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경없는 기자회 기고문]신문사에 기자가 없다

김비태 국경없는 기자회 서울특파원
“기사를 올리려고 하니 퇴사자라 전산망에 접근할 수 없다고 하네요. 편집국 문은 잠겨있고 철거민촌에서나 볼법한 건장한 용역업체 직원들이 그 앞을 지키고 있고….”

얼마전 국경없는기자회(RSF)에 연락 온 내용이다. 요즘 시대에 믿기 힘든 일이라 의심이 앞섰다. 가끔 사내 노조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파리에 있는 국경없는기자회 본부에 언론탄압이라는 둥 알 권리 침해라는 둥 그럴 듯하게 포장해 진상규명을 요청한 경우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국제기구에서 항상 제일 먼저 조사하는 것은 각자의 주장을 무시하고 결과를 살핀다.

제일 먼저 파리에서 요청 온 내용은 장재구 한국일보 회장의 200억 횡령협의를 기자들이 고발한 시점 일주일 전부터 기사 내용을 전부 분석해 달라는 것이었다. 몇 명이 달라붙어 몇 달치 한국일보를 읽어보았다.

그리고는 주의, 주장을 다 무시하고 기사 내용이 공정한가, 공적 기능을 하고 있냐는 토론을 여러 차례 거쳤다. 단어 하나하나의 뉘앙스까지 집요하게 캐묻는 본사 직원들 때문에 짜증이 났다. 마침내 지난 토요일 긴 성명서를 발표했다.

그 요지는 “(사측이)사적인 보호와 잠정적인 법적 반사이익을 목적으로 편집국을 재구성하여 직접적으로 편집권을 훼손 한 것에 대해 용인할 수 없으며, 권능기관은 보복적 피해를 보고 있는 기자들이 편집국에서 본연의 일을 할 수 있도록 명령해야 하다.”는 것이다.

사주와 기자간의 갈등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신문은 우리 사회의 공기이고 어떠한 이유에서 이건 언론사는 기자들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일하는 것을 보장해줘야 한다는 취지인 것이다.


국경없는기자회에도 무조건 언론사 편을, 기자들 편을 들어 줄 것이라고 굳게 믿고 찾아오는 기자동료들이 많다. 그러나 다른 나라에서의 경우 국경없는 기자회가 언론사나 언론인을 고발한 사례들도 꽤 있다. 본사 회의 때 마다 나오는 이야기이다.

“우리는 언론인을 보호하는 단체가 아닙니다. 시민들의 인권을 수호하기 위해 가장 기본적인 것이 ‘표현의 자유’이고, 가장 효과적인 것이 ‘알 권리’를 보장 받는 것입니다. 그래서 언론과 기자를 보호해 주는 것입니다.” 편가르기 싸움에 휘말리지 말고 본질을 잊지 말자는 것이다.

고교시절, 우리는 “우리 반 얘가 맞았대” 하면 어느 반이야 하고는 우르르 달려가 보복을 하고 오곤 했다. 그때는 누구의 잘잘못은 중요하지 않았다. 우리에게 정의는 옳고 그름이 아니라 “우리 반은 우리가 지킨다”는 것이었다. 지금 우리 사회도 여전히 공공의 정의는 오간데 없고 편가르기가 만연하다.

같은 NLL대화록을 두고도 같은 국정원 댓글을 보고도 해석이 왜 이렇게 다른지 모르겠다. 국정원 댓글만 아니면 문재인 후보가 당선 됐을 것이라며 광화문에 몇 십명이 모여 촛불시위를 한다는 소식을 듣고 안 그래도 국정원이라면 감정이 안 좋은데 잘 됐다 싶어 댓글 내용을 하나하나 읽어봤다. 그리곤 광화문에 가지 않았다.

촛불집회는 우리 반 얘가 맞었다더라 남의 말을 듣고 흥분하는 자리가 아니라, 내가 한 구절 한 구절 직접 읽고도 울분이 치밀어 오를 때 뛰쳐나가 나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자리가 되어야 한다. 그래야 혹 TV에 나오더라도 안 부끄러울 것 같다.

그래서 ‘타도 국정원’ 집회에는 안 갔다. 그러나 편집국에서 쫓겨난 기자들을 위해서는 나 혼자라도 촛불 한 촉 사들고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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