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전시회는 아버지 류해윤의 그림과, 아버지의 그림을 보고 아들 류장복이 다시 그린 그림으로 구성된다.
아들 류장복(57)은 서울대 대학원 서양화과를 졸업하고 재작년 스무 번째 개인전을 열었다.
아버지 류해윤(84)은 70세에 처음 붓을 잡아 지금까지 매일 그림을 그리고 있다.
아들은 아버지의 그림을 보고 새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이것이 바로 ‘해장윤복’이다.
그는 아버지가 그려놓은 그림의 부분을 포착하여 그 표면을 더듬는다.
먼 기억을 눈앞에 불러와 관조하는 아버지의 그림이 해장윤복의 감각적 응시의 시선을 통해 눈앞의 자연으로 환원된다.
아버지의 기억 속에서 더욱 또렷해진 붉게 물든 산과 파란 소나무와 졸졸 흐르는 시냇물과 환하게 피어오른 꽃나무의 형상은 그림의 표면을 더듬는 아들의 시선 속에서 단지 선과 색, 농담으로 분해된다.
선과 색, 농담 그것들은 구체적인 무엇이 되기 전 단계에 거주한다.
해장윤복의 시선은 아직 추상적으로 모호한, 그래서 투명한 미시공간을 배회한다.
그러다가 하나의 질서가 우연을 가장하여 수면 위로 떠오를 때 그림은 그림의 옷을 입게 되어 현실에서 모습을 갖게 된다.
부자지간의 두 화가 사이에서 태어난 해장윤복은 아버지 화가의 기억을 더듬는 감각과정을 통해서 현재진행형으로 소통을 시도한다.
이러한 그림그리기는 근원적인 뿌리에 대한 향수에서 비롯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