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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도쿄 신주쿠 거리의 한 클럽, 젊은이들이 한국 소주를 언더락스잔에다 희석시켜 마신다.
고급 오크로 만들어진 벽장에는 마시다 남은 소주병들이 가지런히 놓여 있다. 단골 고객들이 소주를 키핑해(keeping)둔 것.
소주병 옆에는 발렌타인과, 로얄크라운, 잭 다니엘 같은 고급 양주병들도 나란히 정렬돼 있다. 한 해 일본 열도로 팔려 나가는 소주는(진로) 4320만 달러 어치. 한국 돈으로 약 500억원 가량된다. 다른 브랜드까지 합치면 액수는 훨씬 클 것으로 추정된다. 한국에서 병당 3,000~4,000원에 판매되지만 일본에서는 10배나 비싼 30,000~35,000에 팔린다.
일본에서 팔리는 소주는 뭔가 특별한 제조방법에 따라 만들어졌기 때문일까? ''결론은 아니다''이다. 일본에서 팔리는 소주도 국내에서 시판되는 소주와 주조법이 똑같지만 마케팅 전략 덕분에 유독 일본에서만 소주가 프리미엄급 술로 탈바꿈한 것이다.
진로하이트 관계자는 "일본 수출 초기부터 최고품질에 최고가격이라는 고가전략을 꾀한 것이 주효했다"며 "700㎖들이 소주 한 병이 35,000원 정도에 팔리고 있다"고 말했다. 다른 점이 있다면 알콜 도수가 25%로 국내 소주보다 높게 주조됐고 병도 기존 소주병보다 더 길고 조금은 고급스러워 보인다는 점이다.
미국 시사주간지 비즈니스위크 최신호(4월 2일자)는 "한국에서 진로 소주는 서민들이 주로 마시는 대표 주류이지만 일본에서는 상황이 다르다"며 "JINRO는 일본 수출 초기엔 회사원들에게 인기를 얻었고 현재는 클럽 매니아(clubgoers)에게 사케 대체재로 적극 수용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진로의 전체 소주 수출물량 가운데 70%가량이 일본에 집중되고 있고 국내 가격의 10배에 팔리고 있으니 소주의 일본 진출은 성공적이라고 평가할만하다.
그렇다면 소주도 위스키와 꼬냑, 보드카 처럼 글로벌 인기 주종으로 발돋움할 수 있을까?
진로는 일본, 미국, 중국에 진출한데 이어 2010년 8월 싱하맥주를 제조하는 태국 분럿그룹과 소주수출 유통계약을 맺었고 미얀마에서도 현지 기업들과 전략적 제휴를 맺고 유통망을 강화하고 있다.
하지만, 기존 진출국가 미국과 일본에서는 좀처럼 힘을 쓰지 못하고 있다. 소주가 프리미엄급 주종이 아니고 맛도 독특하지 않기 때문이다.
권위있는 한 주류 전문가는 CBS와의 인터뷰에서 "소주는 한국이 먹고 살기 힘든 때였던 1965년 양곡령에 의해 쌀과 보리 같은 주식 이외의 곡물로 만들어진 술"로 "값싼 타피오카나 설탕을 뽑아내고 남은 사탕수수의 찌꺼기로 값싸게 주정을 만든 뒤 여러가지 감미료를 첨가해 거친 맛을 부드럽게 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가격 측면에서 봐도 물보다 더 싼 술이 세상에 없다"면서 "소주는 여러가지 측면에서 프리미엄급 주종으로 성장하는데 한계를 갖고 있지만 그동안 정부가 지속해 온 지역별 독과점체제 때문에 번창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영국의 드링크 인터내셔널지가 매년 세계 각국의 증류주 판매량을 기준으로 주류업체별 순위를 매긴 결과 진로소주는 스미르노프나 조니워크를 제치고 단일 브랜드 증류주로는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주종으로 지난 10년간 선정됐다. 비록 국내시장에서 매출이 일어나지만 판매량이나 가격 측면에서는 경쟁력이 있다는 얘기다.
하지만 소주의 주조법은 지극히 단순해 후발업체들의 추격을 허용할 가능성이 상존하고 있고 각국마다 고유한 인기 주종이 있기 때문에 국산 소주의 글로벌화는 쉽지 않은 과제로 인식되고 있다. 그래서 국산 소주가 글로벌 시장을 공략하기 위해서는 분명한 전략이 있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