대동하고 자동차로 동남부 지역을 옮겨다니며 망명을 위한 출국을 시도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정권을 되찾기 위한 결사항전은 포기한 것으로 보인다. 끝까지 자신을 따를 것으로 믿었던 지지세력들이 결연한 저항의지를 보이지 않는 것은 물론 심지어 등을 돌리는 사태까지 벌어진 상황이 작용한 것으로 분석된다.
야누코비치의 지지 기반인 동남부 지역에선 몇몇 정치인들이 새로 권력을 잡은 기존 야권 세력에 저항하고 있고 일부 주민들이 이들을 지지하며 시위를 벌이고 있지만, 대세를 뒤집기에는 역부족인 상황이다.
더욱이 야누코비치가 이끌어온 지역당은 이미 그를 배신자로 비난하면서 등을 돌렸다. 지역당은 23일 의회에서 발표한 성명에서 "야누코비치 대통령의 도주와 소심함, 그의 배신을 비난한다"며 "평범한 시민과 군인, 장교들을 곤경에 빠트린 그의 범죄적 명령을 규탄한다"고 밝혔다.
지역당은 또 "우크라이나는 배신당했으며 이에 대한 책임은 전적으로 야누코비치와 그의 측근들에게 있다"고 선을 그었다.
야누코비치 권력을 떠받쳐 온 '전위대'의 이같은 반응은 그가 이미 대다수 지지 세력으로부터도 버림을 당했음을 증명하는 것이다. 동시에 야누코비치가 취할 수 있는 운신의 폭이 크게 좁혀졌음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