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이 유통산업발전법을 대폭 강화해 유통 대기업 견제에 나서자 유통기업과 납품업체, 입점상인들이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정치권의 논리는 대형마트에 대한 영업규제를 보다 강화해 골목상권을 살리고 영세상인들이 벌어먹고 살 공간을 넓혀주겠다는 취지지만 이는 곧 대형마트와 이해관계를 함께하는 모든 이해당사자의 손실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대형마트의 이해를 대변하는 체인스토어협회와 이마트 롯데마트 홈플러스는 유통산업발전법 입법저지에 사활을 걸고 있다. 한국체인스토어협회는 이례적으로 대형마트와 SSM 강제휴무 및 영업규제를 강화하는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안을 표(票)퓰리즘이라고 강력 비난하며 정치권을 정조준, 선전포고를 하고 나섰다.
마트 주장의 골자는 현행 유발법 시행이 채 1년도 되지 않은 시점에서 더 강화된 개정안을 통과시키는 행위는 유통업계는 물론 농어민, 영세 임대소상공인, 중소 납품협력업체 모두를 어렵게 한다는 것이다.
유통업계의 반발을 더욱 키운 것은 체인스토어협회가 중소상인단체들과 만나 상생의 길을 모색하고 초보적이지만 합의안도 도출해 낸 마당에 국회가 이를 깡그리 무시하고 입법을 강행한데 대한 배신감도 작용했다. 더욱이 마트협회와 중소상인간 모임은 정부 주선으로 이뤄진 것이어서 불만은 클 수 밖에 없었다. 대형마트들은 영업시간 4시간 축소, 영업제한일수 3일로 확대, 사실상의 신규출점 허가제가 시행되면 매출이 반토막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마트측은 이번 법안이 발효될 경우 총 손실이 10조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마트의 반발이 간단치 않은 것은 마트에 의지해 생계를 이어가는 농축어민과 협력업체 역시 이해관계가 걸려 있고 이들의 수가 적지 않아서다. 회원수만 만여명인 것으로 알려졌다.
대형마트 농어민 중소기업 임대상인 생존대책위원회는 21일 민주당을 항의방문한 데 이어 22일 오후 4시 서울역광장에서 이마트, 홈플러스, 롯데마트 등의 협력업체 관계자가 참여하는 대규모 집회를 열기로 했다.
하지만, 다수의 영세상인, 대형마트와 무관한 상인들 사이에서는 대형마트 규제강화법안을 반기는 여론도 만만치 않다. 대형마트의 영업제한은 곧 자신들의 매출증대로 이어질 것이라는 기대가 작용한 것이다.
국회가 입법화에 나서자 대형마트 업계가 뒤늦게 저지에 나선 것은 문제다. 이익이 줄어드는데 대한 반발일 뿐 상생의 배려는 보이지 않는다.
새누리당과 민주당 등 정치권의 지식경제위 소속 의원들은 벌써 올해초부터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안을 발의하기 시작해 올 8~9월 무려 20여건의 개정안이 제출된 상태였다.
CBS를 비롯한 언론에서는 법안의 구체적인 내용을 상세히 보도했지만 체인스토어협회와 마트 경영진들은 법안에 대해 업계의 입장을 충분히 설명하고 내용을 완화하려는 등의 노력을 거의 기울이지 않았다. 위기감을 느껴 정부를 매개로 중소상인단체와 머리를 맞대긴 했지만 이것 역시 때가 늦었다.
국회의 한 관계자는 "대형마트 업계가 평소에 골목상권을 돌아보고 상생하려는 모습을 보였더라면 진정성을 인정받을 수 있었겠지만 법안이 무더기 상정되고 규제강화가 발등의 불이 되자 그제서야 중소상인들과 만나기 시작한 것 아니냐"며 곱지 않은 시선을 보냈다.
유통산업발전법 강화에 대해 선거를 앞두고 표를 의식한 제스처라는 비판이 있지만 이 법안은 이미 올해초부터 준비된 것이어서 설득력이 낮다. 그리고, 유통업계에는 대형마트만 존재하는 것이 아닌 만큼 균형감을 갖고 유통산업발전법 처리국면을 바라봐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