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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주의, 자유주의, 제3의 길 - 한국 교회 속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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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상욱의 기자수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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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마가 있는 고품격 뉴스, 세상을 더 크고 여유로운 시선으로 들여다보는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 ''기자수첩 시즌2''에서는 정의롭지 못한 것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을 담았다. [편집자 주]

기독교 정치 정당, 기독당이 준비되고 있다 한다. 뜬금없는 존재는 아니다. 지난 총선거에 기독당이 나섰고 45만표를 얻었다.

한국 근대사에서 목사장로들은 어떻게 정치에 뛰어들었을까?

1898년 - 독립협회를 이끌던 지도자들이 고종황제를 퇴위시키고 새로운 정치체제를 출범시키자고 모의를 하다 붙잡혀 감옥에 갇혔다. 유명한 개혁당 사건. 이상재, 안국선, 이원긍, 이승만 등. 이들은 감옥에서 기독교인으로 개종했고 선교사들의 탄원으로 감형되어 석방되었다.

이때부터 기독교 신앙에 입각한 사회현실 비판과 자주개혁의 이념이 시작돼 3.1 운동으로 이어진다. 1919년 3.1 운동 때 독립선언 민족대표 33인 중 16명이 기독교인이었다. 그러나 이 가운데 목사 2명은 훗날 신사참배, 강제징용 지지협력으로 변절자가 되었다. 기독교단들도 일제에 굴복해 신사참배를 받아들인 굴욕의 역사도 있다.

신의주의 <기독교사회민주당>, 평양의 <기독교자유당>

해방 후 가장 돋보이는 한국교회의 현실 정치참여는 <기독교사회민주당> 결성이다. 김일성 집단이 소련을 등에 업고 괴뢰정부를 만들면서 위협적인 존재로 등장하자 북한의 기독교 지도자들이 정당을 결성해 공산당에 맞서려 했다. 소련군도 북한에 정치적 자유를 보장하고 무슨 정당이든 다 허용한다고 선전했다.

당시에는 온건한 사회민주주의가 정치적 트렌드(?)였기 때문에 1945년 <기독사회민주당>으로 이름 짓고 정당을 출범시켰다. 신의주의 윤하영, 한경직 목사가 중심인물. 1947년에는 평양에서 김화식 목사, 고한규 장로 등이 주축이 돼 <기독교자유당>을 만들었다.

소련군과 공산당은 누가 괴뢰 공산당 체제에 반대하는 지 손쉽게 구별해 처단할 근거를 마련했으니 속아넘어간 셈이다. 기독교 지도자들에 대한 테러와 교회 파괴가 자행됐고 1945년 11월 23일 공산당을 규탄하는 청년학생과 기독교인들의 의거가 거행됐다. (반공학생의 날이 그래서 11월 23일이었다).

소련군의 기관총과 전투기의 기총사격으로 23명 사망, 350명 부상, 200명은 시베리아로 유배됐다. 그 때부터 북한주민들의 남한으로의 탈출이 이어졌고, 탈출 주민의 70% 정도가 기독교인이었다고 한다. 인천제일교회, 서울영락교회 등이 탈북 기독교인들에 의해 그 때 세워진 교회들.

북한에서는 괴뢰공산당이 교회를 탄압해 기독교계를 충격에 빠뜨렸고 남한에서는 미군정이 교회 조직을 이용해 구호활동을 폄으로써 한국 교회의 반공친미 성격은 이때 확실하게 굳어졌다고 볼 수 있다.

이 때 남한에서는 조선신학교 학장이던 김재준 목사가 기독교 신앙을 바탕으로 자유민주주의와 사회주의를 절충한 ''''제 3의 길''''을 주창하며 젊은 크리스천들을 이끌었다.

강원용 목사, 안병무 박사, 문익환 목사, 박형규 목사 등이 장공 김재준 목사의 영향 속에 신학과 신앙의 길을 걸어간 기독교 지도자들. 앤서니 기든스,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보다 50년을 앞선 통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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