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니 따돌린 삼성 DNA 닮았다

양위안칭 레노버 회장의 도전경제학

"삼성을 뛰어넘겠다." 세계 최초 휴대전화업체 모토로라를 집어삼킨 양위안칭 레노버 회장의 말이다. 누군가는 허상이 심하다고 비웃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양위안칭 회장은 입 밖에 꺼낸 대부분의 말을 지켜왔다. 다 쓰러져가는 IBM PC사업부를 인수해 세계 PC 시장 1위에 올려놓은 주인공도 그다. 그가 지금 '삼성'을 압박하고 있다. 그 옛날 삼성이 소니에게 그랬던 것처럼….

작가 홍하상은 저서 「중국을 움직이는 10인의 CEO」에서 2002년 베이징北京을 이렇게 묘사했다. "끝없이 이어지는 빌딩숲, 빌딩마다 중국의 우수한 컴퓨터 제조업체와 컴퓨터 주변기기 제조업체, 인터넷 소프트웨어업체들이 가득 들어찼다." 그의 말은 과장이 아니었다. 2000년 이후 베이징 곳곳에 변화의 물결이 일었다. 특히 중관춘中關村을 중심으로 산업이 꿈틀댔다. 중국의 실리콘밸리라 불리는 이곳은 자고 일어나면 초고층 빌딩이 들어섰고, 한해가 지나면 도시 풍경이 달라졌다. 중관춘은 단순히 컴퓨터를 파는 상가가 아니라 첨단기술이 집약된 클러스터였다.

올 1월 모토로라를 인수ㆍ합병(M&A)하면서 단박에 글로벌 스마트폰 업체로 떠오른 레노버(렌샹联想그룹)도 일찌감치 이곳에 둥지를 틀었다. 그렇다고 레노버를 중관춘에 들어선 수많은 컴퓨터 제조업체쯤으로 보면 곤란하다. 2001년 중국 PC시장의 중국제품 점유율은 81%로 외국브랜드(19%)를 크게 압도했다. 업계 1위와 2위 간의 격차도 크다. 레노버와 베이따팡정北大方正의 시장점유율은 각각 31%, 10%였다. 레노버는 거대한 내수시장을 바탕으로 2001년 약 400만대의 컴퓨터를 팔아 치웠다. 그해 중국에서 생산된 컴퓨터 대수가 총 890만대였던 점을 감안하면 대단한 실적이다. 중국 PC시장은 레노버의 독무대였던 것이다.

컴퓨터로 대륙을 장악한 레노버. 이런 기업을 이끄는 수장은 어떤 인물일까. 흥미롭게도 당시 레노버를 이끈 이는 경험과 추진력이 뛰어난 중년도, 관록을 겸비한 장년도 아니었다. 30대의 젊은 CEO 양위안칭楊元慶 회장이었다. 그의 당시 나이 38세. 양위안칭 회장은 신세대 기업가였다.

양위안칭 회장은 중국에서 젊고 유망한 기업인으로 평가받았다. 1999년 전국청년연합회가 뽑은 '최고 중국 5ㆍ4청년상(5ㆍ4신문화운동을 기념하는 상)'을 수상했고, 2001년 6월엔 비즈니스위크 아시아판의 '아시아 스타'에 선정되기도 했다. 양위안칭이 레노버 수장으로 등장한 것은 '레노버 2000 회계연도 결의대회'에서다. 그는 창업자 류촨즈柳傳志로부터 짙은 남색의 레노버 깃발을 넘겨받았다. 당시 홍콩 신보新報는 양위안칭의 레노버를 이렇게 평가했다. "양위안칭은 겪어보지 못한 국면을 맞을 것이며 이는 경쟁상대보다는 회사 내부에서 시시각각으로 전해지는 압력이 더 클 것이다."

현지 언론의 전망은 정확하게 맞아떨어졌다. 양위안칭 회장은 지휘봉을 넘겨받은 이후 '3년 전략계획 달성'을 선포했다. 전략계획의 골자는 업무를 6가지로 세분화하고, 연간 매출 260억 위안을 달성하는 거였다. 아울러 3년간의 계획기간에 성장률 50%, 연간 이윤증가율 40%, 2003~2004 회계연도까지 매출액 600억 위안 달성을 목표로 삼았다.

하지만 현실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신세대 사업가의 포부와 달리 레노버는 부진한 성적표를 받아야만 했다. 2003년 5월 홍콩에서 발표한 레노버의 '2002~2003 회계연도 데이터'에 따르면 2003년 레노버 매출은 214억 위안을 기록했다. 여기에 양위안칭 회장이 추진한 3년 내 600억 위안 달성이 실패로 돌아가자 레노버 실적에 대한 혹평이 쏟아졌다.

레노버의 젊은피 양위안칭


여기서 주목할 것은 양위안칭 회장의 선택이다. 그는 실적 부진으로 회장직에서 물러나라는 여론을 받아들였다. 레노버 이사국 주석 자리에서 조용히 물러나 레노버그룹 CEO 자리로 돌아간 것이다. 양위안칭 회장은 맡은 일은 담대하게 추진하면서도 자리에 연연하지 않았다. 자신이 있어야 할 곳을 알았기 때문에 물러날 줄도 알았던 거다. 그러면서도 그는 전열을 가다듬었다. 기회는 2004년 12월에 왔다. 레노버가 IBM 글로벌 PC사업을 인수(M&A)한 것이다. 당시 해외시장에서 무명이었던 레노버는 M&A를 통해 글로벌 PC시장에서 단번에 델ㆍHP에 이어 3위로 도약했다. 레노버는 M&A를 통해 해외시장을 공략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강용남 한국레노버 대표는 "레노버가 추구하는 M&A는 해외시장에 진출하면서 현지화 작업에 가장 필요한 기업을 확보하는 것"이라며 "현지에 적합한 모델을 만들겠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그는 "최근 성사된 모토로라 M&A는 레노버가 글로벌 시장에 진출하면서 필요한 역량을 확보하기 위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실제로 레노버는 2012년 브라질 가전업체 CCE를 M&A했고, 그 결과 브라질 가전시장의 7% 점유율을 확보했다. 2011년 일본에서는 NEC 컴퓨터 사업부를 사들여 NEC 레노버를 설립했고, 일본에서 노트북 최대 공급업체로 올라섰다.

M&A 이후 모든 사업이 순조로웠던 것은 아니다. 2004년 레노버는 IBM PC사업부 M&A 이후 한동안 고전을 면치 못했다. 중국계 회사와 미국계 회사 간의 문화적 통합에 어려움을 겪었기 때문이다. 레노버의 성장 정체는 2008년까지 이어졌다. 고비를 맞으면 영웅이 등장하게 마련이다. 레노버에게 영웅은 양위안칭 회장이었다. 그는 레노버의 교착국면을 두가지 전략으로 돌파했다. 양위안칭 회장이 첫째로 한 일은 조직을 슬림화한 것이다. 양위안칭 회장은 기업이 급성장하는 상황에서 조직이 거대해지는 것은 효과적인 업무 관리를 방해한다고 판단했다. 레노버가 과감하게 구조조정을 단행한 이유다.

이를 바탕으로 수립한 전략이 '프로텍트 앤드 어택(Protect and Attack)'이다. 이 전략의 요지는 '보호할 것은 지키고, 공략할 것은 공격한다'다. 이를 테면 중국ㆍ미국과 같이 레노버에게 이점이 큰 시장은 최대한 지키고(프로텍트), 인도네시아ㆍ브라질처럼 사업을 확대해야 하는 시장은 적극 공략(어택)한다. 눈여겨볼 것은 레노버와 판매자 간의 긴밀한 관계다. 레노버는 계약을 체결한 판매자에게만 해당 지역에 대한 물건을 독점적으로 공급하고, 그 판매자는 반드시 레노버의 물건만 팔도록 한다.

이를 통해 레노버가 얻는 것은 물건을 판매하면서 판매자가 확보하는 고객의 피드백을 신속하게 전달받는 거다. 고객의 피드백을 제품에 반영해 출시하는 사이클이 짧은 것은 프로텍트 앤 어택 전략을 통해 얻은 최대 이점이라 할 수 있다. 레노버는 해외시장에 진출할 때 이 방식을 적용했고, 인도와 브라질에서 성공사례를 만들었다.

"말한 것은 반드시 지킨다"

양위안칭 회장이 레노버의 위기를 돌파한 둘째 방안은 'PC플러스 전략'이다. 이 전략은 "PC가 앞으로 30년~40년밖에 존재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에서 탄생했다. 2009년부터 레노버는 'PC가 다양한 형태로 발전하는데 PC 중심으로 성장하는 경우 어떤 제품을 만들고 고객에게 다가갈 것인가'를 전략적으로 연구했다. 그 결과 PC기술을 바탕으로 한 스마트폰ㆍ태블릿PCㆍ스마트TV 등을 개발할 수 있었다.

이를 바탕으로 레노버는 지난해 7월 처음으로 세계 PC시장 1위에 등극했다. IBM PC사업부를 인수한 지 9년 만의 일이다. 더 놀라운 것은 PC시장이 매년 5%가량 감소하는 와중에 레노버가 PC시장 평균보다 14%포인트 높은 성장률을 기록했다는 점이다. 이 모든 전략은 레노버의 독특한 문화에 근거한다. 일명 '레노버 웨이'다. '우리는 우리가 말하는 것을 행동으로 옮기고 우리가 한 것에 대해 책임을 진다'는 의미다.

놀랍게도 양위안칭은 지금까지 말한 것을 대부분 지켜왔다. 모토로라를 집어삼킨 양위안칭 회장은 이렇게 말했다. "삼성과 애플을 뛰어넘겠다." 레노버가 글로벌 스마트폰 시장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김건희 더스쿠프 기자 kkh4792@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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