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피해자 비웃는 '사기의 삶'…또다른 '이희진'들 도처에

[사기, 뒤바뀐 정의④]
코인 사기로 수십억 벌고, 백화점서 에르메스·샤넬
시세조종으로 집유 받고도 주식 강의·유튜브 촬영
사기 발생 늘었지만, 처벌은 그대로…"법 개정 필요"

편집자 주

'청담동 주식부자'로 유명세를 떨쳤던 그는 지금도 서울에 있는 최고급 아파트에 산다. 10년 전 사기죄로 3년 6개월을 선고받아 수감생활을 마치고 나온 이희진씨의 재력은 여전히 건재한 것처럼 보인다. 그 사이 그에게 주식 사기를 당했던 피해자들, 코인 사기로 피해를 입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무너진 삶을 하루하루 버텨내고 있다. 지연된 정의, 아니 어쩌면 뒤바뀐 정의를 매 순간 목도하는 사회. 지난해 사기 사건이 역대 최고치에 달한 이유가 아닐까.

사기 혐의 등으로 법정구속된 장모(31)씨가 구속되기 전 백화점에서 명품 쇼핑을 하는 모습(좌우상단), 명품 브랜드 행사에 초청받아 참석한 모습(좌하단), 외제차를 청소하는 모습(우하단). 장모씨 인스타그램 캡처사기 혐의 등으로 법정구속된 장모(31)씨가 구속되기 전 백화점에서 명품 쇼핑을 하는 모습(좌우상단), 명품 브랜드 행사에 초청받아 참석한 모습(좌하단), 외제차를 청소하는 모습(우하단). 장모씨 인스타그램 캡처
▶ 글 싣는 순서
①[단독]'청담동 주식부자' 사기 재판 중 "골퍼됐다"…초호화 생활
②[단독]'검찰총장'에서 이희진 '방패'로…불안한 法심판대
③'사망보험금'도 못 갚아줄 빚…'이희진 피해자' 부서진 10년
④[단독]피해자 비웃는 '사기의 삶'…또다른 '이희진'들 도처에
(계속)
그의 인스타그램은 명품 가득한 일상으로 도배돼 있다. 백화점에 들러 에르메스·샤넬·고야드 등 명품을 쇼핑하기는 물론, 명품브랜드 회사 행사에 초청 받기도 한다. 1억 원을 훌쩍 호가하는 하얀 벤츠 차량을 직접 세차하며 "다신 안 한다"는 말도 장난처럼 올리곤 한다. 화려한 일상 속에서 그는 행복한 것처럼 보인다.
 
유명 연예인이나 성공한 사업가가 아니다. 사기 혐의 등으로 법정구속된 장모(31)씨의 인스타그램 계정이다. 그는 코인 투자로 큰돈을 벌었다는 자랑이나 107억여 원을 이체한 영수증 사진 등을 올리며 재력을 과시했다.
 
2022년 7월 한 게시물도 눈에 띈다. 도난당한 자신의 명품들이 중고거래 플랫폼에서 판매되고 있다며 분노를 표출한 내용이다. 그가 도난당했다고 주장한 물품은 2억 6300만 원어치. 하지만, 그가 분노한 것보다 더 아파하며 피눈물 흘린 피해자들은 따로 있다. 장씨는 피해자 수십 명에게 투자 사기를 쳐서 수십억 원을 뜯어내 징역형을 살고 있는 인물이다.
 

확정 징역만 10년…'명품'만큼 화려한 사기 전과

사기 혐의로 법정구속된 장모(31)씨가 가상화폐(코인)으로 이익을 봤다며 올린 사진들. 장모씨 인스타그램 캡처사기 혐의로 법정구속된 장모(31)씨가 가상화폐(코인)으로 이익을 봤다며 올린 사진들. 장모씨 인스타그램 캡처
장씨가 쇼핑한 명품 목록만큼이나 그의 사기 범죄 전력도 화려하다. 2017년 2월 춘천지법 강릉지원에서 사기죄로 징역 4개월과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첫 번째 유죄 판결이었다. 2018년 11월에도 서울중앙지법에서 사기죄로 징역 2년 등을 선고받았다. 이어 2023년 4월에는 투자자들의 돈으로 마약에 손을 댔다가 서울서부지법에서 징역 1년 2개월이 내려졌다.
 
지난해 9월에는 다시 사기죄로 서울중앙지법에서 징역 1년을, 바로 한 달 뒤 10월에도 서울고등법원에서 징역 6년을 선고받았다. 징역 6년이 내려진 혐의에도 사기죄가 포함됐다. 장씨는 투자리딩방에서 투자자 70명을 속여 41억 7800만 원을 가로챈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그리고 또 하나의 전력이 추가될 전망이다. 서울중앙지법 형사20단독 임정빈 판사는 지난달 20일 장씨에게 사기죄로 징역 10개월을 선고했다. 장씨는 지인과 함께 전형적인 '투자리딩방 사기'를 친 혐의로 기소됐다. 해당 사건 판결문에 따르면, 그들은 2021년 4월부터 이듬해 6월까지 여러 SNS에서 "투자금을 6개월간 예치하면 매달 수익금을 10% 지급하고, 마지막 달에는 원금과 함께 수익금을 50% 지급하겠다"고 홍보하며 투자자들을 끌어모았다. 또 "지금까지 장씨에게 투자해 한 번도 손실이 난 적 없고, 단기간에 원금을 초과하는 고수익을 보장하겠다"는 말로 투자자들을 현혹했다.
 
하지만 장씨 등은 실제로 가상화폐(코인) 시세 변동을 예측할 수 없었고, 큰 수익을 낼 능력이 없었던 것으로 조사됐다. 그는 새로운 투자자들을 모집해 그 투자금을 다시 기존 투자자에게 수익금이라며 지급하는 폰지 사기, 이른바 '돌려막기' 수법을 쓸 계획이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그는 그렇게 피해자 9명으로부터 4억 6600만여 원을 뜯어낸 혐의가 인정됐다.
 
임정빈 판사는 "범행수법과 동기가 불량하고 범행이 중대하며, 피해자들에게 용서받지 못했다"며 양형 이유를 밝혔다.  
 

유죄 확정된 다음날 '투뿔 한우·캐비어' 식사

'수급단타왕' K씨가 블로그에 올린 사진들. 자본시장법 위반 혐의로 집행유예형 확정판결이 난 다음 날 먹은 '투뿔(1++) 한우'(좌상단)와 캐비어(좌하단), 가족과 함께 '호캉스'에 갔다며 올린 5성급 호텔방 사진(우상단)과 전경 사진(우하단). K씨 블로그 캡처'수급단타왕' K씨가 블로그에 올린 사진들. 자본시장법 위반 혐의로 집행유예형 확정판결이 난 다음 날 먹은 '투뿔(1++) 한우'(좌상단)와 캐비어(좌하단), 가족과 함께 '호캉스'에 갔다며 올린 5성급 호텔방 사진(우상단)과 전경 사진(우하단). K씨 블로그 캡처
올해 4월 활동명 '수급단타왕' K(42)씨는 자본시장법 위반 혐의로 유죄가 확정됐다. 2019년 주가를 조작한 혐의가 인정된 것이다.
 
당시 투자전문회사의 대표이사였던 K씨는 고객들에게 일임받은 투자금 등 약 150억 원을 운용하고 있었다고 한다. 그러던 중 주식 투자 대회에 참가했고, 수익을 어떻게 해서든지 내야 하는 상황에 놓이자 남의 계좌에 손을 댔다. 고객들의 투자일임 계좌 수십 개를 이용해 시세조종을 한 것으로 조사됐다. 그렇게 그가 벌어들인 부당이득은 4652만 원에 달했다.
 
K씨에게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 벌금 7천만 원과 추징금 4652만 원이 내려진 1심 판결 이후 2심에서도 원심 판단이 유지됐다. 2심 선고가 내려진 날은 지난 4월 3일. 하지만 곧바로 다음 날인 4일, K씨는 지인들과 함께 이른바 '투뿔(1++) 한우'에 캐비어와 고급 와인을 곁들여 식사를 하는 사진을 버젓이 블로그에 올렸다.
 
블로그에는 그의 일상이 기록돼 있었다. 인천 서구 청라동의 40평대 아파트에서 다복한 가정을 이루고 지내는 모습, 벤츠 S클래스 차량으로 5성급 호텔 고층 라운지로 나들이 간 모습, 유명 셰프가 운영하는 '파인 다이닝'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하고 '신상 샤넬백'을 사러 강남 백화점에 들른 순간들. 누구나 부러워할 삶의 풍경들이 그의 블로그에 빼곡히 기록돼 있다.
'수급단타왕' K씨가 블로그에 올린 사진들. 지인들과 함께 유명 셰프의 파인다이닝 레스토랑에 방문한 모습(좌상단)과 영수증(우상단), 벤츠 S클래스 차량을 출고받으며 올린 사진(좌하단), 신상 샤넬 가방을 쇼핑하며 올린 사진(우하단). K씨 블로그 캡처'수급단타왕' K씨가 블로그에 올린 사진들. 지인들과 함께 유명 셰프의 파인다이닝 레스토랑에 방문한 모습(좌상단)과 영수증(우상단), 벤츠 S클래스 차량을 출고받으며 올린 사진(좌하단), 신상 샤넬 가방을 쇼핑하며 올린 사진(우하단). K씨 블로그 캡처
 
분통이 터지는 건 K씨를 믿고 투자했다가 돈을 잃은 사람들이다. 투자자들은 K씨가 자신들의 돈을 시세조종에 이용하면서 정작 제대로 된 수익은 내지 못했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150억 원에 가까웠던 투자일임 계약금은 한 달 만에 평가금 67억여 원으로 줄어들었다고 한다.
 
K씨에게 돈을 맡겼던 엄승빈(가명)씨는 아내와 함께 총 2억 원을 투자했지만, 회수된 돈은 고작 8천여만 원에 불과했다. 엄씨는 이 사건 피해자가 60명 이상이며 총 60억~100억 원의 피해가 발생했다고 주장한다. 현재 K씨 사건 피해자들이 모인 단체대화방에는 80명이 넘는 사람들이 들어와 있다.
 
엄씨는 "(K씨가) 피해자 고통을 무시한 채 유튜브에도 버젓이 출연하고 있다"며 "아쉽게도 너무 적은 형량이 확정판결 됐다"고 토로했다. 엄씨는 "피해자들을 더 모아서 민사·형사 소송을 또 진행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온라인 강의 플랫폼에서 월 22만 원을 내고 구독하면 들을 수 있는 K씨의 주식매매법 강의(왼쪽), K씨가 출연하고 있는 유튜브 채널(오른쪽). 온라인 캡처온라인 강의 플랫폼에서 월 22만 원을 내고 구독하면 들을 수 있는 K씨의 주식매매법 강의(왼쪽), K씨가 출연하고 있는 유튜브 채널(오른쪽). 온라인 캡처
K씨는 지금도 자신의 이름을 내걸고 주식매매법 강의를 하고 있다. 온라인 강의 플랫폼에서 월 22만 원을 내고 채널을 구독하면 그의 강의를 들을 수 있다. 그는 지금도 1천 명 이상의 구독자를 보유하고 있다. 동시에 유튜브 활동도 이어가고 있다. 구독자 16만 명이 넘는 유튜브 채널에서 주식 매매와 관련된 영상에 종종 출연하고 있다.
 
CBS노컷뉴스는 지난 유죄판결과 현재 행보와 관련해 K씨 측에 입장을 여러 차례 물었지만 답이 오지 않았다.
 

 500억대 사기 수사 중, 두바이서 낙타 타고 '찰칵'

 
'티어원' 사기 사건으로 검찰 수사를 받고 있는 피의자 이모(44)씨가 수사 중 아랍에미리트 두바이로 여행을 간 모습(왼쪽), 고급 양주를 마시는 등 이씨의 일상이 올라온 SNS(오른쪽). 독자 제공'티어원' 사기 사건으로 검찰 수사를 받고 있는 피의자 이모(44)씨가 수사 중 아랍에미리트 두바이로 여행을 간 모습(왼쪽), 고급 양주를 마시는 등 이씨의 일상이 올라온 SNS(오른쪽). 독자 제공
코인 예치 서비스 애플리케이션 '티어원' 사건의 주범으로 지목된 이모(44)씨도 수사를 받는 동안 여유로운 생활을 즐겼다. 이씨는 폰지 사기로 투자자들의 돈을 가로챈 혐의를 받고 있다.
 
피해자들의 고소장에 따르면, 이씨 등 피의자들은 현금으로 이더리움을 구매해 티어원 앱에 100일간 예치하면 매일 약정된 이자를 지급해 원금 포함 120~180%의 수익을 보장하겠다고 홍보했다. "영혼까지 끌어 모아 대출 받아서라도 투자하라", "인생에 다시 없을 기회다"라며 투자자들을 현혹해 투자자 300여 명으로부터 500억 원 이상을 챙겼다고 한다.
 
이 사건은 고소가 접수된 지 4년이 훨씬 넘었다. 방대한 수사자료와 피해자 수로 인해 2021년부터 서울중앙지검, 부산지검 동부지청 등으로 이첩되기를 반복하며 사건 수사는 더뎌지기만 하고 있다.
 
그 사이 이씨는 해외여행을 다니며 자신의 생활을 SNS에 자랑했다. 아랍에미리트 두바이에서 낙타를 타고 사막 투어를 하기도 하고, 고급 양주를 마시는 사진도 올라와 있다.
 
이씨 사건으로 3억 원을 잃었다는 피해자 정석환(가명)씨는 "전 재산을 잃고 정신적으로 힘들어져서 직장도 그만두고 집에 오래 있었다"며 "그러던 와중에 (이씨가 SNS에서) 여행 다니고 좋은 물건 자랑하는 것들을 보면서 마음이 무너지는 기분이 들었다. 빨리 처벌받고, 돈을 돌려받았으면 좋겠다"고 토로했다.
 

사기 발생 늘었지만…실형·집유 선고는 제자리

    
실제로 사기 사건은 5년 전에 비해 크게 늘어났다. 코로나19 팬데믹 시국에서 경기부양책으로 금리가 낮아지는 등 풍부한 유동성 정책이 코인·주식 사기 등과 경제범죄가 증가했다는 분석이다.
더불어민주당 양부남 의원실을 통해 확보한 경찰청 자료에 따르면, 최근 사기범죄 발생 건수는 2020년 34만 4847건, 2021년 29만 2116건, 2022년 32만 3496건, 2023년 34만 7901건, 2024년 42만 1413건으로 2021년부터 눈에 띄게 증가하고 있다.
 
건국대 경찰학과 이웅혁 교수는 "경기 불황과 경제범죄는 연동되는 경향이 있다"며 "경기가 안 좋아지면 사람을 속여서 (돈을 뜯어내는) 방법이 많아진다. 보이스피싱이 급격하게 증가한 것도 사기 발생에 포함됐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러나 우리나라 형사·사법 체계는 크게 달라진 점이 없어 보인다. 대법원 사법연감에 따르면, 사기·공갈죄 1심 접수는 2020년 4만 9826건, 2021년 4만 2403건, 2022년 4만 796건, 2023년 4만 7512건, 2024년 4만 7129건으로 계속해서 4만 건대를 유지하는 추세다.
 
사기 사건이 크게 늘어나는 것에 비해 재판에 넘겨지는 비율은 별다른 변화가 없는 것이다. 적잖은 사건이 수사 단계에서 불송치·불기소되거나 기소유예가 될 수도 있다는 뜻이다.
 
또 매년 이뤄진 사기·공갈죄 1심 재판에서 실형(징역·금고 등)이나 집행유예가 선고되는 사례 수에도 별다른 변화가 없었다. 2020년 3만 5465건, 2021년 3만 7051건, 2022년 3만 4798건, 2023년 3만 7337건, 2024년 3만 6807건으로 3만 건대를 유지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우리나라 사법 체계가 사기 가해자들에게 유리하게 운용되는 측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법무법인 우리 김정철 변호사는 "사기 사건은 (가해자가) 피해자와 합의하고 변제할 기회를 준다는 이유로 재판부가 구속을 적극적으로 안 시키는 경우가 많다"며 "불구속 상태인 가해자들은 사기로 번 돈으로 호화롭게 살고, 사기 범행을 또다시 저지르기도 한다"고 지적했다. 또 "우리나라는 사기 처벌도 약한 편"이라며 "미국에서는 사기 범죄자에게 징역 150년형까지 내리기도 한다. 우리나라도 (더 큰 처벌을 내릴 수 있도록) 법을 개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CBS노컷뉴스는 여러분의 제보로 함께 세상을 바꿉니다. 각종 비리와 부당대우, 사건사고와 미담 등 모든 얘깃거리를 알려주세요.

0

0

© 2003 CBS M&C, 노컷뉴스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