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틀 전 정홍원 국무총리를 만난 자리에서 정 총리가 "없던 일로 하자"며 만류했으나, 결국 사퇴를 강행했다.
형식도 이례적이었다. 진 장관은 이날 오전 11시 30분쯤 보좌관의 이름으로 보건복지부 출입 기자들에게 '보건복지부 장관을 사임하면서'라는 제목의 이메일을 보냈다.
복지부 대변인실이나 청와대와는 사전 조율을 하지 않고 개인 자격으로 보낸 예고없는 사퇴 통보였다. 일부 기자들은 장난 메일로 오해하기도 했고, 메일을 아예 받지 못한 언론사도 있었다.
진 장관은 이메일에서 "저는 보건복지부 장관으로서 책임을 통감하기 때문에 사임하고자 한다"고 입장을 밝혔다.
또, "그동안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드린 점에 대해 송구하게 생각하며 국민의 건강과 박근혜 정부의 성공을 기원한다"고 덧붙였다.
말미에는 9월 26일이라고 시점이 적혀 있어 진 장관이 하루 전에 이미 사퇴 의사를 굳히고 문건을 준비했음을 알 수 있다.
진 장관이 청와대의 만류에도 다소 다급한 방식으로 사퇴를 표명한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기초연금과 관련된 후폭풍이 심상치 않다는 점이 주된 원인으로 보인다. 기초연금은 소득 상위 30% 노인들을 배제하고, 나머지도 국민연금 가입기간에 따라 차등지급하는 안으로 후퇴한 상태이다.
진 장관은 기초연금 최종안을 결정하는 과정에서부터 청와대와 의견 마찰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진 장관은 평소 기초연금을 국민연금 가입기간과 연계하는 안에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었지만 청와대는 국민연금 연계안을 선호해 복지부에 이같은 모델을 여러차례 주문했다.
이 과정에서 진 장관과 청와대 고위 관계자와의 갈등설이 불거졌다.
새누리당 한 관계자는 "진 장관이 기초연금을 결정하는 과정에서 청와대 관계자들과 틀어졌다는 얘기가 있다"고 말했다.
진 장관은 지난 인사청문회에서도 "국민연금 가입자들이 손해보는 일이 있어서는 안되고, 그런 일이 있다면 시정돼야 한다"고 소신을 밝혔다. 하지만 결국 청와대의 주문대로 국민연금 가입기간과 연계하는 안이 발표됐고, 파문이 커지자 사퇴 결심을 굳힌 것으로 보인다.
특히 여론이 들끓으면서 박근혜 대통령이 공약 후퇴에 대해 "죄송하다"며 거듭 사과하는 마당에 주무부처 장관의 어깨도 더 무거워졌을 것이다.
복지부가 기획재정부와 안전행정부 등 예산과 인력을 쥔 힘 있는 부처에 밀리면서 장관으로서 무력감을 느꼈다는 증언도 나온다. 진 장관은 수개월 전부터 측근들에게 "복지부가 할 수 있는게 없다"고 고충을 토로해왔다.
진 장관의 사퇴설이 불거진 과정도 미스테리하다.
진 장관이 사우디아라비아에 출국한 직후인 23일 조선일보 보도에서 측근의 입을 통해 사퇴설이 최초로 알려졌다. 기초연금 최종 발표를 불과 사흘 앞둔 시점이었다.
기초연금이 발표되기도 전에 장관 사퇴설부터 불거지면서 공약 후퇴에 대한 여론의 관심이 집중됐고, 청와대는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청와대는 진 장관의 사퇴 시점과 방식이 부적절하다고 보고, 정홍원 총리와의 면담에서 진영 장관을 향해 "없던 일로 하자"고 노골적으로 불쾌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박근혜 대통령이 진 장관을 아꼈던 만큼 실망감도 큰 것 같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진 장관의 사퇴설이 측근의 전언으로 우연히 언론에 흘러들어간 것인지, 본인이 의지를 갖고 언론에 표출한 것인지는 분명치 않다.
진 장관과 갈등을 빚었던 청와대 관계자가 개입했다는 소문 등 각종 추측이 정치권에서 나오는 상황이다.
어찌됐건 진 장관의 사퇴는 박근혜 정권의 복지 정책과 국정 운영에 심각한 위기가 왔음을 스스로 증명하는 꼴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